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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 전면개정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평점 :
“사와자키 탐정 시리즈”의 탄생의 서막을 알리는 기념비적 작품. 시작은 두 명이었으나 파트너였던 와타나베의 잠적은 홀로 남은 사와자키에게도 치명적 사건이었다. 전직 경찰이었던 와타나베가 경찰이 야쿠자와의 거래에 덫을 놓기 위한 장기 말 역할만 무탈하게 잘 수행했다면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 없었을 텐데 대량의 각성제를 빼돌려 도피해버리는 바람에 경찰은 체면을 구겼고 사와자키는 공범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이 허름한 탐정사무소 앞을 기다리고 있던 어떤 중년남은 말한다. 사에키라는 르포라이터가 여기를 방문한 적이 없느냐며 현금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다. 그 남자는 확실히 어딘가 모르게 수상했다. 오른손만 주머니에서 빼지 않는 그 습관이랄까. 특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만이 아니다. 사라진 사에키란 남자를 찾는 이가 또 있었으니 이번엔 유명한 미술평론가에게 고용된 변호사였던 것이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경찰에 의뢰하면 될 일을, 구차하게 자신에게 의뢰하려는 연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사에키란 남자는 당시 도쿄 도지사 저격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원치 않게도 거미줄처럼 뒤엉킨 이 복잡한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려 드는 사와자키 탐정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주변부의 이야기들이 더 흥미를 끌었다.
가령, 신주쿠 경찰서 수사과 니시고리 경부와의 대화는 늘 딱딱하면서 날이 서 있는 가운데 미묘한 신경전에 때론 동업자 아닌 동업자 같은 관계를 엿볼 수 있어 색다르다. 그리고 하드보일드 추리소설하면 생각나는 필립 말로와 작가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언급이라든지, 가끔씩 종이비행기로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와타나베한테서 싸구려 낭만을 느낀다든지 같은 자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술에 배부르기 보단 이 시리즈의 스타일을 결정짓는 첫 시도라면 괜찮은 편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애정과 진실을 배려하는 것이 증오와 거짓을 배신하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더 깊은 상처를 입힌다는 생각을 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