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스터 영화가 독립 장르로 성립한 것은 1920년대. 20년 금주령으로 밀주 관련 조직범죄 집단이 급성장하자, 할리우드가 이런 현실을 오락화했다. 때마침 나온 발성(發聲)영화는 갱스터 영화의 현실감을 배가시켰다. 영화 속 범죄자들은 야비하고, 권선징악에 따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영화는 묘하게 현실을 비틀었다. 범죄조직이 유지되는 방식이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대기업의 논리와 같음을 드러낸 것이다. 관객은 은연중에 '갱스터=악당=부도덕한 자본가'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영화 속 범죄자들은 하층민 출신에, 사회경제적 환경 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것으로 그려졌다. 악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이었다.
20~30년대 전성기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갱스터 영화는 50년대에 복고풍으로 돌아왔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는 30년대 실존 갱들을 60년대식 반(反)영웅으로 그려낸 영화다. 71년 '대부'의 충격은 막강했다. 단순한 범죄영화를 넘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은유의 고전이 됐다.
충무로는 어떤가.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한국영화사'에서 50~60년대 '깡패영화'로 시작한 "한국 액션영화는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나 필름 느와르와 아무 상관없다"고 썼다. '장군의 아들'(1990), '친구'(2001)로 이어지는 일련의 '조폭영화'도 마찬가지다. 사회비평이나 폭력의 본질을 성찰하기보다는 '마초 판타지'나 '남성성의 재구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형님문화'의 재생산, 잃어버린 부권(父權)에 대한 향수, 힘에 대한 숭배가 특징이다. 조폭과 권력층의 유착은 곁가지일 뿐, 조폭영화는 '남성영화'로 소비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조폭코미디'라는 신종 장르가 추가됐다. 욕설과 폭력을 코미디로 버무려 값싸게 소비하는 장르다. 명절마다 흥행몰이를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한국형 장르다. 또한 조폭은 한국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장르 불문이다. 아마도 조폭은 최근 한국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한 직업군일 것이다.
영화와 조폭의 깊은 '인연'이 이번에는 조폭의 스타 협박사건으로 발화했다. 아직도 조폭의 검은 그늘이 연예계에 드리워져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한국 영화의 조폭 미화가 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화까지는 아니어도, 가볍고 무책임하게 다루는 것만은 분명하다. 너무 익숙해져서일까. 활달한 여자 초등생끼리 '조폭'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세상이 된 것은.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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