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요 네스뵈의 사인회가 있던 날, 일부러 그를 직접 보기 위해 상경했다가 예상치도 않게 블로그 이웃님들을 만나서 자리 옮겨 수다 떨었던(난 거의 경청) 일이 생각난다. 요 네스뵈의 실물을 코앞에서 목격한 것도 진기했지만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질 확률적으로 더 희박했는데 우야동동 이웃님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각자가 추천하는 책들이 있었으니 일단 머릿속으로 저장해두었다. 나중에 읽어야지. 다 알고 있는 책들이지만 평소 그냥 패스했던 책들. 이쯤해서 궁금해졌다. 누군가에겐 강추인 책들 모두 내게도 통할 것인가 라고 말이다. 그래서 먼저 읽게 된 이 책,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이다.

 

 

지방 소도시의 대형 슈퍼마켓에서 보안책임자로 일하는 히라타는 물건을 훔치다 걸린 이십대 여성 스에나가 마스미를 훈방조치 한다. 대형마트에 밀려 경영악화로 존폐의 위기에 놓인 회사사정을 감안하면 단 한건의 절도도 그냥 인정으로 보아 넘길 수가 없는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증을 확인하고서는 마음이 바뀌었던 것이다. 히라타는 과거 10대였던 딸을 뺑소니로 잃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충격에 의한 정신분열 증세가 있었던 아내와도 사별한 남자이다. 그때 한때 결혼생활에서 봄 같은 나날이 있었고 가정보다 일을 중시해 미친 듯이 회사일에 매달렸던 적이 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샐러리맨들이 열병 앓듯이 청춘을 불사르니 바야흐로 봄에서 이윽고 여름이라는 절정으로 내닫는다.

 

 

힘든 줄도 모르고 젊음을 믿고 성공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보기 위해. 히라타도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 내에서도 고속승진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끼어든 불행이라는 먹구름이 승승장구에 제동을 건 셈이다.이제 그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혼자 남았다. 회사 내에서도 입지는 추락한다. 자원해서 여기로 왔다. 절도범 마스미에게서 왠지 모르게 딸을 떠올린다.

 

 

인생의 마지막으로 내달리는 남자와 인생에서 루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해 미래가 존재 않는 여자의 만남은 주위의 불편한 눈초리와 오해를 넘어서 동병상련의 처지로 가까워졌다. 희망을 놓은 히라타는 호의를 준비하고 그런 호의에 보은으로 답례하려는 두 사람은 어떤 잔인한 인연으로 엮여 들어간다마침내 결말은 비극으로 치닫는데 이런 상황이 과연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랬다. 가을도 없이 즉시 겨울에 빠진 남자에겐 그녀의 선택은 마지막 구원이자 정리였을지는 알 수 없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지옥의 불구덩이에 깊이 빠져 억만겁의 고통을 겪게 될 그 남자에겐 모르는 게 약이었을 것이다. 알고 나면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그녀가 당초 의도했던 바에서 시스템이 오버해 폭주하고 만 것은 인생을 믿는 사람에게 불확실한 오류로 되돌아온다는 좌절이다. 의미를 찾는 동안 절망의 끝에는 남자라는 비애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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