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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줏간 소년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패트릭 맥케이브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평점 :
닐 조던 감독의 영화로 먼저 알려졌던 <푸줏간 소년>의 원작을 이제야 만나보았다. 동화 같았으면 했던 이 성장소설은 성인이 된 프랜시 브래디의 수십 년 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독백으로 악몽의 시작을 연다. 어쩌면 가정환경이 평생의 인성을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명확히 증명하지는 못할 것 같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는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고 그런 폭력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엄마는 늘 자살 예행연습 중일 정도니까 이미 막장 집안인 것이다. 소년이 올곧게 자랄 수가 없는 숙명적 환경이다.
소년이 본격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하는 것은 이웃인 누전트 가와 트러블을 빚고 난 이후부터. 의례히 발단은 사소했다. 그 집의 아들인 필립이 소장하고 있는 만화책을 악의적으로 빼앗은 일이 드러나 필립의 엄마인 누전트 부인의 눈밖에 벗어나게 된 것이다. 순순히 용서할 수 없었던 누전트 부인은 소년의 가족을 노골적으로 돼지 취급하여 끊임없이 경멸과 조롱으로 대하고 이에 소년 또한 물러서지 않는다. 반항이 상식을 넘어 통행세를 내라며 누전트 부인을 압박하지 않나, 집에 침입해 X을 싸갈기기까지... 통제범위를 넘어선 탓에 마을에서 쫓겨나다시피 한다.
가정환경은 원래부터 이랬다 치고 학교라고 다를 건 없었으며, 마을 사람들의 적대감마저 겪다보니 분명 소년에게도 행복한 가정을 일말이라도 꿈꾸며 부모님을 위해 효도할 여지가 있었음이 사실이지만 제대로 기회를 부여받지 못한 탓도 크다. 소년의 해괴망측한 짓거리와 과잉된 증오심들은 모두 어른들의 가식적이고 추악한 위선적 작태를 돼지라고 부르는 불완전한 심리 상태에 망가져있다. 그 에피소드들은 얼핏 불편하게 다가오지만 때론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기도 하다. 소년을 이렇게 만든 게 다 어른들 탓이라고 해도 어쩌겠나.
물론 소년의 본성은 본래 악으로 가득 차 있었을지도 모른다. 환경이 어쩌고 어른들이 저쩌고 하기 전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친구들을 괴롭히는 일련의 행위들은 그런 것들로 면피하기 힘들 정도로 저 멀리 빗나가 있다. 그 삐뚤어진 가치관이야말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순수의 시대를 어지럽힌 난동은 본인 탓과 어른들 탓이라는 죄책감이 합친 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동명의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표현했던 초현실적인 장면들은 그만큼 인상적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