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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사실 제목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고 들었다, 왜냐하면 원제가 <노스 라이트(North Light)>, 즉 북쪽의 빛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설 속 주인공인 건축사 아오세가 직접 설계한 Y주택이 북향으로 지어진 것과 연관있는데 일반적으로 채광효과가 뛰어난 남향을 선호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관행을 벗어난다고도 볼 수 있겠다. 더 나아가 그의 유년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오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녀야 했고 그곳 인부들에게 제공되는 숙소는 흔히 북향으로 창이 나 있었다고 하니 빛을 다루는 관점은 우리들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오세에게도 버블 경제시대에는 건축사로 호황을 누리던 때가 있었으나 거품이 걷히고 불황이 닥쳐오자 좌절과 실패, 실직이라는 쓰라림을 맞보게 된다. 아내와의 갈등도 깊어지면서 결국 이혼까지 한 상태로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중학생 딸과 가끔씩 얼굴을 보는 정도이다. 과거의 열정과 패기는 온데간데없이 동년배인 오카지마의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중, 의뢰인으로부터 “아오세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란 요청을 받고 설계한 집이 Y주택이었다. 이후 Y주택이 인기를 끌며 똑같이 지어달라는 의뢰가 늘어나는데 이상하게도 Y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면서 그는 의구심을 품는다.
의뢰인과 그 가족들은 정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단순한 실종이라고 볼 사안이 아니다. 채무로 인하여 도피 중인 것인지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의뢰인 실종 미스터를 해결하고자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나치스의 폭압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했던 독일의 근대건축의 거장 브루노 타우트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탐구하게 되는데 우연찮게도 빈집인 Y주택에 타우트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의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도무지 영문을 알길 없던 의뢰인의 행방과 의중을 파고 들어갈수록 점차 드러나는 일말의 진실엔 형언할 수 없을 만큼의 진하고 감동적인 사연이 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국은 가족이 핵심이었다. 아오세의 아버지가 아들이 각별히 아끼던 구관조가 달아나자 찾아나서다 벼랑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고도 그렇거니와 의뢰인이 “아오세씨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라고 했던 말이 단순히 설계에 신경써달라는 상투적인 의뢰가 아니었음에 어찌 무덤덤했겠는가 말이다. 집이 가족만의 단란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채, 투기목적물로 변질되어 버린 현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본래의 순수한 공간으로 회귀하기만을 바라는 현대인들의 바람을 절절히 반영해내었다고 보면 된다.
만약 초심을 되찾는다면, 다시 출발점에 설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응원하며 기다려주는 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들이 가족이며, 그 출발점이 바로 집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비록 이혼한 관계지만 아직 남편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아오세의 전처와 휴대폰 번호에 아빠와 엄마를 가족이라는 그룹으로 등록 저장하고 있는 아오세의 딸내미의 속정은 무심한 듯하면서도 수시로 내 콧날을 시큰거리게 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내 가족만큼은, 내가 사는 집만큼은 안고 가련다, 현실에 충실한 삶을 추구하자는 예술혼까지 활활 타올라 가슴 먹먹한 건축 휴먼 미스터리가 탄생한 순간이다. 결코 폭주하는 법 없이 천천히 걸어갈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