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자꾸 이 책의 제목이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읽힌다. 심은하와 이성재가 출연했던 그 로맨스 영화와 이 책을 연관 지을 하등의 단서도 없건만 내가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은 모두가 극찬을 하더라. 미술사에 관해선 1도 모르는 이들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친절하게 미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고 말이다. 나도 처음엔 잘 읽혔다. 그러나 일생을 미술관 방문에 투자하지 않는 안목의 소유자 입장에선 서양미술 사조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좀 난해하다. 대신에 이 책에서 소개된 작가들의 인생을 살폈다. 그리고 작품에 얽힌 비화를 주목했다.
먼저 드가가 그린 발레리나 그림에는 무대 뒤편의 은밀함이 표현되어 있을 줄은 어찌 알았겠는가, 무심코 보면 춤추는 발레리나를 구경하는 남자들이 그냥 공연관계자 정도로만 간주될 수도 있는데 실상은 연예인 스폰서 같은 욕망사냥꾼이라니 섬뜩함마저 들었다. 그렇게 혹독하게 연습한 결과가 누군가의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된다는 게 참담했다. 예술이란 비단 아름다움을 전시하고 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뼈저림이다. 반 고흐가 중독에 빠졌다는 압생트란 술의 맛이 또 궁금하다. 지금은 맛볼 수 없는 녹색요정이 가져다온 폐해.
고흐가 왜 그리 노란색에 집착했는지 알고 나면 핸디캡을 오히려 불멸의 명작으로 반전시킨 예술혼은 정말 용광로 같이 열정적이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역시 서양미술의 아이콘답게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대중들에게 가장 친화적인 화가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읽어나가다 보면 중반이 좀 지루해진다. 작가들의 개인사는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하고 종종 언급되는 명작들에 대한 해설을 이해하지 못하고 페이지가 답답하게 넘어간다. 좀이 쑤셨다. 그러다 후반부의 최강연애 찌질이로 소개되는 바실리 칸딘스키에서 다시 정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 뮌터에게 애정이 식자 일방적으로 잠수 탄 칸딘스키, 이별 후 정신적 충격이 컸을 그녀가 말년에 겪었던 우울증, 그리움을 상상하면 가슴 한켠이 덩달아 휑해진다. 안쓰러움... 안쓰러움.....
칸딘스키에 대한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남겨진 자의 상처가 자꾸 생각나서 사랑이란 녀석이 참 허망했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서양미술사의 대표적인 화가들의 삶과 그림에 대한 열정들을 하나하나 학습할 수 있었다. 확실히 미술관을 직접 찾지 않더라도 미술을 접하는 데 있어서 괜찮은 접근방식이겠다. 각 작가별 사연은 취향이 갈리겠지만 방구석에 안목을 넓히기 위해 대화하듯이 설명한 이런 책을 가급적 칭찬하면서도 서양 중심의 미술사에서 탈피해 동양적 관점에서 설명해 주는 책들이 있다면 그 또한 신선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