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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 ㅣ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오늘, 오늘 밤 이 시각에
너희는 이 잘린 머리와 재회했다.
앞으로 너희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으리라.
너희는 저주받고 있다.
너희는 저주받고 있다."
참수에 담긴 의미는 가장 일반적이라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원한의 대상을 살해하고는 목을 쳐 몸과 머리를 분리해 혼과 몸이 같이 있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통을 영원히 준다는 상징적인 형벌로 기억됩니다. 그렇지만 참수를 한 후 효시를 한다는 것은 일벌백계의 교훈을 한다는 의미외에도 일본 추리소설에서는 별도의 해석이 가능한 행위가 있을 겁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최후의 사건인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도 일반적인 관점을 벗어나서 개인만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주술적인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두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 이 소설은 먼저 호겐 가문과 이가라시 가문의 복잡 미묘한 가계도를 파악해야만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사건의 내막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보는데요, 몇번씩 봐도 헷갈리는데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이탈한 기이한 혈연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 듣다보면 분명 홀대받은 가족구성원의 원한 사무친 절규와 한탄을 뒤끝처럼 만나게 되리란 예상을 하게 됩니다. 병원 고개의 집에서 목 매달아 죽은 이는 그래서 더욱 가여웠을 겁니다. 인간도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이란 유전자가 있을 터이고 그것은 가족이라는 공식적인 경로로 탄생되지만 배덕이라는 의외성에 순간 혹하다보면 계획에도 없는 숨겨진 관계를 만들고야 맙니다.
지금은 여권신장이 눈부신 시대니까 공공연하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던 때에는 남자들의 축첩은 어쩌면 당연시되던 세상이니 정부인과 후처, 적자와 서자 간의 갈등, 불화에 얽인 사건들은 일본추리소설에서는 단골로 사용되는 소재일겁니다. 그렇다면 큰 틀에서 본다면 이 소설에서의 살인사건의 범인내지 동기 등은 그리 크게 어려운 숙제가 아닙니다.
분명히 목 매달아 죽은 이도 목이 잘린 이도 모두 기구한 운명이고 연쇄살인의 희생양들도 알고보면 혈겁을 피해갈 수도 있었던 운명들입니다. 트릭이라고 할만한 것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관에서 추락해 죽은 사람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는 점이며 완벽한 알리바이로 교묘히 위장된 살해방법, 딱 한가지가 있겠네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트릭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단순하면서도 참신성이 돋보이는 시도였습니다.
범인이란 것도 범행동기라는 것도 결국 마지막에 상세히 설명되기에 굳이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원통하고 분하다는 탄식이 생기지 않는 것은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랑 크게 차이없다고 착각될 정도로 이해타당한 대목들입니다. 그렇다면 한 권 정도의 분량으로도 끝낼 수 있었던 사건을 20년후에야 해결하게 된 데에는 어떠한 의도가 있을까요? 우선은 낡은 인습의 횡행이 현대에 이르러서 시대의 단절을 맞이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적 소요와 긴다이치 코스케라는 명탐정의 은퇴식을 준비하기 위한 노림수에 있다고 저만의 판단을 내려보았습니다. 그
것은 어차피 중요한 사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말년에는 쓸쓸한 회한이 남으면서 예전같지 않은 이야기의 한계와 노화도 대면하게 되기에 계속 추리소설을 이대로 읽어나갈수나 있을까라는 염려가 읽는 이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오니깐요.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마지막은 그런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