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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번호 113 ㅣ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0
류성희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1월
평점 :
법은
죽은 자에게도 공평해야 한다.
밀클에서
이번에 받은 책은 뜻밖에도 국내작가의 법정추리소설 <사건번호113>입니다.
밀클은
왠지 외국작가들의 장르문학 브랜드로만 인식이 되어있던 터라,
국내작가의
법정추리소설은 그만큼 신선하게 다가왔죠.
국내작가의
추리소설은 접할 일도 적거니와 당연히 류성희라는 작가분도 처음 듣게 된 이름입니다.
그런
낯설은 만남은 작품을 읽고 어떠한 감상으로 남았는지 적어보고자 합니다.
한
유명 외과병원의 외과전문의이자 과장인 강희경은 평소 자신과 사이가 극도로 소원한 딸 은혜리의 오피스텔을 여느 때처럼
찾아갑니다.
그런데
찾아간 방에는 한 남자가 피를 흘리며 변사체로 쓰러져 있고,
딸은
마약에 취해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로 발견됩니다.
캠코더
동영상으로 두 사람이 성관계 도중 남자의 강압적인 행동을 피해 달아나다 우발적으로 은혜리가 남자를 볼링공으로 내리쳐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
강희경은 충격에 빠지는데요,
이에
현장의 수습을 놓고 고민하던 강희경은 차마 하나뿐인 딸을 살인자로 처벌받게 할 수 없어 직접 현장을 조작하고 사건을 은폐하기로
작정하죠.
모든
진실을 수면으로 잠재우려던 강희경의 시도는 죽은 남자의 형이 실종신고를 하면서 낌새를 눈치 챈 강력계 형사 장준석과 신출내기 여검사 홍승주가
함께 사건수사를 시작하면서 점차 흔들리게 됩니다.
범인검거를
위해 점차 옥죄어오게 되지요.
CCTV와
탐문수사를 통해 정황상 은혜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피고로 법정에 서지만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는 시체의 행방과 이동경로가 확인되지
않아 무죄선고를 받습니다.
하지만
홍승주 검사와 장준석 형사는 강희경에 대한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에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는데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공통적으로 부모와의 불편한 애증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러한
현실이 이들을 현재의 위치에 몸을 담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삶의
가치관 형성에도 일조합니다.
홍승주
검사는 술에 절어 어린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엄마의 무기력함에 진저리치고,
장준석
형사는 조폭의 대부인 아버지의 위법행위에 반감을 품고 범죄자의 아들로써 범죄를 처단하고자 하는 아이러니를,
강희경은
과거에 교통사고로 죽은 남편과 친구가 사실 불륜관계였다는 점에 절망했었고,
그로
인한 배신감으로 세상을 믿지 못해서 딸을 매몰차고 강인하게 키우려는 맹목적인 엄마로 나옵니다.
각자의
아픔들은 수시로 소설의 전개에 회상 신으로 삽입되어 이들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해주면서 독자들에게 인물에 대한 이해와 감정이입의
동참을 요청하는 듯합니다.
또한
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부분에서도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적절한 은유의 대입 또한 다소 현학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맛깔스러운 느낌을 주는 점도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제겐 나름의 희소성을 가진 한국형 법정추리소설 <사건번호113>이
많이 아쉽습니다.
우선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한 전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대한민국
검사와 경찰의 수사과정이 이렇게 허술한 것인지 조금만 깊이 생각해도 단서를 포착해낼 수 있는 점을 너무도 안이하게 대처하다 뒤늦게 실수를
발견하고 바로 잡으려는 일련의 조치들은 억지스러우며,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제시도 손쉽게 우연을 남발하고 있는 점은 스토리 구성 시 더욱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홍승주
검사를 스타덤에 올려놓게 한 박경자 사건의 경우에도 그냥 들이댔더니 범인이 알아서 자폭하더라는 식인데,
그러한
설정 자체가 우연에 의한 해결이기 때문에 홍 검사의 자질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엔 많이 주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제일 문제점은 감정의 과잉에 의한 감상주의와 그에 따른 신파극입니다.
냉정하게
한 눈 팔지 않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하드한 면이 한국 추리소설에서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같은
여성작가인 미미 여사나 나쓰오 여사의 작품들은 불필요한 곁가지를 최소화하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부모
자식 간 더 나아가 가정의 균열로 인한 문제의 발단은 지금껏 지겹도록 보아왔습니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 같은 관계에 대한 천착은 이제 탈피하든지, 아니면 치밀한 추리를 통한 논리적 합의 도출을 이끌어내든지 양자택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감정의 절제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구태의연하고 진부하단 것입니다.
너무
코너로 몰아세운 것 같은데요.
앞서
언급한 장점이외에도 부언하자면 법은 당연히 피해자의 편이어야 하며,
죽은
자나 살아 있는 자 모두에게 공평해야한다는 작가의 취지엔 공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체의 이동방법에 대한 일종의 트릭구사는 가장 칭찬하고 싶으며,
참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이렇듯
소설의 전반적인 면이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았으니,
향후
류성희 작가의 성장과 분발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에 대해서도 익숙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보게도 됩니다.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바라보는 시각인 닮고 싶은,
때론
닮고 싶지 않은,
하지만 결국 닮을 수밖에 없는 모전여전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