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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평점 :
10년간의 공사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1926년의 조선총독부. 낙성식이 임박한 이 시점에 조선인 건축가 이인도가 참혹하게 토막살해 당한 상태로 발견된다. 시신은 부위별로 흩어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대한제국의 대(大)를 연상시켜서 총독부는 초긴장 상태에 빠진다. 삼엄한 경비를 뚫고 발생한 것도 모자라 전기톱으로 난도질당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느 장소에서 눈과 귀를 속여 가며 이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총독부는 외부에 발설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조사를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조선인 건축가들에 대한 부당한 탄압을 저지르려 한다. 이 같은 일을 좌시할 수 없었던 육당 최남선은 과거 자신이 운영했던 신문사의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잡지사 별세계에서 일하는 있는 류경호에게 이 사건을 비밀리에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다. 처음엔 내켜하지 않던 류경호는 이 사건이 일파만파가 되어 조선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일동회의 음모에 분개하여 수락하게 된다.
이 땅에 친일파와 독립 운동가만 있는 게 아니라고 일갈하는 류경호의 말 한마디에서 사건의 향방은 어느 정도 정해진 듯하다. 3.1 만세운동이후 문화정치를 표방하고 나선 일제의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농간 앞에 우리 민족은 그들에겐 여전히 먹잇감일 뿐이다. 아마도 다수의 민초들은 자주독립 같은 거창한 대의명분 보다는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게 더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래서 류경호는 사건의 본질이 왜곡되는 것을 꺼려한다. 어디까지나 진실을 떳떳하게 밝혀내어 우리 민족의 앞날에 더 이상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을 막고자 할 뿐이다. 결국 끈기어린 조사가 거둔 실마리 같은 단서로 범인과 동기를 밝혀내는 류경호 기자. 탐정소설을 정탐소설로 달리 부르던 그 시절은 문명의 신구 불협화음이 빚어내던 암울한 시기였으며 동시에 그 격동의 변화들이 자못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한다.
또한 소설 속 등장인물인 육당 최남선의 실제 행적은 논란거리로서 이 소설처럼 이상 보단 현실에서 실리를 택해 장차 힘을 기르면서 민족의 명운을 도모하자는 속내는 옳고 그름을 떠나 그 시대의 지식인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음직한 일이겠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최남선은 끝까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에 나름 주목했던 것 같다. 반전을 논하기에 앞서 생각의 여지를 남긴 한국형 추리소설의 또 다른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