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송곳니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노나미 아사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월 셋째 주 국내 박스오피스 정상은 유하 감독 연출, 송강호, 이나영 주연의 <하울링>이 차지했습니다. 우연찮게도 영화의 원작인 <얼어붙은 송곳니>를 읽고 있던 참이었는데 일단 영화에 대한 평가는 저조합니다. 흔히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의 재탄생은 좀처럼 드물다는 기존 통념을 이번에도 반복 입증하고 있는 듯 합니다. 줄거리??

 

심야 레스토랑에서 한 남자의 몸에서 갑자기 불길이 치솟는 괴이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상반신만 타버리고 하반신은 가벼운 화상을 입은 상태에서 짐승의 이빨자국만 발견된, 전대미문의 인간 발화사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동 화재사건으로 이 남자의 사망 외에 부상자들이 발생하고 레스토랑이 입주한 빌딩까지 상당부분 피해를 입게되면서 경찰은 본격수사에 들어갑니다. 사건해결을 위해 오토바이 기동수사대 소속 여형사 다카코와 중년의 남자형사 다키자와는 파트너가 되어 수사에 착수하지만 둘 사이는 끊임없는 불협화음으로 불편한 관계를 보일 수밖에 없게 되구요.

 

그러던 중 화재로 죽은 남자외에 추가로 짐승에게 물려죽은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동일한 흔적을 지닌 시체에 얽힌 상관관계가 드러나는데요, 그것은 늑대개로 추정되는 짐승을 누군가가 사주해서 공격토록 했다는 정황을 토대로 발화 살인사건과 늑대개에 의한 살인사건 간 동일범 소행여부를 수사하게 됩니다.

 

이 소설, 대단히 재미있네요 아마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몰입도가 강한 대중소설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벨트에 과산화벤조일이라는 특수화학약품 분말을 발화시켜 사람을 불길로 살인하는 초반 부분은 아이디어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정도이며 늑대개를 등장시킨 설정 또한 그동안 일미에서 거의 보기 힘든 신선한 소재와 전개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마치 서구권의 스릴러 소설을 한편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맥박이 계속 빨라지는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인상적인 부분도 많았구요.

 

오토바이 순찰대원 중에서 오토바이에 의한 추적임무를 부여받은 자를 뜻하는 은어인 '도마뱀'인 오토미치 다카코가 늑대개를 오토바이로 추적하는 신은 긴박감도 있지만 둘만의 교감이 형성되는 대목이라 중요한 지점을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늑대의 피가 흐르는 질풍이는 개가 아니라 사실상 야생늑대의 본능을 지니고 있어 처음부터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자신의 행복이라고 받아들이기 보다 자존심을 토대로 절대적인 신뢰관계로 맺어진 상대 외에는 마음을 열지 않지요. 그런 질풍이가 자신을 인정해주는 다카코를 알아보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영화가 욕듣는 이유가 다카코와 질풍이의 실패한 교감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주인이 시키는 훈련을 통해 표적살인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질풍이의 죄가 아니라 말못하는 짐승의 충성심을 이용하여 악행에 이용한 사람들의 추악한 탐욕과 이기주의에 죗값을 물어야하지 않을까요?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처음엔 무서운 괴물로 오해하고 당장에라도 살처분해야하는 공포의 존재로 비쳐지지만 점차 가족이라는 울타리속에서 가족에 대한 긍지와 신의를 지키고자 했던 질풍이에게 숙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에 포획된 질풍이가 모든 음식과 보살핌을 거절한 채 끝내 죽음을 택하는 부분에선 눈물로 가슴을 적시게합니다.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의 가족관계에 비수를 꽂으면서 의연함이란, 기품이란, 고독이란 무엇인지에 관한한 크나큰 울림을 주네요. 질풍이가 지닌 잿빛 야수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이렇게 재미있고 가슴 먹먹한 최고의 소설도 피해가지 못한 오류가 눈에 띕니다. 누워서 침 뱉기, 제 살 깍아먹기, 자승자박 등 최고의 별점을 줄 수 있었던 것을 별 세개로 감점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곁가지가 빈정상하게 합니다. 넬레 노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읽었을 때 느꼈던 불편한 심기를 여기서도 되풀이하고 있어요. <백설...>은 재미라도 없었지만, <얼어붙은...>은 정말 재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충수를 두는 바람에 넬레 노이하우스와 함께 노나미 아사를 저만의 블랙리스트 작가명단에 포함시켜 버릴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작품은 향후 두번 다시 읽지 않겠노라고 다시 다짐해보는데요,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패착을 확인할 수 있었던 <얼어붙은 송곳니>였습니다.

 

오락성 ★★★★★ - 기타부분 ★★ = ★★★(최종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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