여우가 잠든 숲 1 스토리콜렉터 53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박종대 옮김 / 북로드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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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5,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타우누스 시리즈인 것 같다. 아마도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여덟 번째 작품인 <여우가 잠든 숲>넬레 노이하우스의 고정 팬들은 물론, 팬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고 나 또한 그들과 큰 시각차가 없었던 걸 봐선 가독성이나 흡입력은 괜찮았던 편이었다어느 날 밤, 숲속의 캠핑카에서 누군가의 방화로 추측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현장에서 신원불명의 시신이 발견된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암 말기의 할머니가 병동에서 교살 당했고, 마을의 신부까지 연이어 살해당하면서 말 그대로 연쇄살인이 일어난 것이다


 

조용했던 마을은 발칵 뒤집히면서 보덴슈타인 반장과 피아 형사의 직감은 계획된 살인임을 가리키지만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까지 무차별 살해당한 사실에 단서를 못 잡고 곤혹스러워 한다또 누가 살인의 목표가 될지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살해당한 사람들, 그리고 용의자들 모두 한 결 같이 보덴슈타인과 잘 아는 사이인데다 42년 전 유년 시절에 겪었던 아픈 과거와 맞물려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구 소련에서 이주해 온 아르투어라는 소년과 보덴슈타인이 애지중지 했던 새끼 여우 막시와 친하게 어울렸다는 까닭만으로도 마을 또래 친구들은 이들을 몹시 미워했고 결국 어느 날, 아르투어막시는 죽었다.   

 

 

42년 간 이어져 온 기나긴 죄책감, 마을 친구들이 아르투어막시를 죽였다고 믿게 된 이후 모두는 입을 다물고 침묵을 강요받는다. 당시 법적으로 처벌 받을 수 없던 미성년자들이었으나 이 끔찍한 사건은 입에 올리는 게 금기시 되었으며 불행으로 점철되었던 유년시절이었다그래서 지금에 와서야 이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는 게 과연 타당한 일인지, 주변의 따가운 눈총은 수사에 객관성을 잃어버렸다는 비난에 직면 당하는 보덴슈타인.   

 

 

여전히 그날의 악몽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영원히 고통 받을 것 같던 보덴슈타인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방인이라서 배척당해야 했던 소년과 그런 소년을 감싸고돌았던 그 소년, 함께 추억을 공유했던 여우까지 세 존재의 관계가 더 없이 아프게 다가온다그 나이대의 폭압적인 위계질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기에 참회의기회는 어쩌면 영원히 봉쇄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을 소환함으로서 그 틀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나가는 보덴슈타인-피아 콤비의 수사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단지 인물들과의 관계도가 복잡해서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누구였더라는 헷갈림 때문에 끊임없이 앞 페이지로 들락날락 거리며 공부해야 했으니 좀 머리 지끈거리기 하다리고 그 누구더라? 보덴슈타인과 대화 도중 처음에 반말하던 사람이 중간에 돌연 존댓말로 바꾸니까 이건 번역의 오류인지 아니면 그럴만한 계기가 있었던 걸 내가 놓친 것인지 어리둥절에 찜찜한 적도 있었고. 우야동동 사건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결 된다. 그러나 제일 기억에 남는 대목들은 보덴슈타인피아의 끈끈한 동료애였다.

 

 

이제 현직에서 은퇴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여생을 꿈꾸는 보덴슈타인은 그동안 많이 지쳤을 테고 여복이라곤 지지리도 없던 그가 뒤늦게 찾은 반려자는 그런 결단 내리기에 충분한 동기가 되었을 게다


 

그런 그와의 파트너로 일하는 동안 쌓인 동료애는 피아로 하여금 크나큰 아쉬움과 불안을 남긴다자신의 상사를 옹호하며 발끈하던 모습이나, 흔히 조직에서 선배가 자리를 열어 주기만을 호시탐탐 노리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야심만만한 후배의 모습보단 그런 선배를 아직도 필요로 여기는 피아의 모습은 보덴슈타인이 참 잘 살아 왔구나


 

두 사람의 끈끈한 정은 남녀사이가 꼭 이성의 감정으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란 점을 훈훈하게 짠하게 보여 주었다. 물론 피아라고 야심이 없는 것은 아닐 터라, 이대로 보덴슈타인이 영영 은퇴해 꽃길만을 걷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제 이 시리즈도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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