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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뭐, 언제나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탐구하는 것 같다. 과연 법의 판결에 의한 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진정한 속죄를 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사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은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 늘 비스무리하다. 그것에 여전히 열띤 반응을 보이는 쪽도, 나 같이 시리즈물도 아닌데 느껴야 할 피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소설의 주인공인 무카이 또한 전과자 출신이다. 출소 이후 동업자 오치아이와 바를 겸한 공동경영자로 일하고 있는데 남들에겐 넉넉하진 않아도 단란한, 그러면서 가족들에게 자상한 남편이자 아빠로서 부러움을 사고 있는 남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의 빚을 청산 못한, 과거 있는 문제적 남자였으니 15년 전, 야쿠자에게 쫓기던 무카이는 우연히 어느 아줌마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된 후 그녀로부터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 2명이 출소하면 반드시 죽여 달라며, 도피자금과 성형비용까지 제안 받은 적 있었다.
살인은 절대 할 수 없다며 처음엔 거절했지만 당장 돈이 필요했던 무카이는 다급한 나머지 그 제안을 수락하고 돈을 챙겨 떠난다. 그렇게 얼굴도 신분도 몽땅 바꾼 뒤, 지금은 행복한 삶을 살려 했지만 범인들이 출소했다는 한통의 편지, 과거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두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딸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감시를 받으며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시킨 대로 두 놈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래서 사람은 죄를 짓고 살 수 없나보다. 자신은 죄의 대가를 저질렀다지만 약점을 잡아 아바타로 내세워 살인을 종용하는 그 누군가의 정체와 동기, 그리고 어떻게 그 올가미에서 벗어나게 될 것인가... 대단한 서스펜스는 솔직히 없지만 나름의 긴장감 속에서 진행되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맨 먼저, 무카이에게 살인을 청부했던 그 아줌마는 말년에 죽을병 걸려놓고도 자신의 병 치료는 포기한 채, 돈을 탈탈 털어 건넸을 때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게다.
현실적으로도 먹튀가 될 가능성이 99%인데 1%의 양심에 희망을 걸었음에 분명하다. 평생을 고통 받다 편히 눈감지 못했을 노부코 아줌마의 기구한 삶이 참 안타깝고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쯤에는 죽었을 거라 생각되었던 그 아줌마와의 약속을 누군가에게 들켰다면 무카이와 오랜 시간 그리고 지문유출 경위를 감안한다면 윤곽은 처음부터 좁혀져있다. 단지 예상 1순위가 아닌 2순위가 범인이었다는 점만 틀어졌을 뿐, 하긴 1번이 범인이라면 너무 손쉬운 결말이었겠지. 그래서 반전을 심어 놓았다.
아무튼 결말에서 밝혀진 사건의 동기는 썩 개운치는 않다. 계속 삽질하던 무카이가 돌연 단서에 대한 범위를 달리 돌려 비로소 힌트를 얻게 되는 과정이 다소 설득력 없이 작위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밟혀진 진실의 내막도 부자연스럽고 생뚱맞은 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손에 든 것 같았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기분이 이상했고 그날 밤 나는 잠을 깊게 들지 못했다. 마치 커피를 숭늉처럼 마구 들이 킨 후의 효과 같은.
그렇게 잠이 안 오니 그냥 이 책을 생각했는데 잘못을 저지르면 평생 따라 다니는 꼬리표 떼기가 참 힘들다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실수에서도 나쁜 인상이라는 약점이 생기니까. 그래서 이 책에 대한 평가가 후한 사람들과 실망했다는 호불호 사이에 내가 서 있다.
그런데 우연히 야쿠마루 가쿠의 원서 표지들을 찾아보니 이 소설의 원서와 국내 출간판의 표지 모두 가장 질 떨어지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육교그림이 앞에서 뒤에까지 주욱 이어지니 지루하고 평범해 보이는데다(폭파시키고 싶었다. 멋대가리 없는) 주인공 옆에 저 아줌마, 완전히 한복 입은 할머니 같아 차마 보기 괴롭다. 좀 잘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