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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속삭임 ㅣ 원더그라운드
존 코널리 지음, 전미영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네놈들은 나를
죽였어야 했다. 그 더러운 물속에서 익사하도록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이제 내가 네놈들을 쫓을 테니까(중략) 네놈들이 무슨
일을 하건, 어떤 조직을 움직이건, 그 모든 걸 산산조각 내고 그 잔해 속에서 네놈들이 죽어가도록 해주마. 네놈들이 내게 한
짓 때문에 너희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처음
이 책의 강렬한 표지에 끌려 구입해서는 생각했던 것 보다 둥둥 뜬 얼굴이 덜 무섭더라는 의견을 피력하자,
오픈하우스에서
날 더러 강심장으로 임명한단다.
그
얘길 듣고 다시 어두운 밤에 확인하니 확실히 후덜덜 하다.
그럼
책의 내용은 표지의 포스만 할까?
이러한
기대 속에 펴든 이 책 <무언의
속삭임>.
데뷔작
<모든
죽은 것>에서
인체의 신비를 시작부터 줄기차게 전시하며,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던 찰리파커 시리즈가 2탄부터
8탄까지
가뿐히 생락하고 9편
<무언의
속삭임>으로
돌아왔다.
그간의
과정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무슨 내막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찰리
파커는 사립탐정 면허를 최근에 재인가 받고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험조사,
불륜조사
같은 자질구레한 일을 수임 받아 일하는 등 상당히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한번 정도 다른 여자와 결혼도 한번 했다가 파탄도 났고,
결말에는
찰리가 상대했던 살인마들의 이름도 거론되는 등 궁금증을 자아낸다.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지만 순서대로 출간되는 게 역시 순리에 맞다고 본다.
데뷔작에서
아내와 딸의 잔인한 죽음이 그동안 엄청난 트라우마가 되어 찰리를 괴롭혀 왔던 것 같은데 세월이 흘러 상처도 거의 아물어 일상에 큰 지장 없을
정도가 되어버려 개인적인 고뇌와 아픔들이 서서히 정리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확인할 수 없고 <모든
죽은 것>의
연계고리와 상당부분 단절된 점에선 더욱 그렇다.
<모든
죽은 것>에서는
특별히 못 느꼈던 오컬트적인 요소가 시종일관 지배하더니 결말에 가까워지면서 <폴링엔젤>과
유사한 점도 보였는데,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등장인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서 호러 분위기로 넘어가는게 정통 크라임 스릴러를
좋아하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
점은 이라크 전쟁 참전 군인들의 연쇄자살사건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줄
알았던 무언의 목소리들이 비밀의 궤에 숨어있는 악령들에 의한 영향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상시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책은 장점을 딱히 꼽기 힘들다.
배경(인물,
지역,
장소)설명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다보니(내셔날
지오그래픽을 읽는 줄 알았다는...)
정작
우리의 주인공 찰리 파커의 활약상은 극히 미미하기까지 하다.
적들을
어설프게 미행하다 발견되어 물고문 당하시곤 줄줄이 자백하고 나서는 뒤돌아서서 차후 피의 복수(상단참조)를 다짐하길래 엄청난 액션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액션씬을 너무 담백하게 처리해 버렸다.
다시
만나게 된 찰리의 절친 앙헬과 루이스는 켄지 친구인 부바 같은 역할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찰리는 이들의 조력에 상당부분
의존한다.
그렇게
주인공의 활약상이 미미하다보니 등장씬은 적으면서 잊을만할 때 그때서야 얼굴을 비추는데 이번 편은 찰리 파커라는 캐릭터 형성에 역행하면서 찰리를
지극히 몰개성한 캐릭터로 만들어버렸다.
잭
리처나 조 파이크처럼 전투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링컨
라임처럼 비상한 두뇌도 없고,
보슈처럼
저돌적이거나 진정 고뇌하는 캐릭터도 아니고,
켄지처럼
쿨하면서 유머러스하지도 않고,
팬더개스트처럼
기이하지도 않으니 도대체 주특기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다.
전작
<모든
죽은 것>에
비해 액션도 줄고,
스릴도
줄고,
공포도
줄고,
캐릭터도
죽으니 도로에 비유하자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커브길도
없이 줄기차게 직선주행이다(그나마 엔딩은
다소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모든
죽은 것>이
"과잉"이었다면
<무언의
속삭임>은
"결핍"이라고
느낌을 정의할 수 있겠다.
<모든
죽은 것>을
다시 읽어보는 게 차라리 나을 듯!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결말부분에서 살인마들의 이름에서 왠지 숨겨진 포스가 느껴지는데 결국 순서대로 나와 봐야 진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9편으로
출간순서를 건너뛴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오픈하우스 담당자님은 이런 저런 이유에 의해서 먼저 출간하게 되었고,
다른
이유는 없다는 답변이었는데,
이번
9편이
최대 히트작이라는 이유는 일단 아닌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