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건축 도시 [중앙일보]

관련링크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그는 자연과 명상의 건축가로 불린다. 콘크리트 벽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빛.바람.물 등 주변 자연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빈민 가정에서 태어나 고졸 학력이 전부다. 세계여행으로 건축 수업을 대신했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미국 프리츠커상을 비롯한 국제 건축상을 휩쓸었다.

30일 도쿄에서는 그가 설계한 디자인 미술관 '21_21 디자인 사이트'가 개관했다. 같은 날 대대적으로 문을 연 복합 도시 공간 '도쿄 미드타운'의 일부다. 날렵한 강철판과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리즘 건축을 선보였다. 미드타운은 고급 상가와 호텔.사무실.식당가.미술관.공원 등이 한데 어우러진 '도시 속 도시'다. 최근 진행 중인 도쿄의 도심 재정비 블록화의 일환이다. 일본 전통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한 산토리미술관도 여기에 재개관했다. 미드타운 내부를 돌아보는 한 시간짜리 투어도 생겼다.

지난해 문을 연 도쿄의 '오모테산도 힐스'도 안도의 작품이다. 패션숍과 식당이 들어선 3층짜리 건축물로, 도쿄의 새 랜드마크가 됐다. 낡은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하면서 건물 앞 느티나무와 높이를 맞춘 것이 화제였다. 건물 한가운데가 3층까지 뚫렸고 나선형 복도를 따라 오르면 시야에 들어오는 공간의 모습이 속속 바뀐다. 관광 명소가 됐고 일대 부동산 가격이 45%나 치솟았다.

도쿄는 이외에 새로운 건축물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올 1월 개관한 '도쿄 신국립미술관'은 물결치는 곡선에 유리 소재의 개방성이 호평받았다. 역시 세계적인 건축가 구로카와 기쇼(黑川紀章)의 작품이다.

도쿄 리노베이션의 상징인 '롯폰기 힐스'는 2003년 오픈했다. 54층 꼭대기에 모리미술관을 위치시켰다. 사무실.식당.명품숍.미술관.극장 등을 블록화한 문화 도심 1호다. 뉴욕 휘트니뮤지엄을 설계한 리처드 글룩만 등이 참여했다. 개관 첫해에만 4400만 명이 찾았다.

미드타운의 개관으로 롯폰기 힐스, 신국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도쿄 뮤지엄 라인이 완성됐다. 문화와 소비를 연결시킨 미드타운, 롯폰기 힐스, 오모테산도 힐스가 전부 부동산회사의 '작품'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정부나 지자체가 아닌 부동산 업계가 도시의 문화화에 나선 것이다.

도쿄가 옷을 갈아입고 있다. 그 첨단엔 세계적 건축가들이 서 있다. 건축이 도시에 문화의 얼굴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건축 순례객들도 불러 모으고 있다.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분수대] 오키나와 전투 [중앙일보]

관련링크
'철의 폭풍'(Typhoon of Steel)이란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오키나와(沖繩) 전투가 얼마나 처절하고 치열했는지를 대변해 주는 표현이다. 미군이 3개월 동안 인구 45만의 섬에 포탄 8만 발, 수류탄 39만 발, 기관총탄 3000만 발을 퍼부었다고 하니 말 그대로 총.포탄의 폭풍우였던 셈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미군 1만2000명, 일본군 6만5000명이 전사한 데 비해 민간인은 9만4000명이 숨졌다. 이름이 확인된 한반도 출신 희생자도 430명에 이른다.

이는 일본 군부가 현지 주민을 총동원한 옥쇄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미군의 일본 본토 진공을 하루라도 늦춰 보려는 의도에서였다. 심지어는 중학생까지 '철혈근황대(鐵血勤皇隊)'란 이름으로 전투에 나갔고 여학생들은 동굴 속에서 부상병을 치료하는 '히메유리 간호대'에 동원됐다.

가장 비극적인 일은 '집단 자결'이었다. 당시의 일본 군인들뿐 아니라 민간인들에게도 적전(敵前) 투항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포로가 되기보다는 깨끗하게 목숨을 버리는 것이 황국신민의 도리라는 군국주의 가치관에 세뇌돼 있었기 때문이다. 용케 목숨을 건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이 수류탄을 두 개씩 나눠 주면서 하나는 미군 공격용, 나머지 하나는 자결용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했다고 한다. 오키나와현의 자체 조사에서는 적어도 7곳에서 수십~300명씩 집단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지휘관이 직접 자살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 60여 년간 주민들과 현지 언론, 연구자들 사이에 전해져 오는 통설이다.

