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학이란 타이틀 앞에서 가장 먼저 심사숙고해야 할 최우선 명제는 인간이 만물의 주인이나 중심이라는 오만함에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서두부터 강조하고 있다. 앞서 <녹색고전-한국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양의 고전문학에서도 자연을 찬미하며 귀의하는 내용의 작품들은 부지기수로 많은데 학창시절 교과서 또는 그 밖의 배움을 통해서 우리들은 먼저 문학성을 논했고 세속의 번뇌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염원을, 그 속마음을 이해하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생각한다면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곧 문명이라는 이기의 발전이 생태계 보호와 거리를 두게 되면 이윽고 멸실이라는 결과를 낳는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를 합리화하는 사례 중 특이한 경우를 든다면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매장 풍습을 들 수 있을 텐데 나 또한 살아있는 인간이 발 뻗을 자리가 아니라 망자의 육신이 흙과 접촉하지 않도록 배려한다는 마음가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이 풍습은 여전해서 매년 국토의 상단부분이 묘지화 되고 있는 진행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싶다.
예와 효를 당연히 앞세운다 해도 <장자> 외편 <열어구>에 나오는 구절은 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주가 임종을 앞두고 제자들이 장례 절차에 대해 묻자 자연 그대로 버려두어 까마귀나 솔개의 먹이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옛날에는 순장풍습까지 있었으니 황제의 방대한 무덤은 자연을 무덤의 장식품으로 삼고자했던 장주의 아름다운 다짐에 비했을 때 우매하기 짝이 없지 않나.
시신이 토양에서 썩어 기름지게 만들어 식물이 싹을 틔우면 동물은 이 식물을 다시 먹게 된 후 최종적으로 인간이 이 동물을 잡아먹게 되기까지의 순환과정에서 죽음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이라는 태도야말로 경건하다. 이렇듯 우리가 조상님들에게 물려받은 이 자연은 임시로 맡았다고 간주하자, 다시 우리는 현명하고 슬기롭게 자연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간과말자.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재미보다는 내내 공감하며 읽게 될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