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46443

[분수대] 사회서비스 일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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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빅토리아 왕조 시절의 영국 런던에는 도시 빈민 문제가 심각했다. 새로운 지식과 공동체 의식으로 충만한 대학사회가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도시 빈민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뻗쳤다. 몇몇 대학이 빈민가에 지역 주민과 힘을 합쳐 사회복지관(settlement house)을 짓고 대학생들을 정착시켰다. 이들은 런던의 도시 빈민과 그 자녀들을 대상으로 기초교육과 자활방법.운동.예술 등을 무료로 가르쳤다. 그 후 빈민가 정착 운동은 빈민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료 및 법률 지원 등으로 범위가 점차 확대됐다.

이 운동은 미국으로 건너와 당시 도시 빈민이 몰렸던 뉴욕과 시카고에 수십 개의 사회복지관이 건립됐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 미국에서 주민센터(neighborhood center)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사회사업(social work)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처음에 대학생과 자원봉사자들로 시작된 사회사업은 범위가 넓어지고 전문성이 요구되면서 점차 자격 있는 사회복지사들이 맡게 됐고, 복지국가의 개념이 도입된 뒤에는 정부가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다. 사회사업이란 말도 사회 서비스란 용어로 바뀌었다. 기획예산처가 정의한 사회 서비스는 '개인 또는 사회 전체의 복지 증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사회복지.보건의료.교육.문화.안전 등의 서비스를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정부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사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이를 감당할 '인력'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90만 명 부족하다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2010년까지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80만 개 창출하겠다고 했다. 지난주 열린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보고회'에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점은 '인력'이 부족하다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면 인력을 국내에서 양성하든지, 아니면 해외에서 수입하든지 해야 할 텐데 난데없이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일손이 부족한 것이지 일자리가 부족한 게 아니지 않은가.

'좋은 일자리'란 말도 어폐가 있다. 주로 간병 도우미, 보육 도우미, 방과 후 강사, 도서관 야간근무 요원 등을 늘린다는데 보수도 적고 안정성도 떨어지는 이런 일자리가 어떤 면에서 좋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사회 서비스를 확충하겠다고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공연히 '일자리'를 끌어다 붙이는 바람에 헷갈리기만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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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47647

[분수대] 여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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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가 교수직을 얻은 건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지 8년, 그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지 3년이 흐른 뒤였다.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남편이 소르본대 교수로 임용될 때 그는 조수직에 만족해야 했다. 남편과 사별한 1906년에야 학교는 그 빈자리를 부인에게 내줬다. 당시 과학계는 '대단한 연구를 여자가 주도했을 리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 것도 부부 공동 명의의 연구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 랜드럼, '위대함에 이르는 8가지 열쇠')

똑똑한 여성이라 해도 제대로 대접받은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자유 없는 지식 없다'는 학풍이 강해 68년 '68혁명'과 지난해 프랑스 노동개혁 반대 시위의 본거지가 된 소르본대가 100년 전만 해도 이럴 정도였으니 말이다. 마리아 몬테소리는 1896년 이탈리아 최초의 여의사로 기록되기까지 아버지와 대학 총장, 교황청의 만류를 힘겹게 넘어서야 했다. 52년 한국 여성으로 사법시험에 처음 합격한 이태영은 '여자는 이르다'는 당시 권부의 정서에 부닥쳐 법관의 꿈을 접었다. 양성(兩性) 평등의 눈초리가 날로 매서워지는 요즘 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다. 대신 여성의 사회활동을 가로막는 교묘한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흔히 거론된다.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직장 내 보이지 않는 벽을 비유한 표현으로 미 언론이 만들어 80년대부터 유행시켰다.

