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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 시인선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ㅣ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3
나혜석.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공진호 엮고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도 어느 순간에 13번째를 채워나가고 있다. 그동안 많은 시인들의 영롱한 작품들이 소설 위주로 편중된 독서 생활에 조금씩 색다른 감성을 불어 넣었던지라 꾸준히 관심 가지고 읽어보려 하는 편이다.
이번 시선은 그간 출간된 시선과는 달리 주류 문학에서 주변부 문학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세계 각국의 여성 시인 23명의 엄선된 시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라는 제목에서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게 가라앉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의 학창 시절에 교과서로 배울 때가 시에 대한 만남이 가장 왕성했던 순간이 수록된 시의 면면들은 거의 남성 시인들의 작품이요, 오늘 날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와 시인들은 예외 없이 남성들이다.
이 같은 현상은 마치 범죄소설계에 있어서 남성 작가들의 비중이 절대적인 것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솔직히 그 분야는 남성 작가들의 역량이 더 뛰어나다고 보기에 시 같은 분야가 여성 작가들이 힘을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이마저도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우야동동 여기 수록된 여성 시인들의 시들은 가부장적 체제에서 여성성을 강요받고 억압 받아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소망했던 절절하고 안타까운 그리고 짙은 한숨들이 곳곳에 배어 나온다.
"김명순" 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지금은 마땅치 않은 세상이자만 인생의 즐거움과 의의를 찾게 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거라 믿고 살았지만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노라고 한탄하며 그녀들의 속마음을 처연히 대변하고 있는데서 잘 드러난다.
이렇게 페미니스트 시인라고도 부를 수도 있는 여성 시인이 있는가 하면 일제치라 민족의 암흑기에 일본 군국주의에 충성을 다한 변절자로서의 행태로 지탄받았던 여성 시인도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노천명" 시인이겠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한국 여성 시인 중 한명일 것인데 보기에 따라서 여성 시인들의 시에 담긴 해방의 기치와 오늘날 여성들의 가치관 사이에는 모순과 불확실한 괴리감이라는 장벽이 하나 가로막고 있다고도 보여 진다.
그래서 이 시선에 수록된 시들은 아련하게 다가온다. 미래의 여성들이 최종적으로 살았으면 목표나 방향들이 요즘 같은 세태는 분명 아닐 것인데 현실은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틀을 깨고 알을 깨야할 텐데.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던 시 한편을 그대로 옮겨 본다.
<번개야, 번개야, 내 남편을 쳐>
번개야, 번개야, 내 남편을 쳐.
내 애인은 놔두고.
내 남편을 쳐.
이이 ㅡ . 내 애인은 놔두고.
뱀아, 뱀아, 내 남편을 물어.
이이 ㅡ . 내 애인은 놔두고.
걷는 걸 봐.
멋있게 걷지.
춤추는 걸 봐.
멋있게 추지.
웃는 걸 봐.
멋있게 웃지.
(중 략)
번개야, 번개야, 내 남편을 쳐.
내 애인은 놔두고.
내 남편을 쳐.
이이 ㅡ . 내 애인은 놔두고.
우간다 북부 지역의 아콜리족의 여성 시인의 작품이라고 한다.
불륜을 이처럼 신명나게 표현하다니. 그런데 불륜 맞을까?
힙합 가사 같기도 하고. hey 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