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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소도중
미야기 아야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화소도중>은 “아름답게 차려입은 유녀가 꽃이 핀 밤거리를 거니는 모습”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이라고 한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들이 연작이라는 형태의 연결고리로 묶여있다. 그러니까 앞선 단편에 등장하였다 사라진 인물은 뒤이은 단편에서 다시 부활한 것처럼 재등장하면서 주연이 조연이 되고 조연이 주연이 되는 식의 화자가 수시로 변경되는 것이다.
그렇게 에도 시대 요시와라 유곽을 배경으로 성격이 판이한 유녀들의 희노애락과 생로병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흘러가는 동안 예나 지금이나 사랑받지 못한 그녀들의 삶은 예고된 불행을 미리 잉태하고 있다. 물론 뜨거운 불기둥이 관음보살님을 만나 극락왕생한다는 불교적 색채가 강한 이 소설에서 관음보살님이 번뇌로 가득 찬 중생구제를 위하여 금귤도, 차 주전자도 필요에 따라 나를 수 있도록 연마하는 대목들도 꾸준히 음미할만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일방적인 욕구배설의 통로역할로 전락해버림으로서 지극히 무미건조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하였으나 아직 남은 마지막 본능의 불씨들을 곳곳에서 지피는 유녀들의 솔직대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첫 번째 단편에서 사랑에 목숨 던진 아사기리의 순정은 이해타산적인 요즘 사랑을 머쓱케 할 정도로 굉장히 뭉클했다.
그래도 어쩌나, 아카네, 기리사토, 야쓰 등등 빚을 갚기 전에는 평생 유곽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현실 앞에서 금수저 말고 흙수저가 함께할 동반자였으니 언젠가 현모양처 되고 싶은 꿈은 요원하다. 뼈와 살이 타는 밤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유효해서 지금도 쇼윈도에 들어앉아 영혼 없는 얼굴로 남자들을 기다린다. 아니다, 음지로 숨어들었구나. 가련하다..
때로는 배신도 갈등도 하지만 어쩌면 비슷한 처지끼리 마음이 통하였을까, 끈끈한 우정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왜 그리 눈시울이 붉어지던지. 아! 참고로 속옷도 젖을지 몰라서 여벌을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아름답고 슬프지만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