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감옥

물의 감옥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솔직히 말해 물 아래는 내게도 두려움의 공간이다. 평소 수영도 못하는 맥주병이 신혼여행 가서 난생 처음 경험했던 스쿠버다이빙 입수 전까지 덜덜 떨고 있을 정도라서 이 소설 속 물에서 벌어지는 생과 사의 갈림길 앞에서 턱 밑까지 숨 차오르는 기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호흡이 가빨라진다. 왜냐하면 시작부터 어떤 여인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으니까, 숨 돌릴 겨를 없이 우악스럽게 그녀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누군가의 손... 코가 부러지고 피가 붉은 안개처럼 번져가는 물속에서 숨을 참고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윽고 물을 마셔버리게 되니 죽음의 소리가 쿵쿵 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눈앞은 곧 암흑이다.

수영하고 싶지 않느냐며 걸려온 전화에서는 에릭 슈티플러 경정을 유혹하는 듯. 그 남자의 목소리에 순간 슈티플러는 반사적으로 증오의 감정을 내비치며 지금 그를 지옥으로 몰아넣게 된 과거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마뉴엘라 슈페를링 경위는 막 경찰대학을 졸업한 신참내기로서 슈티플러 밑으로 배속 받아 한 팀이 되지만 슈티플러는 노골적으로 그녀를 무시하고 혐오감을 보인다. 이러자고 경찰이 된 게 아닌데 계속되는 냉대에 불만과 스트레스가 날로 높아진다. 그리고 기면발작증을 앓고 있는 프랭크는 우연히 태운 여자 손님 라비니아가 누군가로부터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계속 마음 쓰다가 결국 짝사랑에 빠진다.

마지막으로 한 사람, 그는 살인마이다. 물의 정령으로 불리는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소가 말 그대로 물속이다. 범인의 시점에서 보자면 소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조금씩 살인에 대한 동기를 찾을 수 있게 되는데 소년에게는 곁에서 지키고 돌봐야할 여동생이 있었다. 여동생은 또래 아이들, 아니 이제는 오빠보다 수영을 능숙하게 해서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런 여동생을 오빠로서 지켜줘야 할 책임감은 늘 부담감이자 콤플렉스였기도 하다. 동생보다 수영을 못하니까, 대신 물속에서 오래 잠수할 수 있는 재능이 있긴 한데 부모님도, 주위의 그 누구도 여동생에게만 애정을 쏟을 뿐, 소년에게, 소년의 그런 재능을 알아봐 주는 이 하나 없었다.

무엇보다 소년은 여동생에게 금지된 감정, 즉 사랑을 느낀다. 비록 친남매지간이긴 하지만. 그 후 이 가정은 어떤 끔찍한 사고와 그 사고에 얽힌 의도, 그것을 꿰뚫어 본 경찰로 인하여 완전 파괴된다. 이제 소년은 그에게 복수를 꿈꾸는데,,. 다시 현재, 슈티플러 경정의 주변 여자들만 연이어 물속에서 익사 당한다. 물의 정령은 물 자체를 감옥으로 만들어 꼼짝 못하게 가두었다가 물속으로 당겨 죽음으로 내모는 수법으로 여자들을 살해한다.... 계속되는 살인에 얽혀 있는 슈티플러와 그를 증오하게 된 파트너 슈페를링, 기면발작에 시달리다 사고의 위험까지 노출되지만 실종된 라비니아의 행방을 뒤쫓는데 여념 없는 프랭크까지 다섯 사람이 번갈아 화자로 진행되다보면 빠르진 않지만 서서히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순간이 닥쳐온다.

그 순간, 반전은 신뢰와 불신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뒤집힌다. 물의 정령이 갖고 있는 복수심은 애초 사이코라고 부를 만한 삐뚤어진 애정관에서 비롯되었고 희생자들은 단지 어떤 연결고리라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잘못이 아닌데도 미끼처럼 차례차례 처형당했으며, 원인제공자과 동조자 또한 본연의 직무에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모든 사단이 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애꿎은 순정은 피지 못해 슬펐으며, 인생은 자신의 선택의 의해 언제든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으니 원한 살 일 없이 떳떳해야 한다는 교훈을 무난하게 잘 살려낸 수작이었다. 검은 물 밑에서 무엇인가 치고 올라와 내 다리를 잡아당길지도 모른다는 원초적 공포를 남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