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죽은 후, 나와 가까왔던 바로 그 상대가 너한테 접근해 [페일세이프] 같은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면, 그 인간을 완전히 아작내 버리라는게 작전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 부산역을 혼자 지나가다 보면 두사람이 내 앞을 가로막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도를 믿으십니까? 라며 조상님에게 제를 올리면 내 어깨에 올라타고 있는 무거운 업보를 자신들이 해소시켜 줄 수 있으니 제를 올릴 금전만 부담하라는 식의....

 

정말 황당하여 첨엔 얘기를 들어주다가 이후에 다른 도인들을 만났을 땐 바쁘다고 뿌리치며,황급히 그 자리를 피해버렸었는데, 여기 데니스 루헤인의 <신성한 관계>에 나오는 "슬픔치유원"이 바로 그랬다. 그들은 인간관계의 단절에서 슬픔의 근원이 있고 잘못된 대상을 믿어 신뢰가 무너지고 영혼은 소외되니 구원받는 길은 다시 믿는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 길을 이끌어주는 선지자 역할을 자신들이 맡고 있으니 모든 것을 바쳐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

 

데니스 루헤인의 <신성한 관계>, 켄지와 제나로는 굴지의 재력가로부터 실종된 외동딸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데, 그는 남은 생이 얼마남지 않은 시한부 생명이다. 자신들 보다 먼저 조사에 착수했던 사람이 켄지의 스승이었던 명탐정 제이 베커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하게 된다. 재력가의 외동딸의 행적을 캐다보니 "슬픔치유원"이라는 사이비종교 집단을 방문한적이 있었다는 걸 밝혀내고 그 집단과의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영혼은 살갗보다 붕대를 감아주기 어렵기 때문에 육신의 치유는 상대적으로 쉬워도 인간의 정신에 대한 치유는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기에 앞서 말한 종교의 역기능이 교묘히 상처를 고통없이 비집고 다니는데 정작 당사자는 회복이 아니라 노예처럼 혹사당하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사이비종교집단과의 대결일 줄 알았던 이야기는 탐욕과 추악한 욕망 속에 감춰진 허무의 본질로 변환되는데, 제목인 <신성한 관계>는 전작에서 전남편이자 친구였던 한사람의 죽음이라는 슬픔의 상처가 아물면서 제나로와 켄지의 관계는 파트너이자 연인으로, 사랑의 합일된 일치를 나타내는 데 비해 가족이라는 가치가 붕괴되는 참혹함은 <불신의 관계>라는 극단적인 현실을 보여준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해야하는 걸까? "슬픔 치유원"이 사이비라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해 다시 믿어야한다는 말은 그래도 삶에는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게 아닐런지.... 장식도 가식도 없는 아름다움은 성스러우며, 인간은 존경과 숭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그로써 완벽해졌다는 엔딩처럼.

 

그러면서도 이번 작품은 고조되던 산등성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것 처럼 보인다. 방대한 스케일도 고갤 숙이고 느긋해 보이기까지도 하는데 다음편에 더높이 도약하기 위한 움추림일 것이며, 시리즈 특유의 매력과 끈끈함은 여전이 유효하다.

 

<가라, 아이야, 가라>가 이 시리즈의 백미라고 하니 쉼없이 찾아 읽어내려가야겠다. 아참! 그리고 헨리 폰다 주연의 영화 "페일세이프"를 이용한 반전과 영화가 의미하는 수수께끼는 루헤인의 독톡한 아이디어로서 대단히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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