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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성 ㅣ 스토리콜렉터 51
혼다 테쓰야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분명 사람은 익숙해진다.
즐거운 일에도, 괴로운 일에도,
상냥함에도, 미움에도
남에게 상처 주는 일에도. <232 페이지>
처음 몇몇 페이지만으로 이 소설의 실체를 가늠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일본 어느 마을,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며 귀엽고 깜찍한 연인 세이코와 동거 중인 신고는 순간순간이 행복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어느 날 집에 곰처럼 생긴 낯선 남자가 식사 중인 모습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서 일순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과 의심, 어둠이 먹물처럼 퍼져 간다.
이에 세이코는 자신의 친부인 사부로 라고 했고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잠시 같이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녀가 예전에 보여준 사진 속 모습이랑 사부로는 전혀 다른 모습에다 몰래 가방 속을 뒤졌더니 간장통에서 붉은 피를 발견하면서 이 남자의 정체가 수상쩍어 지는데... 그때부터 말수 적은 사부로의 뒤를 미행하며 감시하는 동안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는 그에게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일고.
여기 이 마을에 또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에 보호를 요청해온 마야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1년 넘게 맨션에 감금되어 요시오라는 남자와 아쓰코라는 여자에게 학대를 당했다고 하는데 온몸에 상처투성이라 신빙성 있어 보였다. 마야가 말한 그 집을 찾아간 경찰은 문을 열어준 아쓰코라는 여자 역시 온몸이 성치 않은데다 집안 곳곳에 썩은 냄새가 진동하자 그녀 또한 경찰서로 데려가 진실을 추궁한다.
그녀는 뜻밖에도 끔찍한 사실을 실토하는데 자신과 그 남자가 소녀 마야의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는 사건 현장인 맨션에서는 많은 혈흔과 다섯 명의 DNA가 검출되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참극이 이 곳에서 은밀히 벌어졌음이 드러난다. 선코트마치다 403호. 사건의 배후에 있는 요시오라는 짐승은 그는 교묘한 언변으로 먹잇감을 덫에 걸리게 해놓고 한 번 걸려던 사람들을 갖은 회유와 협박 등으로 서서히 자신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꼭두각시로 만드는 악의 화신이었다.
자신에게서 말도 안 되는 억지스런 빚을 지게 하는가 하면 참교육을 실시한다는 명분하에 희생자들의 유두와 성기부터 발가락까지 전기고문과 강간을 일삼았고 더 나아가 가족끼리 상호 학대와 폭행하도록 시켜 끝내 죽게 만든다. 그 시체를 고기처럼 다지고 죽처럼 믹서기로 걸쭉하게 갈아 배수구로 흘려보냄으로써 흔적조차 싸악 지워버리게 했으니, 그래놓고 내 잘못이 아니라 너희가 한 짓이다, 라고 말하는 악마 요시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아수라 지옥도였으니 누구 하나 요시오에게 변변히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어떤 계기로 짐승이 되었는지 최초의 계기가 밝혀지지 않아더욱 소름 끼치는데 요시오는 이런 참상을 조종하고서도 가책 같은 걸 느끼는 부류가 아닌데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응당 지시에 따르지 않고 법의 심판에 맡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신들이 저지른 직접 가족들을 살해한 죄에 대한 처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그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 같은 결과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인간이 짐승이 되는 것도 한순간이요, 그런 짐승에게 지배당할 만큼 나약하다는 것도 믿기 싫지만 사실인 것도 같다. 이 소설이 2002년 3월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 시에서 일어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면 더욱 그렇다. 그 사건은 딸이 부모를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누나가 동생을 죽이고 시체까지 해체한 존속살인이었다지.
소설에서는 요시오란 남자의 정체와 행방을 뒤쫓는데 총력을 기울이지만 쉽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다른 등장인물이 그 남자일까 나름 추리도 해봤지만 헛다리짚은 것처럼 전개 되었다가 그래도 의혹이 안가시기도 한다. 게다가 짐승의 본성이 전염병처럼 타인에게 전이되어 감염되는 것은 아닐지 사람의 내면, 그 어둡고 깊은 속까지 들여다 볼 수 없으니 마지막 페이지는 모호한 끝맺음을 남겼다.
그렇다면 우리는 짐승이 아닐까? 평소 착한 척 하고 있지만 순간 돌변해서 타인의 피와 골수를 빨아 먹을 그런 짐승으로써 준비하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분명 엽기성에서는 <살육에 이르는 병>이 다소 우위겠지만, 잔인성에 있어서는 <짐승의 성>이 우위를 점하는 듯싶다. 아니 다시 돌아보면 두 권 다 그런 방면에선 불꽃 튀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역시 혼다 테쓰야의 가돋성은 일미 작가 중 최고이고 자극적이며 쎄다는 사실을 이번에도 재확인 했다. 비록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할지라도 그를 당해 낼 재주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