그런데 내년부터 사용되는 일본의 고교 교과서에서 집단 자결에 군의 강요나 관여가 있었다는 표현이 일체 사라지게 됐다.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종래의 표현을 수정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유로는 "증언이 있긴 하지만 이설(異說)도 있어 군의 자결 명령이 있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논리다. "증언은 있지만 공문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종군위안부 강제 연행을 부정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논법과 어쩜 그렇게 흡사할까. 역사 교과서 개정을 주장하는 우익 논객들이 2005년께부터 조직적으로 집단 자결 문제를 거론하고 나선 것도 우연의 일치로는 보기 어렵다. 위안부와 오키나와에 이어 다음엔 또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나올지 모르겠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분수대] 조폭 영화 [중앙일보]

관련링크
갱스터 영화가 독립 장르로 성립한 것은 1920년대. 20년 금주령으로 밀주 관련 조직범죄 집단이 급성장하자, 할리우드가 이런 현실을 오락화했다. 때마침 나온 발성(發聲)영화는 갱스터 영화의 현실감을 배가시켰다. 영화 속 범죄자들은 야비하고, 권선징악에 따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영화는 묘하게 현실을 비틀었다. 범죄조직이 유지되는 방식이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기업의 논리와 같음을 드러낸 것이다. 관객은 은연중에 '갱스터=악당=부도덕한 자본가'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영화 속 범죄자들은 하층민 출신에,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것으로 그려졌다. 악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었다.

20~30년대 전성기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갱스터 영화는 50년대에 복고풍으로 돌아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는 30년대 실존 갱들을 60년대식 반(反)영웅으로 그려낸 영화다. 71년 '대부'의 충격은 막강했다. 단순한 범죄영화를 넘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은유의 고전이 됐다.

충무로는 어떤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한국영화사'에서 50~60년대 '깡패영화'로 시작한 "한국 액션영화는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나 필름 느와르와 아무 상관없다"고 썼다. '장군의 아들'(1990), '친구'(2001)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폭영화'도 마찬가지다. 사회비평이나 폭력의 본질을 성찰하기보다는 '마초 판타지'나 '남성성의 재구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형님문화'의 재생산, 잃어버린 부권(父權)에 대한 향수, 힘에 대한 숭배가 특징이다. 조폭과 권력층의 유착은 곁가지일 뿐, 조폭영화는 '남성영화'로 소비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조폭코미디'라는 신종 장르가 추가됐다. 욕설과 폭력을 코미디로 버무려 값싸게 소비하는 장르다. 명절마다 흥행몰이를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한국형 장르다. 또한 조폭은 한국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장르 불문이다. 아마도 조폭은 최근 한국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직업군일 것이다.

영화와 조폭의 깊은 '인연'이 이번에는 조폭의 스타 협박사건으로 발화했다. 아직도 조폭의 검은 그늘이 연예계에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한국 영화의 조폭 미화가 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화까지는 아니어도, 가볍고 무책임하게 다루는 것만은 분명하다.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활달한 여자 초등생끼리 '조폭'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세상이 된 것은.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분수대] 사면 유감 [중앙일보]

관련링크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제럴드 포드 38대 미국 대통령은 한번도 선거를 치르지 않고 부통령과 대통령이 됐다. 뇌물 사건으로 물러난 스피로 애그뉴 대신 부통령에 임명된 지 10개월 만인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뒤를 이어 백악관에 입성했다.

하지만 더 이상 행운의 여신은 포드에게 미소 짓지 않았다. 행운은커녕 취임 한 달 만에 닉슨을 사면해 화를 자초했다. 그는 "나의 양심은 미국의 악몽을 그만 끝내야 할 때라고 말한다"고 호소했지만 국민은 대통령 자리와 사면을 맞바꾼 거래라고 의심했다. 그 여파로 재임기간 내내 휘청거리다 민주당에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미국에서도 사면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진 헌법적 권한이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않는 사면은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준다. 빌 클린턴은 98년 푸에르토리코의 테러범 12명을 사면했다가 사면권 남용을 의심하는 의회의 진상조사 대상이 됐다. 미국 대통령의 사면 인심이 후한 것도 아니다. 8년씩 재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403명, 클린턴은 460명을 사면하는 데 그쳤다.

