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의지와 지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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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죽으면서 "너무 많은 궁전을 지었고, 너무 많은 전쟁을 벌였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국가의 재정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국정을 방만하게 운영한 것을 후회했지만 가라앉는 프랑스의 운명을 되돌리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16세기 스페인은 네덜란드와 끝없는 전쟁을 벌이다 국고가 바닥났다. 스페인은 결국 무적함대의 패퇴와 함께 선진국 경쟁에서 밀려났다. 당시 스페인 왕실에서는 누구도 전쟁 비용이 국고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하게 늘어날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 시절 정치는 '상인의 저울'로 측량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전쟁을 계속했다. 물론 그 대가는 파멸적이었다."(찰스 킨들버거, '경제강대국 흥망사')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에서, 강성했던 국가가 쇠퇴하는 원인으로 '과잉팽창'을 꼽았다. 과잉팽창은 국가의 능력을 벗어나 무리하게 영토(영향력) 확장에 나서는 것. 전쟁 비용을 무시하고 확장 전쟁을 벌이다 나라가 망한 사례는 역사 속에 수도 없이 많다.

킨들버거는 이 같은 과잉팽창을 '의지-지갑(will-wallet)'의 상충으로 해석했다. 영토 확장에 대한 야심과 이를 달성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이를 감당할 만큼 지갑(재정수입)이 두둑하지 않으면 결국 국가가 쇠퇴하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서 '감당한다'는 말은, 만사를 제쳐 놓고 오직 그 목적만을 위해 돈을 쓰겠다는 통치자의 각오를 뜻한다. 정책의 우선순위라는 개념조차 없이 한 방향으로만 내달리는 것이다.

과거에는 과도한 군비지출이 국가의 흥망을 갈랐다면, 현대에는 과도한 복지지출이 최대의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복지지출을 늘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받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에게 복지지출의 확대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문제는 역시 이를 감당할 지갑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그대로 두면 2047년에 재원이 바닥나게 돼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국민연금제도를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치자는 개혁안을 부결시켰다. 그 대신 재정부담을 가중시키는 기초노령연금법안만 통과시켰다. 표에 대한 넘치는 '의지'를 앞세워 얄팍한 '지갑'의 문제를 애써 외면한 것이다.

전쟁이든 복지든 목적에 대한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실현할 수단에 대한 의지가 없으면 나라가 망하든지, 재정이 거덜난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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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문제적 인물 [중앙일보]

1970년대 중반 박정희 대통령이 핵 개발을 추진했다는 사실은 이젠 비밀 축에도 못 낀다. 수년 전 공개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비밀문서(1975년 2월 28일자)는 "한국 정부가 핵무기 개발의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박정희는 그 후 재미교포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불러들여 독자 핵 개발을 시도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의 미국 대사관에 적을 두고 활동하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큰 역할을 한 것은 이 과정에서였다. "햇병아리 CIA 직원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조사 시작 3개월 만에 비밀 핵 개발 계획의 존재를 밝혀냈다. 핵 개발 관련자의 한 사람으로부터 극비 자료를 통째로 입수한 것이다. 그 후 '핵 개발을 단념하지 않으면 한국과의 모든 관계를 총점검하겠다'는 최후통첩을 전하러 서울에 온 사람은 포드 정권의 국방장관이었던 도널드 럼즈펠드였다." (후나바시 요이치 '김정일 최후의 도박' 원제는 '페닌슐러 퀘스천') 훗날 CIA에서 으뜸가는 한국통으로 성장한 그의 이름은 리처드 P 롤리스, 다름 아닌 현 국방부 부차관보(아시아.태평양 담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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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스는 72년부터 87년까지 CIA에 근무했고 레이건 정권 때에는 NSC에서 일한 적도 있다. 주 분야는 위성.원자력 등 군사적으로 민감한 기술 정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해외 임지는 서울이었고 도쿄에서도 일했다. "한국인 협력자를 많이 확보했다"는 평이 있고 지금은 헤어진 부인도 한국 여성이었다.

2002년 롤리스가 재등장했다. 이번에는 '음지'가 아닌 '양지'였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부름을 받고 부차관보가 돼 한.미, 한.일 군사 현안을 쥐락펴락 한 것이다. 전작권 환수, 용산기지 반환 협상 등에서는 의표를 찌르는 제안을 내놓거나 때로는 강압적.위협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버거운 협상가였다. 내정간섭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주일미군 기지 재편을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벌인 일본에서도 그는 악명이 높았다.

