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기담집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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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날이 덥다보면 잠도 뒤척이게 되고 TV도 켰다 꼈다를

반복해보지만 역시 독서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중에서 기담집은 어찌된 영문인지 올해 들어 시리즈처럼

계속 자의 반, 타의 반식으로 읽게 되는데 이번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이라는 단편집이다.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에세이 종류만 읽고 정작 소설은 단 한 번도 읽어본 적 없었다.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기작가지만 왠지 난해할 것만 같다는

선입견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 기피하다시피 해 왔는데 기담집이라고

하니 막 끌린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기담집을 내놓다니 신기하다,

 

그래서 궁금했다. 무라카미가 3인치의 화자로 등장하는 다섯 편의 단편들,

사람들은 가공의 이야기라고 간주해버리는 모양인데 약간의 첨가물은

있지 않을까 라는 잠시, 실제 경험한 신기한 이야기들이라고 하니

정확히 어느 경계까지를 믿어줘야 할지 헷갈릴 정도로 기묘하지만

있을 것도 같고, 아리송한 상황들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우연여행자>41세의 피아노 조율사이자 게이가 주인공이다.

 

조율사지만 음대 출신답게 피아노 실력도 상당한 그는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지만 뒤늦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당당히 이 사실을

털어놓는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알리진 않아도 일부러 감추지도 않은.

그러나 친누나와의 사이가 틀어져버린다. 누나가 결혼할 상대측 남자

집안을 설득하기도 어려워 틀어질 뻔 했다가 겨우 성사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누나는 그를 원망하고 연을 끊고 산지 오래되었다.

어느 날 카페에서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같이 읽던 한 여자를

만나 특정한 공간에서 특정한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

이 희박한 우연이라는 산물 때문에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하고 친밀감을 공유하며

급속도로 가까워지는데...

 

만남은 즐거웠지만 마침표를 찍을 날이 온다.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은 그녀에게 닥친 개인적 위기랄까 두려운

상황들로 인해 눈을 감아도 은밀하게 그의 마음을 뒤흔들고 잔상을

남기게 되었다. 이것은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 오랫동안

못 만난 누나에게 연락하여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누나가 처한 상황이 어쩜 카페에서 만난 여자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 여자가 처한 상황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카페녀와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누나와 재회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것은 무라카미가 재즈클럽에서 재즈 LP를 구입하고 나오는데

입구에서 어떤 남자가 LP의 제목으로 말을 걸어온 그 상황과

견주게 되어버린다. 우연과 운명은 어떤 이유로 현실을 뒤바꾸어

놓는지, 나에게도 일어날 확률은 실제 얼마나 될지 알 길 없지만

놀랍고 당황스러울 것 같다. 이것을 긍정적인 반등으로 삼기 위해서라도

현재 위기라면 구원이라는 기회로 만들어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 <우연 여행자>는 가장 심금을 울리는 소재로 눈물이 날 뻔만

감동적인 이야기였다(결국 눈물을 흘렸다. 무라카미 식 감성에 넘어가)

그밖에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에서 서핑을 하다 상어에게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엄마를 그린 <하나레이 해변>에서도 연달아 가슴 저미는,

비통한 슬픔을 연달아 느껴야만 했고, 아파트 24층과 26층 사이의

계단 중간에서 흔적도 없이 실종된 남편을 찾아 달라는 아내에게서는

소통 없이 익명성이 보장된 독립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고립과 부재가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회색빛 세태를 그린

<어디가 됐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

제목 짓는 센스도 참 기막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사람의 이름 중 이쁜 것만 골라 훔쳐가는 원숭이 이야기인

<시나가와 원숭이>를 포함해서 나머지 단편들 모두 불가사의하면서

신비한 우화 같은 이야기들로 한보따리이다.

그렇게 흠뻑 빠져 읽다 보면 200여 페이지의 책이 금방 끝남이

처절하게 아쉬웠다. 절망을 구원으로 승화시키기에 매혹적인.

따라서 아름다울 기로 반드시 해석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단편들은 여타 기담집처럼 자극적이고

속 쓰린 후유증을 남기는 대신 짧지만 강렬한 힐링 효과가 있다.

여름에 읽기에 적격인 기담집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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