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ㅣ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평점 :
“엄청 불가해한 상황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기우제가 몇 년 만에 나라 지방의 산골마을에서 행해지는 모양이야.”
괴담을 수집하며 전국을 방랑하는 환상 소설가 도조 겐야에게 이러한 정보는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나 문제적 장소로 달려가게끔 만드는 마력의 주술이었을 것은 당연하다. 괴담이라면 밥보다 더 좋아하는 괴짜인 그가 괴상사 편집담당자인 소후에 시노 양과 함께 당도한 곳은 물의 신 ‘미즈치 님’을 숭배하는 어느 마을이었다. 하미라는 그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동서로 된 분지에 마을 네 개가 모여 사는 곳이다. 각각 사요 촌, 모노다네 촌, 사호 촌, 아오아 촌 순서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전형적인 논농사 마을이다.
벼농사를 지을 시기에 가뭄이 들어 순서를 정해 마을마다 번수를 실시하는 수리조합이 있고 ‘미즈치 님“을 모시는 신사가 각 마을마다 있는 곳이다. 그런데 ’미즈치 님‘을 모시는 기우제를 관장하는 신사들에게는 암묵적으로 서열 내지 우열 같은 자존심 싸움이 존재한다. 토착세력으로 권력이 되고 전승이라는 이름의 기우제는 비가 많이 올 때 ’감의‘, 가뭄일 때 ’증의‘라는 형식으로 나뉘면서 지금까지 계승되어 왔다. 문제는 과거에 기우제 도중 기우제를 집전하는 역할을 맡은 신관 두 사람이 빠져 죽거나 심장마비로 죽는 사고가 있었는데 십 삼년 만에 다시 기우제가 열리게 된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가는 곳 마다 괴이한 살인사건과 맞닥뜨려 명탐정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도조 겐야에게 여지없이 참극이 발생한다. 역시 그는 불길함을 몰고 가는 먹구름 같은 존재였나 보다. 이번만큼은 기우제를 관람하는 제3자의 입장에 서려 했지만 꺼림칙한 그의 경력들을 이번에도 활용할 시점이 돌아온다.
모두가 지켜보는 호수 한 가운데 무대가 있었고 공물을 물에 빠뜨리는 집전을 담당하는 집배에서 신관이 흉기에 찔려 살해된다. 외부에서 집배로 몰래 들어 갈 루트도, 물 밖으로 빠져나간 그 누구도 목격되지 않은, 말 그대로 완벽한 호수 밀실사건이었던 것이다. 정말 특이한 살인사건이다. 흔히 밀실 살인이라고 한다면 건물이라는 유형화된 공간을 의미하는 데 이곳은 물이라는 형태이다. 물을 관리하고 물에 경외하고 물에서 참극이 발생함으로서 모든 일이 한 번에 이루어진 특정한 공간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가며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비극은 괴이라는 모습으로 이미 예견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데 살인범이 살인방법으로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어떤 수단을 간접적으로 지칭하기 위해서라도 군국주의 일본이 자국민에게 영향을 미친 특정 세계관을 통해 일본이란 나라가 원래부터 끔찍하고도 어리석은 인습에 매어 많은 희생을 낳은 우매한 마을이라는 점을 우화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전쟁 중의 일본이 미쳐 돌아갔던 것처럼 가족이 죽어도 나라를 위해 죽었다고 기뻐했던 반응들이 이 마을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전승되고 있지 않나 싶다. 개인 의사로 스스로를 희생한 것이 아니라 제3자에 의해 의문사를 맞이했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란 점에서 국가와 개인 모두에게 반성과 각성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도조 겐야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듣는다.
또한 이번 작품은 그간 악몽처럼 되풀이 되면서 심령공포의 진수를 보였던 것에 비추어보면 특유의 괴이는 여전하나 등장하는 빈도 수 라든지 그 공포의 강도가 현저히 낮아졌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읽으면서 전신을 휘감던 오싹함이 많이 가시는데 괴이를 자연현상으로 풀어내던 과정과 전개들도 이번에는 석연치가 않다. 그동안 완전한 해소까진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선에선 분명한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냥 괴이현상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친 이번 설정은 좀 아쉽기는 하다. 아니면 나 자신이 힌트 내지 정답을 보고서도 이해를 못한 탓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자꾸 속편 이야기가 슬슬 흘러나오는 이유가 그런 부분에 대한 보충설명이 차후에 제대로 실현되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해당될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반면 축소된 공포대신 눈에 자꾸 밟히는 것은 뜻밖에도 달달한 로맨스이다. 도조 겐야가 비록 민속학과 괴담에 정통한 전문가라지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혜안은 없다는 점을 누군가도 지적하고 있지만 나 자신도 그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도 나도 다를 바가 없나 보다, 연모의 징후가 노골적으로 곳곳에서 포착되지만 도조 겐야는 추리에만 정신이 팔려 있을 뿐, 정작 여자의 마음은 몰라준다. 철저히 그런 방면에선 둔하다. 왜 여태 몰랐던 것일까? 그래서 무심한 남자를 악마라고 원망하는 그녀의 투정은 정말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다. 몇 차례 스킨십의 기회가 있었지만 매몰차게 내쳐버려 안타깝지만 향후 이 시리즈를 즐기기 위한 또 다른 깨소금 같은 역할이 되지 않을까라는 즐거운 상상을 잠시 해 본다. 히죽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