'문제적 인물' 롤리스가 건강 악화를 이유로 7월 사임한다는 보도다. 그는 협상이 끝나면 한국 대표단과 소주나 폭탄주로 분위기를 풀 정도로 한국적 문화가 몸에 밴 '지한파'였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얼마나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배려해 준 '친한파'였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미국 편에서 보자면 그는 대단히 유능한 정보원이자 협상가였다.

예영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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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밤샘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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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이해 당사자가 말로 의논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2차 대전 때까지만 해도 국가 간 분쟁은 대부분 무력을 동원한 전쟁을 통해 해소됐다. 19세기 프로이센의 프레데릭 2세는 "무기 없는 협상은 악기 없는 음악과 같다"고 갈파했고, 2차대전의 전후 처리를 지휘한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힘으로부터의 협상"을 천명했다.

전통적인 협상은 일정한 파이를 놓고 한쪽이 얻으면 다른 쪽이 잃는 이른바 '제로섬 게임'이었다. 협상의 대상이 단일할 경우는 이 같은 양태로 진행되기 십상이고, 대개 승패가 확실히 갈린다. 그러나 쟁점이 되는 의제가 여럿인 경우는 협상이 타결돼도 누가 이겼는지가 분명치 않다. 1960년대 제라드 니렌버그는 '승자 독식'의 협상 대신 '모두가 승자가 되는 협상'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른바 '윈-윈 게임(win-win game)'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두고 "양측이 모두 승자가 되지 않으면 어떤 합의도 영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론적으로 윈-윈 게임을 지향한다고 해도 막상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가면 온갖 책략과 수단을 총동원해서 서로 유리한 결과를 얻으려고 애쓰기 마련이다. 특히 국익을 걸고 벌이는 국가 간 협상에선 막판까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 여기서 흔히 동원되는 전술이 시간 끌기, 협상 중단 위협, 허풍 떨기, 미끼 던지기, 극단적 제안, 양자택일 강요 등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협상에서도 양측은 협상을 유리한 국면으로 끌고 가려고 마지막까지 이 같은 전술을 수시로 구사했다.

뭐니뭐니해도 협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집중력과 끈기다. 협상장에선 먼저 집중력이 떨어지고 조급해지는 쪽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협상의 달인은 1980년대를 풍미했던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다. 그는 중요한 정상회담이 벌어지면 일단 예정시한을 넘겨 시간을 끌었다. 고도의 긴장감이 수반되는 협상에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는 보통 세 시간이라고 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웬만한 사람은 '빨리 회담을 끝내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상대방의 눈가에 집중력이 떨어지는 기색이 보이는 순간 비장의 협상카드를 들이밀면 대개는 받아들이고 만다.

한.미 FTA 협상대표단은 사흘간이나 밤샘 협상을 벌였다. 집중력의 한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섰다. 과연 어느 쪽이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을지가 궁금하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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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자유무역주의 [중앙일보]

'한 과학자가 철강을 매우 싸게 만드는 비법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철광석과 노동력이 필요 없고 밀가루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후 값싼 철강이 시중에 쏟아져 나왔다. 철강이 들어가는 자동차 같은 제품값이 싸져 국민 생활수준은 몰라보게 윤택해졌다. (중략…) 수년 뒤 밀가루 생산방법에 의문을 품은 한 민완 기자가 공장 잠입 취재에 나섰다. 생산라인은 없고 밀가루 포대만 잔뜩 쌓여 있었다. 밀가루를 남몰래 수출해 번 돈으로 값싼 철강을 수입해다 판 것이었다. 이 사건이 특종 보도되자 그는 사기 혐의로 구속되고 공장은 폐쇄됐다. 철강 시세는 다시 오르고 국민 생활수준도 예전으로 되돌아갔다.' 미국의 경제학자 맨큐의 '경제학 원론'에 등장하는 '교역'의 우화다.

이 과학자는 '발명'을 사칭한 사기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유무역의 원리를 '발견'해 사업보국(事業報國)한 셈이 됐다. 근대 경제학의 250년 사상사는 숱한 천재들의 논쟁으로 점철됐다. 한 가지 이론을 놓고도 백가쟁명했다. 하지만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한 학자는 거의 없었다.

