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중국 현대문학의 보배로 일컬어진다는 그녀, 샤오홍의 일대기를 그린 <황금시대>는 책으로도 나왔고 탕웨이 주연의 영화로도 국내 개봉했음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솔직히 중국현대문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 하다시피 하기에 샤오홍이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가늠조차 어렵지만 현지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나 봅니다. 영화에 대한 입소문도 얼핏 나쁘지 않은 듯해서 관람할까 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타이밍을 놓쳐버린 뒤로 이렇게 책으로 대신하게 되었어요.
샤오홍은요, 유년시절부터 척박하고 암울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물질적인 것을 떠나 남아선호의 풍조 때문인지 부모님들로부터 사랑을 못 받고 냉담 속에서 외로이 컸지요. 오로지 할아버지만이 손녀를 끔찍이도 이뻐하셔서 항상 사랑을 주셨지만 돌아가신 뒤로 기대고 의지할 어깨가 사라졌습니다. 그런 뒤로 마음에 없는 결혼을 강제로 추진하려는 아버지를 벗어나 가출하면서부터 그녀는 죽을 때까지 사랑에 집착하게 됩니다. 애정결핍이 낳은 아픔이자 본능이 되어버린 것.
샤오홍은 31세의 한창 나이에 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일생동안 네 남자와 사랑과 갈등, 이별을 반복하였습니다. 가출해서 만난 첫 남자는 바로 아버지가 결혼시키려했던 사람인데 양가집안의 반대에 따른 경제적 궁핍을 견디다 못해 헤어지게 되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정확한 사유는 안 나왔지만요. 그 후로 만난 두 번째 남자 샤오쥔과는 처음의 자유분방한 결혼생활을 유지 못하고 성격차이로 잦은 불화를 겪다 결국 또 다시 헤어졌습니다.
샤오쥔은 샤오홍을 문단에 데뷔시킨 안내자로서 그녀 사후에도 81세까지 살면서 중국 공산당 정권 하에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두 남자를 더 거치게 되지만 결국 서로 성격이 맞질 않아 사랑의 생로병사를 거치는 동안 마지막까지 남자에게 의지하며 보살핌을 간절히 원했더군요.
연약하고 외로우며 고집 센 샤오홍의 성격은 좌절과 배신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진흙탕 싸움에 말려들어가도록 만들지만 그 인연을 쉽게 포기 못한 우유부단함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 자신도 그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약자의 입장에서, 특히 억압받는 여성을 대변하는 여권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이 책의 저자 추이칭은 틈나는 대로 강조하고 있지만 남녀관계에서 그렇게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는 샤오홍의 모습이 모순이라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여 전사 이미지가 더 부각되려면 한번 화끈하게 사랑해서 배신당한 뒤로는 두 번 다시 남자와 연인으로 만나는 일 없이 작가활동에 전념했을 법도 한데 연애비사만이 부각되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 책임은 저자에게 있다 봅니다. 기승전연애... 마치 한국드라마를 보는 것 같이 연애문제에만 지나친 지면 할애하는 것도 모자라 본인이 샤오홍이나 절친이 된 것 마냥 깊숙이 감정이입하여 샤오홍의 미숙함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녀를 편들고 상대남자들의 잘못된 점들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좀 더 샤오홍의 치열한 창작활동과 작품세계, 그리고 여권운동 같은 면에 포커스를 맞추었다면 이런 전개는 피해갈 수 있었을 터인데 무엇이 핵심이 되어야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뒤늦게 루쉰과의 교류나 작품에 대한 소개 등이 특별부록처럼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확실히 집필방향이 잘못 되었습니다.
오히려 지루한 연애비사에 지쳐가다 사후에 그런 내용들에서 샤오홍의 천재성이랄까 작가역량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진작 이러지.... 아쉽네요. 특히 그녀의 작품 중 <후란강 이야기>는 짧은 소개 글에서도 눈물이 핑 도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상적으로 남습니다. 국내에서도 구해 읽을 수 있나 모르겠네요. 그렇게 읽고 나서 영화리뷰를 보니 영화는 그나마 샤오홍의 작가정신을 좀 더 잘 표현한 것처럼 보이던데 나중에 기회 되면 책에서의 아쉬움을 영상으로 재평가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