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솔지 소설
손솔지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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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환한 그 눈동자로,

저의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와 들어주실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제 마음으로 넘어오는 금을 밟고 있는 당신,

우리는 다음에 또 어느 이야기의 길목에서 마주치게 될까요.

그때가 기다려집니다.

                             - 작가의 말 -

참으로 기발한 제목들이 아닐 수 없다. 여덟 편의 단편들 모두 한 글자씩이니까 말이다. ', , , , , , , ' 한 글자 제목들은 마치 마법의 주문 같기도 한데 연속으로 발음해 나가면 마지막에는 방의 불이 저절로 꺼지고 이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게 라고 말하는 화자가 등장할 것만 같다. 물론 각 단편들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지만.

표제작인 부터 살펴보자. 라는 이름의 소년이 있다. 그 이름은 부를수록 불행을 잉태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늘 인생에서 흥을 최우선적으로 여겼던 아버진 자신만의 인생을 위해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찾아보겠다고 아들을 남겨둔 채, 역시 집을 나가 버렸다. 소년의 이름은 휘파람소리가 나서 바람개비를 돌릴 정도라 했고 어찌된 셈인지 부모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했다. 기억해주지 않아도 기억되었으면, 지워진 사람들이 슬펐다.

 

 

뒤이어 두 번째 이야기 이야말로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체험이다.누구든 누이를 쳤다. 뒤에서 혹은 앞에서 그녀를 칠 때마다 내 방 벽에 짓눌린 누이의 입술에서는 깨질 것 같은 울림이 흘러나왔다.” 누이는 모두에게 몸을 내주고 모두의 이 된 요물 같은 계집이다. 아버지의 표현에 의하자면 그렇게 설명된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집안에서 유일한 여성인 누이는 아버지에게 정서적, 육체적, 성적학대를 당하고 있고 집밖에서도 세간의 시선이 따갑다.

 

 

남동생인 나는 학교에서 그런 누이 때문에 괴롭힘 당해 모멸감에 시달린다. 제발 누이가 죽어 버렸으면... 누이는 나이어린 자신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계속 곁을 떠나지 않는다. 자신만의 방을 만들겠다는 그녀... 순종적이었던 이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고 할 때 이야기는 처절하고도 구슬픈 결말로 독자들을 인도하고야 만다.

 

 

은 또 어떤가? 입시공부에 여념 없는 어느 학교의 학급. 반에서 11등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는다. 자살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얼마 후 이번에는 10등이 화장실에서 또 죽은 채로 발견된다.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유족 측과 다른 아이들의 학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궐기가 시끄럽지만 역시 자살로 단정 지어 진다. 이제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이것은 저주라고 했고 다음은 9등이 죽을 차례라는 말까지 돈다.

 

 

그런데 죽은 학생의 책상에는 언제부터인가 작은 "홈"이 생겼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지만 한 학생만큼은 그 "홈"이 점점 커진다는 걸 알게 된다. 몸이 들어갈 크기로 "홈"은 불어났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관심이 없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 지도. 마침내 그 "홈"에 몸을 집어넣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렇게 한 글자가 전해주는 기묘한 울림은 기이하고 쓸쓸하며, 가엾고 슬프며, 어둡고 잔인한 상황들 속으로 독자들을 마구마구 내몬다. 그래서 정신없이 빠져들며 읽었다. 가족, 입시, 생명, 죽음, 세월호 참사까지 전방위적으로 아우르고 있기에 소설은 진실을 담은 거짓말에 가깝다."란 작가의 표현에 전적으로 수긍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산다는 것 자체가 참 외롭더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데 소설 속 주인공들을 동정과 연민으로 바라보면서 우리들 또한 따뜻한 위로 받고 싶었던 게 아닐지 뜨끔해진다.

 

 

소설이 가진 힘이 아닐까, 아니면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라는 설명도 가능하겠지. 그리고 얼마 전에 읽었던 강화길 작가님의 <좋은 사람> 이후 한국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또 발견하게 되어 흐뭇하다. 기억해두고 싶은 이름 손솔지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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