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터
김호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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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라면 사족을 못 쓰던 내게 주인공 준석이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파이어볼러라는 게 흡족하다. 그랬다. 준석은 입지전적의 신화를 거두고 있었으니 어려서는 부모에게 버려져 고아원에서 쌈질이나 일삼던 문제아였는데 외할머니가 어린 준석을 데려다 옥이야, 금이야, 새끼 강아지처럼 애정으로 길러주셨고 야구를 좋아하게 된 손자를 선수로 물심양면 지원해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준석은 장차 서울 연고의 구산 파이터즈에 프로야구 선수로 입단하게 되었고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활약 중이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을 겪게 된다. 시합을 마치고 운전하다가 갑자기 덮치는 트럭에 의하여 교통사고를 당했고 다행히 큰 부상 없이 병실에서 의식을 되찾았다. 자신을 줄곧 지켜보고 있었다는 경이라는 여자가 옆에 있었고 사실은 사고를 일부러 낸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이 그들의 감시망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 이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대체 이 여자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준석에게 경은 자세히

보충 설명을 해주는데....

 

 

준석의 뇌를 촬영한 MRI 판독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신의 머릿속엔 거머리 같은 칩이 들어 있다. 그 칩은 메피스토라는 기관에서 당신의 공감각을 네트워트화 하여 누군가가 준석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함께 느끼며 체험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이 많은 노인들로서 메피스토의 회원으로 가입하여 거액을 지불하면 준석과 같은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맡아버리게 된 파우스터와 파우스터들을 조종하는 파우스트라는 관계가 형성된다고 했다. 무섭도록 놀랍고 섬뜩하지 않은가?

 

 

이것은 완전히 악마와 거래하여 영혼을 저당 잡힌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를 그대로 본뜬 것이다. 아니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로부터 선택당해 인생을 도둑맞게 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준석은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갑작스레 죽은 연인 지수와 할머니는 파우스트의 사주이자 안배였음을 알게 되었으니까. 파우스트들은 넛지와 백업이란 경계가 모호한 기준에 의하여 마치 다마고치를 사육하듯 자신들의 입맛대로

후원, 조정, 조종이라는 형태로 개입해 왔던 것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인데 왜 지 맘대로 나를 컨트롤 하는 것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준석의 파우스트가 어떤 시점에 준석의 공감각에 접속하는지 알게 되었고 준석이 메이저리거가 되려는 꿈에 함께 동조하고 공감하고 있음도 간파하게 된다. 이제 어떻게 해야 놈의 마수에서 자유의지를 되찾을 수 있을까? 각자가 원하는 선택을 놓고 벌이는 퍼펙트게임을 향한 도전은 야구팬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대목도 있으니 스포츠와 스릴러가 결합한 짜릿한 명승부는 손에 땀에 쥐게 한다. 동시에 준석의 반격과 복수가 시작된다.

 

 

그렇게 머리로는 젊은 몸을 조종하며 욕망을 채우려는 기성세대의 오판을 좌시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내가 그 나이가 되어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과감히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자문한다면 솔직히 노라고 답하겠다. 교과서로 익히는 윤리적 판단과 현실엔 그만큼 간극이 크다. 비겁하다 욕해도 점점 그 세대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나도 검게 물든 지가 오래되었나 보다. 다른 이의 희생을 자양분삼아 내게 이득이 있다면 내로남불이라도 어쩌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밖에.

 

 

그러한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후반의 반전은 새삼 놀랍다. 마치 먹이사슬 같아서 포식자 위에 상위포식자는 그렇게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빈틈만 생기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발겨 배를 채우고 마는 것이 세상은 정글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아바타와 트루먼 쇼가 한데 뒤섞인 듯한 쇼가 강렬한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겼음을 수긍하고 나니까 그동안 묵혀두었던 <망원동 브라더스>, <연적> 같은, 김호연 작가의 구간들도 찾아 읽고 싶단 욕망이 꿈틀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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