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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븐 : 에드거 앨런 포의 그림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마이클 코넬리 엮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6월
평점 :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불릴 만큼 위대한 천재소설가.
코난 도일, 도스토예프스키, 보들레르 등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준 최초의 추리소설가. 죽기 전 며칠 동안 묘연한 행방으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그의 죽음. 솔직히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전무하고 생전 그의 작품들을 접해 본 적 없는 내게 <더 레이븐>은 포를 만날 수 없는 최초이자 마지막 부스가 되리란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가 단편을 사랑하는 이유는 누누이 밝혔듯이 뷔페음식에 비유하면 되겠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일반식 메뉴는 호기심에 금전적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단점이 있지만 뷔페는 입맛대로 골라먹으면 된다. 물론 모든 뷔페 메뉴가 입맛에 맞진 않지만 그래도 기본 이상은 하기에 선호하는 것이고 이 책 또한 성찬이긴 하지만 몇몇 단편만으로도 충분히 제 값을 한다는 게 괜찮다.
그럼 어떠한 단편들이 내 감성을 제대로 자극하였을까? <검은 고양이>, <M 발데마 사건의 진실>, <고발하는 심장>, <함정과 진자>이 좋았다. 포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물줄기는 예외 없이 공포, 우울, 광기, 죽음, 고통 등 어둠의 요소들이 빼곡히 들어차 낮에 읽었을 때랑 심야에 읽었을 때 두려움이 확연히 배가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고 지금 언급한 단편들을 제외하고는 쉽게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난해함은 끝내 극복하기 힘들었다.
<검은 고양이>는 바로 스티븐 킹의 <지옥에서 온 고양이>가 즉각적으로 연상될 정도로 두 작품은 닮아있다. 혹시 킹이 포에 대한 오마쥬로 만든 작품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고양이를 복수의 화신이라는 이미지와 야만적인 공포를 한데 섞어 끔찍한 고양이 미스터리로 만들었다는 점이 그렇다. 물론 플루토에 비해 킹의 고양이가 더 능동적으로 업보를 집행한다는 사실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M 발데마 사건의 진실>의 경우에는 죽음에 최면을 걸고자 한 실험이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한 저열하고 광적인 지적 호기심으로 변질되어 썩어 문드러진 발데마의 껍데기로 화하면서 가장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허망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안락사도 인간으로서 양보할 수 없는 소중한 권리라는 깨달음이다. 편하고 싶다. 편하다.
<고발하는 심장>에서는 이웃집 노인을 살해하는 것에 명확한 동기가 없다.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살해하는데 사이코패스라고 해야 할지, 소시오패스라고 해야 할지 구분 짓기 힘드나 정작 살인 이후 봉인되었던 양심이 봉인해제 되어 광기를 반성하게 한다는 결말은 상상력의 널뛰기로 장악된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다. 끝내 주는 이야기! <함정과 진자>는 시각적인 공포의 총합으로 영화 한 편을 보는듯한 서스펜스의 극치를 시전하다 역사적 근거에 의한 뜻밖의 결말로 마무리 짓는데 이 역시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예상 밖의 독창적 아이디어는 대단히 훌륭했다.
맘에 든 몇 편은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별로였고(모르그가의 살인, 황금벌레는 고문수준이다.) 다른 분들처럼 현존 추리작가들의 헌정 에세이가 오히려 더 쏠쏠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본 메뉴보다 디저트가 맛있는 실례란 이런 경우일 것이다. <시인>을 집필하는 여정을 언급한 마이클 코넬리의 에세이가 단연 갑이었고, 에세이 기고를 의뢰받고 처음엔 포의 작품들에 몰이해의 반응을 보였던 수 그래프턴은 일방적 찬사 일색의 에세이들 중에서도 발군의 웃음을 주면서 혼자 낄낄대며 읽어 내려갔다. 과감한 솔직함이 돋보였고 공포, 추리문학의 효시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에드거 상이 유래되었다는 사실 또한 첨 알게 되면서 나의 무지함에 언뜻 낯부끄럽기도 했으며, 첨 읽었다는 그의 단편들이 낯설지 않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도 들면서 포를 위한 세계 유일무의 컬렉션은 그렇게 끝났다.
공감과 비 공감, 이해와 몰 이해의 경계점을 수시로 넘나들며 현대 추리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로와 족적들은 이 장르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자양분의 역할을 충실히 자임했었기에 오늘날 많은 독자층으로부터 사랑받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고전은 언제나 어렵지만 고리타분하다며 외면할 수 없는 미래의 거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