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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밟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루이스 어드리크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부부의 연이라는 것은 천년의 그리움이 쌓여 백년해로 한다는
얘기가 있다.그 소중한 인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눈높이에 맞춰
배려하고 격려하며, 차이를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설레고 행복했던 순간들은 분명 사랑이라는 끈으로 이어져 있었겠지만.
아메리칸 인디언 혼혈인 엄마와 독일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유명 여성작가가
자신의 결혼생활이 실패했던 쓰라림을 고스란히 담아낸 자전적 소설을
내놓았다는 건 결코 담담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다.
누군가의 가정은 외부에서 봤을 때 결코 그 속사정을 알길 없다.
나 보다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을 것만 같고
아이들은 무탈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키우는 재미에
하루하루가 즐거운 나날이지 아닐까 라는 근거 없는 공상은
이 소설로 나, 그리고 당신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결론,
아니 누가 더 고통 속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나 라는
냉혹한 진실을 직시하도록 만든다.남편 “길”은 유명화가가 아니다.
단지 부인인 “아이린”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서(작품번호도 매기면서) 완성작을 내다 팔 곤 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며 망부석처럼 꼼짝도 하지 않던
그녀 “아이린”은 점차 남편에게 구속받고 있는 것만 같다.
항상 사랑한단 말에 현혹되지 말자. 이것은 “그림자밟기”나 마찬가지이다.
그림자를 통해 영혼을 빼앗을 수 있다는 그 행위 앞에서
아무리 기를 써도 한 번 짓밟힌 그림자를 그의 발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그림 속의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보여준다.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의심한다. 당신을 떠날 수 없노라고 한다.
모두가 그림만으로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도록 남편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부부의 대화는 겉돌기만 하니 부부갈등은 자녀와 남편의 갈등으로
확산되고 한쪽은 다가서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어떡하든 무조건 벼랑으로 밀어 추락시키고 싶어 한다.
밀어내고 또 밀어내고.
이래서야 답이 없다고 판단한 “아이린”은 두 권의 일기를
의도적으로 준비한다.레드와 블루 다이어리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상시 감시하고 싶어 하기에
일기를 몰래 몰래 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레드 다이어리가 쉽게 발견할 수 있게 허술하게 두면서
일부러 읽어도 상관없이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블루 다이어리는 진짜 속마음을 폭탄처럼 써내려간다.
그마저도 은행 비밀금고에 보관하고 있어서 남편은 진짜를
가려낼 수 있지가 않다.당신은 꽤 오랜 수색 끝에 내 빨간 일기장을 발견했을 거야.
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알아내려고 줄곧 그걸 읽어왔을 테고.
그리고 두 번째 일기장,
당신이 내 진짜 일기장이라고 부를 일기장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일기장이야. -P.16-
또한 가족이란 구성원들은 상대를 탐색한다. 자세히 관찰해서 강인하고 영민하게
자라서 능가하고 아빠보다 힘의 우위에 서겠다는 아이들의 다짐은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러온다.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맞서는 자의 대립 속에
가족의 화목이란 뜬구름 잡기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상의 힘이 아닌 자신의 진솔한
감정으로 인해 평정심을 잃고 두 다이어리를 통할 때
남편을 자신의 의중대로 유도하지만
원하는 결말대신 모순으로 부부관계가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소유욕에 집착하는 남편과 이혼하지 못해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이던 그녀도 마지막에는 결단 대신 잠시 주저했던 것일까?
밀어내다보면 추락만이 있을 것 같던 그 길의 끝에서
그녀가 선택했던 방식은 뜻밖이었다.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그래서 내내 고통스럽게 읽다가
한방에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그 행동이
부부관계는 보이는 것 이외에 설명이 안 되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고 설명하기 어려운 어느 지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앎을 얻는 것이기도 하다.
지속적인 사랑은 우리가 상대의 특성을 대부분 사랑하고,
상대의 변하지 않을 흠을 참아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 P.47 -
확실히 끝은 반전이다. 작가가 던지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 상처가 보여도
그것을 가지고 제3자는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은 그들이 할 몫이다.
우리에게 판단할 권리도 멋대로 오인할 이유도 없음이다.
다들 그렇게 비슷하게, 심하면 극단적으로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듯 했다.
과거엔 사랑했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아 불행하다고
투덜대는 이들에게 “아이린”과 “길”의 부부관계가 많은 것을 시시하고 있다면
어떻게 부부로 살아야 하는지도 여전히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