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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 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 때는 뭘 모르지 않았냐며.
<P.115~116중에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자 근래 들어 읽은 소설들 중에서 이만큼 공감백배 하게 만드는 구절은 좀처럼 만나보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처음엔 쉽게 관계를 맺어오다 어느 순간부터 무심함, 아집, 오해...그 어떤 형태로든 서서히 마음에서 멀어지고 나중에는 눈에서도 멀어진 경험들을 이제껏 우리들은 반복해 왔다. 지금에라도 관계를 복원했어야 했지만 내일하지 모레하지, 그러다 너 아님 사람 없을까봐.
그러나 돌이켜 보면 노래 제목처럼 그들은 낮에 뜨는 별이었던 것 같아. 보이지 않아도 내 결을 비추며 나를 몰래 밝혀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오늘이 중요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더 나은 기회가 찾아올 거라 과신했으니까. 지금은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보고 싶어도 더 이상 볼 수가 없는 그 날들을 떠올리며 좀 더 잘해주지 못했음에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그런 비겁한 속마음을 최은영 작가는 참 잘 표현해낸 것 같다. 단 한편도 허술하게 넘겨 버릴 페이지가 없이 꽉꽉 마음을 채운다. 그중에서도 역시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부모자식간이 아닌 조손간의 정서적 유대감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서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