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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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의 집이 팔려버렸다. 그 집이 팔렸든지 말든지 상관 않겠다며 귀를 막고 도리질을 쳐봐도 화자의 마음은 처음과는 달리 이내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을 끝내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여긴 내 집이라며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입주자들을 내쫓고 되찾고 싶어 견딜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자니 이십여 년 살았던 그 집을 찾아가본지도 한참 되어 이제는 가끔 해묵은 사진첩에서나마 우리 가족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되었구나.

 

 

그렇지만 마냥 즐거운 추억만이 남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분명 사랑해서 결혼했을 테고 자식들을 낳았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일 매일 끔찍한 나날들이 소년을 괴롭히고 미치게 했는데 두 분이 더 이상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 고함, 욕설... 폭력이 오고갔던가? 미움과 절망 속에서 옛날처럼 행복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구렁텅이가 소년의 마음을 와르르 무너뜨렸었다. 당시에는 확실히 충격이었겠다.

 

 

하지만 그런 정도로는 우울한 시절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비록 어머니와 불화와 갈등을 겼었지만 자식들을 때린 적이 없었던, 가장으로서의 무게에 짓눌려 주변인으로 살다 병환으로 돌아가셨고, 그런 가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어떻게든 아이들을 부양하고 버팀목이 되려했던 어머니마저 차례차례 병환으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셨다.

 

 

누이였던 아녜스 또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니... 열두 명의 대식구는 마을에서도 휘귀한 존재로 눈치 받았어도 서로에게 가난과 행복한 추억을 선사했던 울타리였는데 죽음을 목격하고 이별하고 나면 남는 것은 상실감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이 과정을 슬프고도 담담하게 써낸 작가의 자선적 같은 이 소설에서 하루하루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과 점점 가까워진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까?

 


아직은 아니다. 난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애써 외면해 보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울음이 터질 뻔해서 추스르기 힘들었던 이 소설. 문득 옛날에 살았던 우리 집들도 그리워졌다. 몇 주 전에는 우연히 그 집들 가운데 한 곳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잠시 감회에 사로잡혀 버렸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닥쳐올 이별의 끝에서 흔적들을 느끼고 싶어 다시 찾아보게 되지 않을지... 그때 나는 어떤 감정으로 그 집을 바라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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