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리의 사람들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3
존 르 카레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국제 첩보스릴러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조지 스마일리 시리즈' 7번째 작품이자 카를라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스마일리의 사람은>은 냉전시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데올로기라는 강박관념에 쓸쓸한 퇴장을 고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냉전(COLD WAR)’이라는 용어는 1945년 가을부터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을 축으로 하여 두 진영 간에 새로 팽배하기 시작한 긴장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1989년까지를 그렇게 불러왔다. 혹자들은 냉전은 전쟁이 아닌 평화라고 주장한다. 긴장과 대립은 있었지만 전면은 없었으니까. 대신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서는 스파이라는 척후병이자 불침번을 내세워 휴식 없는 상호감시와 정보전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과대망상에 빠진 또 다른 전쟁이었던 것이다. 교착 상태에 놓인 이 무의미한 소모전은 기만과 교란이라는 선동적인 형태를 통해 각자가 신경쇠약에 빠지도록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견고한 내부단속에 따른 체제결속을 유지하는 또 다른 임시방편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스마일리가 은퇴라는 뒤안길에서 다시 첩보전의 현장으로 소환되어 평생의 숙적이었던 늙은 여우 카를라와 벌이는 마지막 대결은 젊고 날렵한 최첨단 첩보물에서는 맛볼 수 없는 진한 숙명과 회자정리라는 개념이 차별화된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진정한 은퇴식을 지금에서야 다시 열었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서커스(영국 정보부)에서 은퇴한 늙은 스파이 스마일리에게 블라디미르 장군의 사망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것은 일종의 과업이자 묵은 빚을 청산해야만 하는 의무였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장군은 에스토니아 출신 망명자로서 자신과 함께 이념과 사상이라는 기치 아래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함께 수행하였던 동지이자 이용당하다 버려진 스파이들의 고독과 비참한 노후를 대변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었던 인물이다.

 

 

그런 그의 죽음은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외면될 뻔한 처지에 놓였다가 스마일리에 의해 정식으로 조사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블라디미르가 죽기 전 스마일리와 만나고자 했고 샌드맨을 잡을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정황도 포착한다. ‘샌드맨은 바로 스마일리의 영원한 숙적이자 모스크바 센터(KGB)의 총 책임자 카를라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치명적인 단서를 알아보던 중이었고 그 사실로 인하여 암살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죽은 스파이들과 재회할 수 있는 별도의 저 세상이 있다면 못 풀었던 오해를 풀고 싶었다는 스마일리.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여 늙은 여우 카를라를 포획할 마지막 덫을 설치한다. 이제 여우 한 마리가 덫으로 걸어 들어오기만을 초조하기만을 기다리면서도 그의 마음은 엉켜진 실타래처럼 복잡하기도 하다.

 

 

적수로서 분노라는 감정을 품고 있지만 야만적인 관료 시스템을 거부한 채, 24시간 동안 생존이라는 서바이벌을 달성하기 위해 신념과 기지로 살아남아야 했던 카를라에게서 그도 한낱 인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스크바의 무기였고 잔혹한 살인마라고 불렸던 블라디미르의 죽음이 한낱 치정 따위도 아닌 이유로헛된 선택을 했으리라고 평가 절하된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그들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조국의 이름을 걸고 최선을 다했었다. 이렇게 쓸모없는 소모품처럼 폐기되는 처사가 비정하면서 인간성과 신념이 희생당하는 현장에서 모두가 거울처럼 닮아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스마일리와 카를라가 시선을 교환하는 장면에선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처지를 엿보았을 것이라 짐작되기에 세월은 숙명을 뛰어넘어 승자도 패자도 없는 서글픈 송별식으로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막을 내리게 되었다. 첩보스릴러의 클래식으로 기억될 만한 애잔하고 서정적인 엔딩이자 인생을 처연하게 함축시킨 드라마였다. 가을에 더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

 

 

다른 한편 적수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분명하게 인간의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껏 스마일리가 죽어라 추적했던 야수도 광인도 로봇도 아니었다. 그도 분명한 인간이었다. 스마일 리가 조금만 손을 내밀어도 절박한 사랑 따위에 무너지고 말 그런 인간... 그건 스마일리 자신이 실타래처럼 꼬인 삶을 통해 터득한, 누구보다 잘 아는 약점이기도 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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