천황제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은 사면 대신 '은사(恩赦)'란 용어를 쓴다. 일본의 은사법은 한국의 사면법 조문과 유사하지만 운용은 천양지차다. 범죄의 종류를 지정해 일괄적으로 형을 면제해 주는 일반 사면이 실시된 것은 45년부터 지금까지 단 12차례에 불과하다. 유엔 가입,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오키나와 환수 등 국가 대사나 왕실의 경사가 있을 때만 이뤄졌다.

사면이 남용되면 안 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삼권분립이란 민주주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거니와 무엇보다 법의 권위를 해치게 된다. 힘들게 붙잡아 심판한 범죄자를 이런저런 명목으로 풀어 준다면 그만큼 법의 권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사면권 제한을 공약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4주년을 앞두고 '또' 사면을 단행했다. 취임 후 일곱 번째, 노태우(8회).김영삼(9회).김대중(7회) 등 전임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잦은 사면은 왕조시대의 군왕이 말 한마디로 벌을 내리고 면해 주는 것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그런 성은(聖恩)에 망극해할 사람은 혜택을 본 당사자 이외에는 없을 듯하다. "걸핏하면 대량 사면을 통해 국민의 인기에 영합하려 하거나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통치의 도구로 삼는 경향이 농후하다." 이번 사면을 발표한 법무부 장관이 4년 전 학위 논문에 쓴 말이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분수대] 가부키 [중앙일보]

관련링크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란 뜻으로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 '18번'은 그 어원이 일본의 전통극 가부키(歌舞伎)에 있다. 1832년 당대의 인기 배우였던 7대 이치가와 단주로(市川團十郞)가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레퍼토리 18종을 선정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비슷한 시기에 동리(桐里) 신재효는 판소리를 여섯 마당으로 정리했다. 하지만 판소리는 여섯 마당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의 전부인데 비해 가부키의 레퍼토리는 수백 종류다.

가부키에도 한 차례 결정적인 위기가 있었다. 1945년 8월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일본에 진주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의 '점령 정책'때문이었다. 주군에 대한 무한 충성과 복수, 할복 자살 등 봉건 시대의 도덕률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은 가부키는 일본을 민주국가로 거듭나게 하려는 정책에 맞지 않는다며 대부분의 공연을 금지시킨 것이다.

가부키를 되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맥아더의 부관 포비언 바워스 소령이었다. 열렬한 가부키 애호가였던 그는 상관에 대한 설득 노력은 물론, 부관직을 그만두고 공연 검열관으로 변신한 끝에 2년 만에 모든 금지를 해제했다. 그는 "만약 독일이 2차대전에서 이겨 런던을 점령한 뒤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중단시켰다면 영국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며 "가부키는 셰익스피어 못잖은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워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은 그 이후의 역사가 입증해 준다.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예술로 입지를 굳힌 가부키가 지난 23일부터는 프랑스 파리의 오페라극장에 진출했다는 소식이다. 오페라극장의 130년 역사상 초유의 가부키 공연에 관객들의 커튼 콜과 기립박수가 쏟아졌다고 한다. 프랑스 문인 장 콕토가 1936년 일본 여행을 한 뒤 "가부키를 본 것만으로도 나의 여행은 값어치가 있었다"고 했던 호평도 언론에서 재연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부키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은 일본인 관객들이다. 도쿄의 노른자위 땅인 긴자에 있는 전용극장 가부키좌는 연중 만원 사례다. 대대로 가업을 잇는 가부키 배우들은 TV 드라마에도 자주 출연해 인기 스타 대접을 받는다. 도쿄.오사카.교토 등 전국 주요 도시에는 어김없이 전용극장이 있다.

자국에서 대접 못 받는 전통예술이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평가받을 리 만무하다. 올해로 소리 인생 50년째인 안숙선 명창이 며칠 전 인터뷰에서 제대로 된 판소리 전용극장 하나 갖추지 못한 현실을 질타한 사실이 새삼 떠오른다.

예영준 도쿄특파원

*** 바로잡습니다

3월 26일자 35면 '분수대' 본문 중 '동리(桐里) 신채호'는 '동리(桐里) 신재효'의 오기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