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의 인연이 미래에 어떤 관계로 귀결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다. 고교시절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카라는 네 소녀가 전학 온 노리코라는 소녀에게 친구로서 손을 내밀었을 때만 해도 순수한 우정의 발현이었을 뿐이었는데,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처음엔 소중했다. 노리코는 그 누구보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고 누구든 불법을 저지르는 이가 있으면 신고만이 정의의 실현인양 가차 없었다.

 

 

버스에서 치한에게 당할 뻔 했던 가즈키를 구하는 등 노리코의 용기 있는 행동들은 귀감이 되었으며, 신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노리코의 신고정신은 도가 지나쳐 그 어떤 공감과 배려보다는 오로지 흑과 백의 논리에 사로잡혀 네 친구들을 악몽으로 내몰면서 각자의 가슴 속에 증오와 원한의 싹을 피워버렸고 마침내 네 친구들은 노리코를 살해해버린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완전범죄를 꿈꾸었던 네 친구에게 동시에 도착한 초대장. 뜻밖에도 5년 전에 자신들이 죽였던 노리코로부터 날아온 초대장이었다. 그녀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경악하게 되고 정말 노리코가 보낸 초대장인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약속장소로 함께 가는데...

 

 

오직 정의실현이 이루어지는 순간, 황홀한 표정을 짓던 노리코를 읽으면 굉장히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묘한 기분을 나도 느껴야만 했다. 성적 쾌감에 몸부림치는 그녀만의 에로티시즘 같달까, 어떠한 원인과 사정도 배제시킨 채, 정의와 불의라는 2가지 공식만 입력된 인공지능 같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인생을 그렇게 융통성 없이 숨통 조여 가며 살 수 있나. 팍팍하니 적당히 넘어갈 건 그렇게 하자 싶다가도 어쩌면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얼렁뚱땅 처리해버렸던 우리들의 일상적인 태도야말로 불의를 만연시킨 주범일지도 모르겠다는 자각도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어디까지가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인가 묻는다면 그 또한 정답이 없다란 반론도 당연히 들게 된다.

 

 

그래서 초대장의 진의는 어느 정도 눈치 챌 수 있었지만 다른 식의 결말 유도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렇게 스스로 정의롭다고 자부하던 노리코의 완벽할 것 같은 신념과 논리에도 모순이 있음을 역공으로 되받아치는 것 말이다. 난공불락이라는 결집체에 발생한 빈틈이 점차 켜지면서 마침내 거대함이 무너지는 순간, 그 누구도 완전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면 내로남불이란 이럴 때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예상대로 흘러간 결말이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다. 아니면 리카랑 노리코를 한 방에 같이 때려 넣는다거나. 실험 연구 자료로 충분히 흥미롭지 않은가? 집착이라는 두 화신이 만난다면 좋겠다.

 

 

그리고 앞서 읽었던 <성모>에서도 불임에 따른 인공수정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더니 이번에도 등장인물 중 한 명도 그런 상황으로 설정한 것 보면 집요하다거나 예사롭지 않은 작가인 것도 같다. 마치 <살인출산>의 무라타 사야카가 임신과 출산의 상관관계에 특화되어 유사한 사례 같다는. 두 작가는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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