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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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성 착취 피해 기록집이자 한 편집자의 문학 고발기이다. 골 아프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가브리엘 마츠네프에게 착취를 당했을지 가늠도 가지 않는다. 필리핀까지 나가 굳이 본인의 소아성애를 가감 없이 드러낸 그의 근면 성실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부모가 이혼한 뒤로, 나는 아버지를 점점 더 뜸하게 볼 뿐이다. 보통은 아버지가 저녁 식사 시간에 보자고 하면서 늘 고급 식당을 예약해놓는데, (중략) 수치스러워서 눈알을 파버리고 싶은 그 순간이 다가온다. 아버지가 오만함과 색욕이 뒤섞인 눈길을 던지며 그 아름다운 셰에라자드의 브래지어나 팬티 고무줄을 비집고 자신이 지니고 있던 가장 큰 액수의 지폐를 찔러 넣는다. (28쪽)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다. 아빠가 딸 앞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딸은 아빠와 시간을 보내려 나온 거지 밸리댄스 추는 여자에게 팁을 주는 남자를 보러 나온 게 아니다.



어느 날 그가 만날 약속을 편지로 잡는다. 전화, 그건 너무 위험해요, 어머니가 받을 수도 있으니까, 라고 그가 편지에 썼다. (50쪽)

 미친 소아성애자 새끼



닥치는 대로 마셔버리게 하는 갈증, 약물 중독자의 갈증과 같은 결핍, 애정 결핍. 중독자는 손에 넣은 약물의 품질이야 어떻든지 간에 개의치 않고, 치사량을 스스로에게 찔러 넣으며 효과가 좋으리라고 확신한다. 안도, 감사, 그리고 황홀경을 느끼며. (100쪽)

 자신이 먹는 게 뭔지도 분별할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어떻게 성적 욕구가 생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건 명확한 질병이다.



에밀 시오랑이 정중한 어조로 말을 자른다 

"(전략) G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 자체를 받아들여야죠. G가 당신을 선택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예랍니다. (중략) 하지만 여자들은 종종, 예술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후략)"

"하지만 에밀, 그는 줄곧 거짓말을 해요." 

"이봐요, 친구, 거짓말이 곧 문학이랍니다! 몰랐어요?"(161쪽)

 끼리끼리는 사이언스. 미성년자인 너희 딸이 36살 많은 남자한테 가스라이팅 당하면서 연애랍시고 성 착취를 당해도 이딴 소리를 지껄일 거니?



"언어는 늘 아무나 입장할 수 없는 사냥터였다. 언어를 소유한 자가 권력을 소유하리라." 

클로에 들롬, <<내 친애하는 자매들>>(216쪽)

너무 공감되는 말이다.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



죄인, 그것은 나다. 성인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을 죄를 저질렀으니. (중략) 우리의 격렬한 열정이 그가 쓴 책들 덕분에 어두운 밤에도 계속 빛날 테니까. (225쪽)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박살 낸 이 책을 소비하는 너희도 공범이다. G가 소아성애를 이어올 수 있던 건 지지해주는 너희 덕분이었다. 쌍으로 역겹다.


부모 노릇이 힘에 부치거나 부모 노릇을 포기한 부모를 가진 외롭고 위태로운 여자아이들에게 눈독을 들일 때 G는 이미 그 여자아이들이 결코 자신의 명성을 위협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는 자는 동의한 것이다. (242쪽)
 동의는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니지. 싫다고 안 하는 게 동의가 아니라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게 동의다.


감상
 성적으로 보수적인 프랑스에서, 이 책이 문학계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라길래 궁금한 마음으로 가볍게 책장을 열었는데 마지막 장을 무거운 마음으로 덮었다. 분명 30년 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인데, 현재 대한민국 어딘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일 같았다. 심지어 그 형태는 더 진화해 결국 n번방이라는 범죄가 탄생했다. 소아성애는 성 착취에 아동학대가 합쳐져 가중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그 대상 연령 또한 만19세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는 이런 역겨운 일이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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