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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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자키 탐정 시리즈의 유일한 단편집 <천사들의 탐정>을 읽었다. 워낙 유명한 과작 작가답게 데뷔 19년 동안 6편의 작품을 썼고 이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유일한 단편집인 이 작품을 만나기까지 그리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이 맘에 든다. 우선 단편집의 특징이라면 한정된 지면에 이야기를 응축해야 하기 때문에 진도를 천천히 뺄 여유를 두지 않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점 일게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 첫 번째 단편에서 장마철로 접어든 어느 금요일 오후에 노란 우산을 들고 빨간 운동복을 입은 어린 소년이 이곳 탐정 사무소를 찾는다는 도입부에서 나도 사와자키도 적잖이 당황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비정한 하드보일드 탐정물이라면 왠지 귀부인이나 아리따운 아가씨가 담배를 입에 꼬나문 채, 다짜고짜 소문 듣고 찾아 왔다면서 수임을 의뢰하는 설정만이 온당할 것만 같은데 뜬금없이 이런 꼬맹이가 무슨 일로(아무리 생각해 봐도 왕따 문제 정도?) 찾아 왔는지, 돈은 충분히 넉넉한지 등등 도무지 성사 조건과는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느 여자 어른을 지켜달라는 의뢰는 이 꼬맹이가 우연히 그녀를 처리해달라는 거래모의를 듣게 된 까닭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참 뜬금없다 싶다. 그래도 승낙하는 우리 사와자키 탐정.

 

 

그리고 이후에 벌어진 은행 강도 사건에서 인물들 간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데다 마침 짜여 져 나온 퍼즐은 어느 정도 내 예상과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를 떠나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꼬맹이가 겪었을 고민과 결단이 참 안쓰러워 서글프기 까지 하다. 아이는 아이답게 한참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애정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라야할 시기이지만 그마저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장차 삐뚤어지지 않고 올바르게 커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렇게 될까봐 조마조마 했지만 다행히 한시름 놓아도 될 결말이다. 가장 흡족했던 단편.

 

 

두 번째 단편은 한국인이라면 바짝 집중해서 읽게 될 단편이겠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제결혼에 얽힌 과거사. 지금은 비록 개선되어졌다고 간주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일본 사회에서 정당하게 수용되기 힘든 것이 이런 국제결혼이었을 것이다. 사와자키가 수임을 의뢰해온 한국남자에 대한 첫인상부터가 있는 그대로를 말한 것이 다면 그렇다 해도 분명 찜찜하며 개운치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 점과는 별개로 자식을 찾고 싶은 남자의 사연 또한 여전히 연민에 차 있어서 미스터리로의 관점보다는 사람 사는 이야기, 그 짠내에 감동스럽기도 했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 그 자격에 대해서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었던 것 같다.

 

 

결국 나머지 단편들 면면도 잘 살펴보자면 사건의 한 일면만 보면서 권선징악을 행하자는 것이 다가 아니라 죄를 지은 죄인과 그렇게 당한 천사 그리고 중간자적 입장에 서 있는 탐정 사이에서 다시 바로잡을 기회가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그 점만이 전부가 아니다. 사와자키가 탐정이 된 이유 같은 흥미로운 에필로그도 보너스로 있으니 부담없이 즐겨볼만한 단편집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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