미국은 자유무역 실험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최대의 경제 강국이 된 건 연방 50개 주끼리 무제한 교역하도록 보장한 덕분이다. 주마다 제품과 서비스를 특화해 유무상통(有無相通) 함으로써 나라 전체가 혜택을 봤다. 하지만 자유무역이 성공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일찍이 '유아(幼兒)산업 보호 육성론'을 외친 리스트나 해밀턴은 신속한 산업 구조조정과 약자 배려 없이는 자유무역에 대한 기대는 신기루일 뿐이라고 설파했다.

앞서 맨큐 교과서 인용문 가운데 (중략…) 부분을 되살려 보면. ' (값싼 철강 때문에) 문 닫은 경쟁사들은 근로자들을 내보내야 했다. 이들은 다른 업종으로 금세 이직할 수 있었다. 실직은 진보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국민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교과서일 뿐 현실 세계에선 어림도 없다. 진보를 위해 해고를 감수할 근로자가 어디 있겠으며, 실직자가 새 일자리 얻기는 또 얼마나 힘든가.

'개방이 꼭 번영을 가져다주진 않지만 개방 없이 번영을 이룬 나라는 없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적은 참으로 옳다. 다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성사된 지금 이 말의 앞뒤를 바꿔 생각해 보고도 싶다. 개방 없이 번영을 이룰 수 없지만 개방이 반드시 번영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고. 요는 이제부터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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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해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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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8년 중국 양저우(揚州)에는 해안가에 좌초한 일본 사절단이 당도했다. 일본 최초로 대사(大師)라는 지위를 받은 엔닌(圓仁)이라는 승려도 그중 하나였다. 이들은 일본이 당(唐)과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 보낸 견당(遣唐) 사절단이었다.

엔닌이 그 이후 중국을 떠돌면서 남긴 일기 '입당구법순례기(入唐求法巡禮記)'에는 신라인이 자주 등장한다. 전 일기를 통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외국인이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당에 거주하고 있던 신라인은 산둥(山東)과 중국 내륙 운하 지역 곳곳에, 요즘 말로 치면 일종의 조계(租界)를 만들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내륙 운하의 각종 거래에 참여하고 서해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각종 상거래에 적극 뛰어드는 존재였다. TV 드라마 '장보고'에서 잘 묘사됐듯이 이들은 한반도와 중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해상의 무역권을 거의 장악한 집단으로 엔닌에 의해 기록된다.

일본에 살면서 같은 배에 올라 엔닌의 통역을 돕던 인물도 신라인이고, 좌초한 뒤 당의 수도 장안에까지 이르는 동안 사절단의 숱한 교섭과 물자 조달을 돕던 이들도 신라인들이다. 장보고의 해상 무역 장악에도 힘입은 바 크지만, 이는 그 전에도 있었던 한반도 사람들의 꾸준한 해양 진출 덕분이다. 말이 신라인이지 실제는 통일신라기에 활동했던 한반도 사람들이다.

바닷길을 오갔던 한반도 사람들의 역사를 보면 우리가 결코 해양을 멀리할 수 있는 민족이 아니라는 점이 많이 나타난다. '바닷길은 문화의 고속도로였다'(윤명철 저.사계절)에 따르면 한반도는 석기 시대 이후 줄곧 바다를 통해 문화를 주고받았으며 고구려가 수(隋).당(唐)과 벌인 전쟁, 불교를 전해 받는 과정 등에서 해양력을 골고루 활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발해 역시 일본과의 빈번한 교류를 대부분 동해 바닷길을 통해 진행했고, 백제 또한 일본과의 교류를 넘어 바닷길을 통해 현대 중국의 랴오닝(遼寧) 지역을 경영했던 기록도 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2일 맺어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반도 사람들이 더 큰 바다로 나가기 위한 중요한 교두보다. 해양 문명을 대표하는 미국에 더 직접적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까지 지속됐던 한반도의 해양력이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명적 의미도 작지 않다. 그 부작용에 따른 농업 분야 등에서의 문제 해결이 꼭 필요하겠지만 해양을 향한 한반도 사람들의 전래적 개방성도 이 즈음에서 다시 한번 되새김 직하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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