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방 모중석 스릴러 클럽 29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아들의 방>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난니 모레티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아들의 방>이 바로 연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로 본지 10년도 더 되었는데, 이 책과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던 영화였지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책 보다 영화가 우선시될 정도인데 그만큼 책 표지뿐만 아니라 제목조차 독창성이랄까, 임팩트가 부족한 탓인지 심드렁 하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코벤의 책은 <결백> 이후 두 번째로 읽어봤기 때문에, 적은 표본으로는 상대적인 비교는 불가할 것 같습니다.

 

흔히 코벤의 책들은 사소한 문제점들이 치명적인 위협이 되어 일상을 뒤흔든다는 설정이 많다고 하는데 이번 <아들의 방>도 결국 그러한 패턴을 그대로 밟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소한 말실수가 나비효과처럼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되어 되 돌아 온다는 전개에 대해선 태클을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 책은 일단 가독성은 좋습니다. 읽으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술술 잘 넘어가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긴장백배할 일도 없다는 것, 그냥 무덤덤하게 진도가 나간다는 것이죠.

 

최근 스릴러에서 가족이라는 소재는 어느덧 한국 사람들이 밥 먹을 때 곁들이는 김치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갈등과 불화, 가족의 중심축이 된 아이가 범죄에 연루될 때마다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테이큰식 진행, 그리고 마지막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화합을 도출한다는 마무리까지 사골 국물 우려먹듯이 보고 또 보게 됩니다.

 

근데 자식의 사생활을 컴터로 일일이 감시하고 체크함으로서 관심개입이란 표현으로 대체하려하는 것 말인데요, 부모님의 경우에도 제가 방에 틀어박혀 컴터로 야동을 보는 건지, 리포트를 작성하는 건지 당췌 확인할 방법이란 모르셨는데 마이크 부부는 작정하고 덫을 쳐놓습니다. 뭐가 걸려드는지 어디 함 볼까나! 자식들은 이런 것을 간섭이라면서 극렬 반발하겠지만요.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의 의사소통 부재로 인한 "단절"을 훔쳐보기를 통하여 복구하고자 하는 절박함은 어느 정도 공감되긴 합니다.

 

어디까지가 개입이고 간섭인지 명확한 구분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만 방임을 넘어 과잉보호에 미달되도록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아들의 비밀을 캐고자 하는 마이크 부부의 구상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엔 이 장르에선 무작정 새롭지가 않다는 겁니다. 암만 가족 문제로 이리 틀고 저리 틀어 봐도 김치가 김치전 된 것 외엔 별다른 식감이 없습니다. 이제 이런 얘기들은 너무나도 진부하고 식상하다구욧!

 

소재 측면이나 패턴 측면에서 새로운 떡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이 계통에서 시간을 보낸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정말 무덤덤한 책이예요.

 

그리고 이런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해를 품은 달'을 보려고 하는데 다섯 살 아들이 '뽀로로'를 보겠다네요. 내 아들이지만 갖다 버리고 싶네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는 이런 사연이 올라왔다는 기사를 오늘 인터넷에서 봤는데 웃자는 얘기로 치부하기엔 도가 지나치다 싶은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이 같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부모의 절대적인 헌신 및 애정 보단 현실에서 보여주는 부모들 이기심의 발로를 보면서 차라리 부모 노릇 제대로 못하는 루저들에 대한 직격탄을 날리는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더 속 시원한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이 책의 반전 또한 영 불만스러운데 전개과정에서 비교육적인 설정을 굳이 택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 전에 범인과의 대치에서 처단과정도 개연성도 부족하고 허술해서 맥 빠지는 분위기인데다 해결방식도 썩 보기 좋지 않습니다.

또한 에섹스군 수사과장 로렌 뮤즈의 활약상은 다 어디로 갔나요? <결백>에서 짜리몽땅한 여형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 등장할 줄은 미처 몰랐었죠. 허영심과 과시욕 덩어리인 그녀가 달갑지 않아 은근히 비 호감 캐릭으로 각인되어 있었는데 제대로 된 능력만 구경시켜 주었더라면 별도 평가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반까지 간간히 사건에 대한 단서를 캐고 가던 그녀가 어느 순간 증발했다가 다 해결되고 나니까 엔딩 씬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부모들의 고군분투기라면 경찰의 역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데 로렌 뮤즈 시리즈물도 아니고 왜 출연을 시켜야했는지도 진정 의문입니다. 영화였다면 비싼 출연료만 낭비하게 된 셈이죠.

 

그래도 이 책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대목은 다들 언급하시는 도입 부분, 진화론과 창조론의 퓨전화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범인이 타켓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자 떠 별였던 내용이지만 읽는 이의 눈과 신경을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네요. 만약 현실에서 벌어진 상황이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만한 케이스가 아니었나 싶고 논리가 재미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으나 달리 임팩트 없이 그냥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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