이런 판에 실력밖에 믿을 게 없다고 여겨서일까. 똑똑한 여학생과 일명 '알파걸'(당찬 커리어 우먼)의 기세가 등등하다. 여학생이 일반적으로 남학생보다 학업 성적이 좋은 건 세계적 추세다. 독일 ZDF 방송의 여성 앵커였던 카트린 뮐러 발데는 '우리 아들이 왜 이웃집 딸보다 공부를 못할까'하는 고민에 자문자답하다 책까지 쓰게 됐다. 여학생의 언어 및 학습 능력이 우월한 데다 현대 교육 시스템이 남학생들에게 불리하다는 결론으로 충격을 줬다. 이런 내용의 '공부 잘하는 여학생, 공부 못하는 남학생'이 2005년 출간돼 여러 나라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국내 의사 면허 취득자 셋 중 한 사람이, 또 지난주 판.검사 임용 인원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었다. 사기업만큼 '유리천장'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공무원.전문직 분야의 약진이 두드러진 걸 보면 한국 여학생들은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영민하기까지 한 것 같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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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왕희지 [중앙일보]

중국 서예의 역사에서 왕희지라는 인물이 차지하는 무게는 헤아릴 수 없다. 해서(楷書)와 행서(行書), 초서(草書) 등 대표적으로 꼽히는 세 종류의 서체를 완성해 중국의 서성(書聖)으로 떠받들여지는 정도이니 말이다. 그에 관한 일화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결혼에 얽힌 에피소드는 꽤 흥미롭다.

동진(東晋) 왕조를 건설하는 데 공이 컸던 왕도는 그의 백부다. 승상을 맡고 있던 왕도에게 당시 태부의 직에 있던 치감이라는 권세가가 혼사를 거론한다. 왕도의 조카들 중에서 사위를 고르고 싶다는 얘기였다.

왕도는 "직접 사람을 보내 고르시오"라는 대답을 한다. 며칠 뒤 치감은 자신의 수하를 보내 사윗감을 물색한다. 권세가의 사위라는 자리에 탐이 났던 모양이다. 왕희지의 형제들과 사촌들은 몸을 단장하고 차림새를 가다듬는다.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 이리저리 모여 앉아 토론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단 한 사람, 왕희지는 침상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었다. 누가 왔는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모습의 왕희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배 위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필체를 가다듬는 연습 중이었던 셈이다.

치감은 결국 배를 드러내 놓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왕희지를 사위로 선택했다. 집안 자제들이 머무르는 동쪽 건물의 침상에서 배를 내놓은 사람이라는 뜻의 '탄복동상(坦腹東床)'은 그에 관한 성어다. 지금은 '훌륭한 사위'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 몰두했다. 장지의 서법을 익히기 위해 연못가에서 하염없이 글자를 써 내려 간 끝에 못 물이 모두 검은색으로 물들었다는 '묵지(墨池)' 일화는 그의 이런 면모를 잘 보여 주는 고사다. 길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 하염없이 글씨 연습을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노력으로 그에 앞서 필명을 떨쳤던 서예가의 필법은 그의 솜씨에 모두 녹아들었다. 그 뒤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왕희지는 중국의 서체를 모두 아우르고 꽃피운 필법의 완성자가 된다. 처절한 노력의 결과다.

비전 없는 이공계가 싫어 의대에 편입학한 우수 학생의 이야기가 화제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야 왕희지와 같은 인물이 나온다. 요즘처럼 과학이 국가의 미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대에 우수 학생들이 이공계를 떠난다니 머리가 멍해지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명리만을 좇는 젊은이들을 탓하기에 앞서 오늘의 이공계를 만들어낸 한국의 현실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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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부전나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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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페로몬이라는 냄새 신호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서는 페로몬으로 사랑까지 나눈다. 페로몬에 대한 확신 때문에 부전나비 애벌레를 자기 애벌레로 착각하기도 한다. '색 헝겊으로 만든 작은 병 모양의 노리개'인 부전처럼 색이 고운 작은 나비다. 그러나 애벌레는 개미 애벌레와 흡사하다. 몸에서 내뿜는 화학물질마저 하도 닮아 개미가 깜빡 속는다.

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가 오이풀에 알을 까 부화하면 뿔개미는 자기 애벌레로 알고 물고 간다. 애벌레는 '배고프다'고 응석을 부려 일개미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오게 하고, 개미굴을 돌아다니며 개미알도 훔쳐 먹는다. 성충이 되어서야 개미집을 날아나온다. (최재천, '인간과 동물')

뻐꾸기의 탁란(托卵)과 비슷하지만 개미는 스스로 부전나비 애벌레를 집으로 물어간다는 게 다르다. 일본 왕개미처럼 담흑부전나비 애벌레가 흘리는 단물 맛에 취한 경우도 있다.

