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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바라는 기도 ㅣ 밀리언셀러 클럽 48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제 이 시리즈도 서서히 종착역을 향해 한걸음씩 내딛는 중이다. 마지막 편이 될 <문라이트 마일>이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비를 바라는 기도>는 루헤인의 차기작을 제목처럼 가뭄에 단비 내리길 바라는 심정으로 읽었고 역시나 재미있다. 이번에는 인간의 심리를 조종하는 정체불명의 살인마와의 대결이다.
한 여성이 켄지를 찾아와 자신을 스토커하는 남자를 처리해달라는 의뢰를 한다. 의뢰대로 켄지와 부바는 그 남자를 찾아가 먼지 나듯 털고서는 두 번 다시 의뢰인의 삶에 태클 걸지 말 것을 경고한다. 그런데 그 의뢰녀는 얼마 후 자살하게 되고 켄지를 그녀의 행적을 탐문한 결과 그녀의 자살을 유도한 미지의 살인마가 배후에 있다는 걸 밝혀낸다. 그 수법은 표적을 공황상태로 몰아붙여 세상과의 단절을 이끌어내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던 것. 나중에서야 살인마의 정체는 물론 직업까지 드러나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는 직업군이라 별다른 신분을 예상했던 당초의 생각을 살짝 넘어서버렸다.
그러면서 살인마가 갱 조직을 사주하여 켄지를 위협하지만 이전에 가슴 아픈 사연으로 불의의 이별을 고했던 파트너 앤지의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점은 읽으면서 '그래 다행이구나'라는 안도와 함께 두 사람은 공생공사라는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음을 확실히 상기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 이 시리즈를 읽고 무엇보다 나를 흡족하게 했던 폭죽같은 유머는 확실히 유효펀치가 줄어들면서 점차 건조해지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액션만큼은 여전히 새끈하다. 한정적인 동선 내에서 짧고 강렬하게 폭발하는 그 순간만큼은 아찔하다 못해 호흡마저 멎는 듯하다.
내가 스릴러에서 제일 좋아하는 액션 묘사는 항상 이 시리즈에 다 있다고 인정할 만큼 최고라 생각해오면서 이번 화약고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역할은 부바가 제대로 맡았다. 오해인지 착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바의 생사에 먹구름을 암시하는 듯한 서평들을 예전에 접하면서 혹시나 하고 걱정했지만 역시 부바는 부바였다. 살인마에 대한 켄지의 분노를 발판삼아 마지막 처단은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이 지옥행 특급열차에 탑승시키는 괴력이 생생하게 부딪혀온다. 앞에서 견인하는 것은 켄지와 앤지이겠지만 부바가 없다면 누가 이 시리즈를 뒤에서 제대로 받쳐줄 것인가? 그런 평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종살인병기 부바 로고프스키는 서포터즈 역할 대신 숨겨진 매력과 능력을 강렬하게 발산했다. 격하게 아낀다면서~~~~
그런데 마지막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려는 순간 드러나는 배후의 진실은 앞서 읽었던 모 스릴러의 결말전개와 선택에서 여러모로 닮았는데 세상에는 법으로, 정의로도 어쩌지 못한 채 단지 덮어두어야만 하는 결정이 분명 존재한다. 굳이 구덩이를 파내어 들춘다면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을 잉태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판은 하늘에 맡길 수 밖에.... 어차피 정의실현이라는 미명 또한 목적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취했던 비합법적인 조치에 대한 심판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타협 받았던 것은 주지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피장파장으로 셈해야 할지도 모를 이런 결말은 예전이라면 못마땅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서 와서는 부분 수긍하게 되는 까닭은 세상 속에 기생하는 어두운 인간심리를 완전 공감하긴 힘들어도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루헤인만의 필치로 설득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