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화가 ㅣ 스토리콜렉터 46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8월

푹푹 찌는 요즘 같은 날이면 밀면이 먼저 생각나고 다음에는 미쓰다 신조의 소설이겠다. 찬물로 션하게 샤워하고 나서 한밤중에 읽으면 차가운 얼음덩어리를 입안에 넣고 씹어 먹는 것 같은 느낌이 상당했었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소설에도 면역력이 생긴 탓인지 식상함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가 호러만 남고 미스터리가 실종된 구성 탓에 막무가내 식으로 공포를 들이미는 방식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와중에 최근 새롭게 론칭 되고 있는 ‘집’ 시리즈는 향후 작가에 대한 애정도를 시험하게 될 주요 지표가 될 것 같다. 국내에서는 ‘흉가’가 먼저 나왔지만 일본에서는 ‘화가’ 가 먼저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점, 모두가 살기를 꺼려하는 집의 저주 같은 맥락은 두 작품이 유사하다. 아! 그러고 보니 기시감이랄까, 불길함을 예감하는 전조 등으로 서두를 여는 것도, 소년만의 느낌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어디선가 읽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마저도 마찬가지로 들거다.

소년 코타로가 이사를 하기 전 겪었던 가족들의 비극적인 죽음과 할머니랑 함께 살게 된 배경부터가 참 안타까웠는데 새로운 집에서 겪는 흉흉한 공포는 생각만큼 무섭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그것들이 출몰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되니까 이 어린 소년이 무척 가여워졌고 그 끔찍한 죽음과 이 마을 사람들의 미스터리한 죽음과의 연관 관계에서 한동안 느슨해졌던 미쓰다 신조의 호러와 미스터리의 만남이라는 공식이 부활한 듯해서 반가웠다. 진작 이 정도만 되었어도.

또한, 저주는 피하기보다 맞서야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게 주인공의 입장이겠지만 일부러 덫을 쳐놓고 빠지도록 만드는 안배가 교묘해서 더욱 재밌었다. 게다가 쫓기는 자가 소년일 때 쫓아오는 그것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어딘가 모르게 느긋하면서도 달달한 분위기의 추격전이 되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의 정체가 일반적인 타입이었다면 코타로는 진즉 붙잡혀 당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그것이 귀엽고 매력적이까지 하다는 생각을 중간 중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쫓기는 쪽인데 격투실력이 뛰어난 달인이라는 설정이라면 달아나지 않고 일부러 육탄전을 적절히 벌였을 텐데. 그리고 소년 코타로와 소녀 레나의 풋풋한 만남도 미소 짓게 했는데 어어 하다가 설마 했는데 그런 결말이라면 확실히 헐리웃적이기도 하다. 덧붙여 마지막에 '흉가'처럼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라는 한줄 마저 훈훈했으니, 적절한 반전으로 즐거움을 준 '화가'에 이어 남은 3부작의 종착역 “재원”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