요즘 선거판을 보면 영락없이 남의 애벌레를 찾아 헤매는 일개미 꼴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노선상 거리가 먼 인물만 쫓아다닌다. 몇 년째 나서 있는 당내 예비후보는 뒷전이다.

정치적 정체성조차 불분명한 고건 전 총리를 쫓아다니며 당마저 쪼갰다. 이유는 한 가지,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높다는 것이다. 고건 나비가 훨훨 날아가 버리자 이번에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쳐다본다. 심지어 불개미 굴에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게까지 러브콜을 보낸다.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욕심에 취해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노선이나 정책은 관심도 없다. 부전나비가 나오건 개미가 나오건 상관도 않는다.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만 따진다. 그럴 거라면 왜 정당을 만들었을까. 자신들이 찾는 그 후보가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는 납득하고 있을까. 대선 승리의 단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전나비 애벌레를 물어갈 일은 아니다.

한나라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후보 간 정책 대결은 보이지 않는다. 논쟁을 벌여봐야 결론을 내기 어려운 거대 사업만 상징처럼 던져놨을 뿐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도 정책이나 리더십보다 당선 가능성에 좌우된다. 이 당이나 저 당이나 이기는 것이 최고선이다. 도덕성도 따져야 하지만 비전과 정책 대결이 벌어져야 다음 5년이 희망이 있다. 정책 대결을 통해 후보들은 서로 영향을 받고 닮아간다. 국가적 목표와 정책에 대한 수렴 과정이다. 이것이 빠지면 검증되지 않은 돌출정책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김진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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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2668869

[분수대] 물의 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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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의 아랄해는 인류가 물에 자행한 최악의 테러 희생물로 꼽힌다. 옛 소련의 무분별한 개발정책 때문이었다. 1960년대 이후 이 호수 인근에서는 면화 재배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랄해의 수원(水源)이 되는 강물을 펑펑 끌어다 썼다. 자연의 보복은 가혹했다. 세계에서 넷째로 큰 내륙해로 남한의 3분의 2 정도 면적이던 것이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경상북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으니 말이다. 수만 명이 북적이던 항구도시는 물가에서 100㎞ 넘게 떨어진 퇴촌(退村)으로 전락했다. 호수 바닥은 소금.흙먼지 속에서 동물 뼈가 나뒹구는 사막이 됐다. 환경 탐험가 빌리어스는 '물의 위기'에서 '인간의 오만.탐욕.무지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고 적었다. 아랄해 인접국인 우즈베키스탄의 민족시인 무하메드 샤리크는 '눈물로 아랄해를 채울 순 없지 않은가'라고 탄식했다. 중앙아프리카의 차드호, 중동의 사해처럼 지도에서 지워질 위기에 처한 호수는 지구상에 수두룩하다.

물의 97.5%는 바닷물처럼 짠물이고 담수(淡水)는 2.5%뿐이다. 강물처럼 당장 쓸 수 있는 담수는 이 중 0.26%에 불과하다. 인구가 두 배로 된 지난 100년 동안 물소비는 6배로 늘었다. 깨끗한 식수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한 인구가 지난해 11억 명에 달했다.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 1인당 강수량은 2591㎡, 세계 평균의 8분의 1로 '물부족 국가'로 분류돼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물과 미래')

유프라테스강처럼 여러 나라를 관통하는 중동지역 공유하천들은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은 "미래의 중동전은 석유가 아니라 물 때문에 터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위스키가 마시기 위해 있다면 물은 싸우기 위해 있다"고 마크 트웨인은 이 대목에서 파고든다.

하지만 동양 전래의 사고에서 물은 다툼과 거리가 멀었다. '노자(老子)'는 '지고의 선(上善)'을 물에 비유하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두가 꺼리는 곳에 머물려 한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고 설명했다.

22일은 15번째 '세계 물의 날'이다. '지구의 물부족에 맞서'라는 올해 슬로건은 지난해의 '물과 문화'보다 사뭇 숨가쁘다. 우리도 시화호에서 절감한 바 있다. 물이 아무리 선함의 상징이라도 인간의 무지가 쌓이고 쌓이면 화를 부른다는 것을.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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