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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그리울 때 보라 - 책을 부르는 책 ㅣ 책과 책임 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평점 :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왠지 산문집에 마음이 간다고 했다. 가을이면 머리털도 숭숭 빠지는 털갈이 시즌인데 그런 신체적 변화와 산문집이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학계에서 아직 검증된 바는 없다는. 어쨌든 펴낸 곳이 ‘난다’이고 ‘冊과 책임’ 이라는 이름을 걸고 낸 첫 산문집이란다. “읽어가겠다”와는 어떤 차별점이 있는지는 직접 비교할 길은 없지만 얄브리한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책을 부르는 책’이라는 표지 문구가 과장이 아님은 확신한다. 뭉클해서 눈시울 붉어지는.
제목을 보라, <아비 그리울 때 보라>. 처음 들어본 얘기라 생각했지만 다시 곰곰이 되새겨보니 결국은 들어본 적 있는 얘기이다. 출가외인인 딸이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들른김에 소설 <임경업전>을 필사하다 완수 못한 채 돌아갔다. 이 사실을 안타까이 여긴 아버지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동원해서 같이 필사를 마친 후 마지막 장에 손수 적은글이 “아비 그리운 때 보라”였다고. 요즘 같으면 기프티북이라도 전송해주었겠지만 대량 출판의 시스템이 없던 그 시절에 책 한 권 필사하는 작업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을까?
뜻밖에 필사본을 받게 된 딸은 필시 아버지의 자필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나 또한 눈물이 핑 돌 정도였으니까 당사자야 오죽했을까.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의 마음과 인연을 잇는 선물이자 가교가 책이라는 정성만큼은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미담을 예시로 들면서 김탁환 작가가 소설가가 된 우연한 계기와 창작의 고통을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하나하나의 뒷이야기들을 그 순간의 책들과 엮어 소개해나가는 것이 바로 이 산문집이다.
세월호 사고, 빅뱅, 김광석, 애니메이션 등등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트렌드를 빠뜨리지 않고 언급함으로서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자생하는 소설가로서의 밥벌이도 우리네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굳이 그 논리에 설득당하지 않아도 이 산문집은 무척 잘 읽혀진다. 왜냐하면 소설과 비소설, 장르와 비 장르, 인간, 역사, 과학, 예술 등등 인류문화의 축적된 지식이라는 보물창고가 현란하게 읽어달라고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독자라면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10여년 넘는 세월동안 피가 되고 살이 되며 각종 매체에 기고되었던 그 무수한 칼럼들 중에서 알짜배기 글 50편과 그 속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 책들이야말로 김탁환 작가의 정신세계를 일목요연하게 압축했을 뿐만 아니라 책탑파들의 견고한 지갑을 여는 열쇠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카달로그인 셈이다. 아마도 이 책들을 다 읽게 될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몇 권은 분명 선택해 읽게 될 것 같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특히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