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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 - 여행 같은 일상, 일상 같은 여행
양영은 외 지음 / 세나북스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나도 맨 처음 해외 나가 본 것이 14년 전 회사에서 선진해외항만 시찰이라는 타이틀로 내보내준 일본이었다. 그때는 큐슈지역만 돌아다녔는데 가깝고도 먼 나라답게 한국과도 닮았으면서 뭔가 이질적인 면도 분명 보였었다. 어디 얼마나 일본의 거리가 소문대로 깨끗한지 두고 보자며 눈을 부릅뜨고 버스 차장 밖으로 살폈더니 정말 담배꽁초 하나 발견하기 힘들어서 경악했다거나 파친코 가게에 들어간 직원들을 밖에서 기다리다 우연히 마주친 파친코 가게 알바녀가 정말 희한하게 생겨서 다시 또 경악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나라 여자들의 평균미모가 앞서는구나 했더랬지.
그러면서 이 책에서 소개된 “한 달 살기라 쓰고 로망이라 부른다.”라는 문구를 곰곰이 되새겨 보게 된다. 주로 프리랜서 출신들의 여행기가 실려 있는데 대부분 현지의 일본인들을 만나 친구처럼 우정을 쌓기도 하고 다른 일본인들의 친절에 감동을 받은 사연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나 또한 당장 일본을 떠나 단기간 관광이 아닌 현지에서 느긋하게 체류하며 골목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면서 일본인들의 친절한 미소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들기도 한다.
어, 그런데 모든 일본인들이 오프마인드가 아니라는 조언대로 관계의 장벽에 부딪히는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모두가 내게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음에 공감하기도 했다. 나도 그때 그랬지. 같이 간 일행이 술이 떡이 되어 일본 양갱을 꼭 사가야 한다며 느닷없이 후쿠오카 전자상가에서 말도 안 되는 일본어로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식의 주사를 부렸을 때가 있었다. 난 동포로 분류되기 싫어서 얼굴 돌리다시피 쪽팔렸는데도 일본 청년점원이 당황한 표정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 최선을 다해 응대하던 모습에서 일본을 인정해버렸다.
그러나 우리 일행이 닛카쓰의 어느 포장마차를 찾았더니 일본 점주 아저씨가 다짜고짜 “노노”라며 성질을 막 내면서 거부하던 정반대의 기억도 존재한다. 어찌나 무안하던지. 살살 좀 거부하시지. 이 책에서도 오키나와 편을 보면 “한국인이 싫어요” 라고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 그 포장마차 점주 아저씨도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그러지 않았나 싶다. 혐한인가 아닌가를 떠나 분명히 예전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진상을 부린 적이 있자 않을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 잘못된 역사관에 의한 혐한은 지탄받아야 하겠으나 한국인들이 자초한 부분도 상당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 당시 우리 일행을 태운 일본 관광버스 운전기사 아저씨 이름이 마루타 상이었는데 가무잡잡한 얼굴로 담배는 주궁장창 피던 골초에 무뚝뚝했음. 뭐 우리나라 운전기사 아저씨랑 별반 다를게....
그래서 이 책의 여행기들은 일본이란 나라를 환상적으로 동경하게 만들어서 로망이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야 싶다가도 일본에서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한 시스템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가이드라고 판단하게 된다. 무엇보다 요즘 한일관계가 삐걱거린다. 배알이 꼴릴 정도로 질투 나고 인정해주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 악감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디 우호적인 선린관계가 구축되어 마음 놓고 일본을 즐기고 받아들이게 된다면 오죽 좋을까.
조심스레 고백하자면 여전히 내 마음의 일본방문 1순위는 훗카이도다. 체질적으로 더위에 약한 나로서는 영화 <러브레터>에서 봤던 설국을 잊지 못하니까. 이글이글 속은 타 들어가는데 식히고 싶어. 머리도 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