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라이터즈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천국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 있듯이 유명작가와 무명작가 사이에 유령작가가 있다.”

 

 

공모전에서 일등 먹어 꿈에도 그리던 데뷔작을 의욕적으로 출간했지만 며칠 신간코너에 머물렀을 뿐, 끝내 잊혀 진 작가가 되고만 김시영. 그렇게 실패를 겪고 난 뒤라 후유증 탓인지 두 번째 소설은 곧 낸다, 낸다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완성을 못했다. 당장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기에 낮엔 알바 뛰고 밤에는 웹소설계의 황제 이카로스의 대필 작가로 겨우 하루하루 살고 있지만 마감에 늦다 보면 고료도 제때 받지 못하는 한심한 청춘이다.

 

 

 

그런 그에게 몇 년 전 스캔들로 바닥 친 배우 차유나로부터 이상한 제안이 온다. 자신의 미래를 소설로 멋지게 설계해 주면 거액의 사례를 하겠다는 것.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었는데 실제로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인생을 마음대로 설계하다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데다 고스트라이터라고 불리는 능력자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시영은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 줄 고스트라이터로 성미은을 지목해 글쓰기에 한계를 느낀 자신의 숨통을 트여줄 것을 부탁한다. 그렇지만 이런 능력이 있다면 세상 그 누구는 가만히 내버려 둘리가 없지 않을까, 김시영의 고스트라이팅을 간파한 연예계 대부 강태한이 그를 납치하여 강태한 자신의 고스트라이터가 되어 입맛에 맞게 소설을 써줄 것을 종용 한다.이제 강태한이라는 절대 악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서. 잘못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 역으로 그에게 정면대결 대신 고스트라이팅으로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소설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 이 능력을 좋은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고 나쁜 방향으로 호도한다면 말 그대로 데스노트가 되는 것이다. 의도하는 바대로 상대를 죽음으로 내 몰 수도 있는 무섭고도 신비한 능력 같기도 한데 이 능력을 이용하기 위한 시도들은 김시영에게는 미스터리/스릴러가 되었다가 판타지화 될 수 있는 상황들에 내내 몰리게 한다. 그런데 막상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그런 서스펜스에서 최적화된 스릴을 누리긴 힘들 것 같다. 그걸 기대하고 읽는 독자들이 상당 수 겠지만.

 

 

 

결국 고스트라이팅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목표물인 당사자가 꼼꼼히 그 소설을 읽어줘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후 소설처럼 벌어지는 일들은 믿기 힘든 마법 같은 결과물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렇게 실현되기를 바라는 강력한 암시가 담긴 부적과도 같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소설은 고스트라이팅란 마법을 전면 배치하였으나 작가로 먹고 사는 문제, 글쓰기의 슬럼프 등등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 창작의 고통을 집요하게 그리고 있다.

 

 

 

내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내공이 봉쇄당한 무림 고수가 막힌 혈을 뚫고 나서 다시 강호로 출전할 재기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줄거리와 유사하겠다. 그래서 나에게도 고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벼락부자에 삼천궁녀 거느리는 황제로 써 달라는 게 아니라 배터리 방전된 심신에 용기와 의욕과 활력을 불어 넣어 줄 따뜻한 글발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부드럽고 달콤한 키스를 받은 기분이 들었는데 아마 김시영도 그런 심경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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