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 CNN 앵커, 앤더슨 쿠퍼의 전쟁, 재난, 그리고 생존의 기억
앤더슨 쿠퍼 지음, 채인택.중앙일보 국제부 옮김 / 고려원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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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자들에게는 꽤 흥미있는 책일 수 있다. 비범한 출신 성분, CNN의 간판 기자, 그리고 그리 나쁘지 않은 기자의 글솜씨.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국독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의 가문에 대해 알지도, CNN 을 통해 그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도 없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 책이 미국의 부와 권력의 간접체험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는다. 아니면 막대한 재산이 있는데도 모험적인 길을 걸을 수 있는 미국인의 과단성에 대한 재확인이거나.

컬럼 수준의 취재담과 신변잡기를 얼기설기 엮어 놓은 그저 그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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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스터디즈 - 일본 문화의 중심, 도쿄를 바라보는 38개의 시선
요시미 슌야.와카바야시 미키오 외 엮음, 오석철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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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좋은 책. 일본 도시론과 도쿄의 현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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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 사상 - 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
사사키 아쓰시 지음, 송태욱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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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사다 아키라가 80년대 초 우연히 거둔 폭발적인 성공과 더불어 등장한 일본의 뉴아카데미즘-프랑스 현대철학의 대중적 인기-에서부터 그들의 영향 아래 성장한 새로운 세대의 철학자, 비평가이자 2010년 현재 오타쿠 문화에 대한 비평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아즈마 히로키에 이르기까지, 현대 일본의 사상사를 80년, 90년, 00년 대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아사다 아키라의 경우 한국에는 90년대에 한국에서도 프랑스 현대철학이 유행하면서 청년기의 대표작이 출판된 바 있으나 별다른 반향은 불러 일으키지 못했고, 2000년대 들어 가라타니 고진의 책들이 한국 문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이 일본의 사상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 아즈마 히로키도 소개되고 있으며, 이 책은 가라타니 고진과 아즈마 히로키에 대한 국내의 관심을 반영하여 출판된 책이라 할 수 있다(번역자 송태욱씨 부터가 가라타니의 번역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한 사람이니). 이 책에서 소개되는 다른 저자들이 한국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라타니 고진이나 아즈마 히로키가 글을 써 온 맥락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현대 일본의 사상 동향을 들여다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은 책이라 할 것이다. 다만 너무 가까운 시대에 대해 그 시대의 내부자의 한 사람이 이야기 하는 것이라 외부자의 눈에는 상황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책 자체가 현대 일본 사상에 대한 엄정한 정리보다는 가벼운 소개를 목적으로 한 신서(新書)이기에 갖는 한계라 할 것이다.  

사상서로서는 그리 칭찬할 점이 많지 않은 책이지만 한 가지 이채로운 점은 저자가 사상을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다루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하나의 사상의 내용을 평가하고, 내용의 길항관계를 통해 사상사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관중을 의식하는 퍼포먼스로, 사상사를 그러한 퍼포먼스의 흥행사로 기술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인문 교양서의 독서 인구가 상당수 존재하는(약 10먄) 일본이기에 가능한 접근법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대학의 존재 방식과 출판 문화 시장의 판도 변화를 겪어 인문학의 생존이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 응대하는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인문학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어쨌든 대학이라는 매개를 넘어 대중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인문학의 생존을 모색하려는 시도들이 있으니, 생존술의 하나로서 일본의 흥행의 역사를 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사상을 제대로 퍼포먼스로 보여 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 책은 크게 다음의 세 가지 목표를 다루려 하고 있다. 1. 80-00 년대를 거쳐 등장한 여러 사상가들의 사상의 내용을 소개하기 2. 이 사상들을 일본 사회 및 사상 시장의 변화와 연결시키기 3. 여러 다양한 운동의 귀결점으로 아즈마 히로키를 제시하기. 첫 번째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여러 사상가들에 대한 소개는 지리멸렬해 거의 도움이 안 된다. 문제는 두 번째다. 사상을 사회적 조건과 연결시키는 일반적인 방법은 사상을 사회가 제기한 문제에 대한 해답의 모색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이 책이 한 발 더 나아간 것은 사회가 제기하는 문제를 사상 자신의 생존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일정한 향유자를 유지하며 존재해 나가기 위해서 사상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퍼포먼스로서 사상을 읽겠다는 말은 이 문제에 대해 사상이 대답한 방식을 읽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며, 이 목표를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면 이와 같은 생존의 문제가 사상의 내용과도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시 물을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그와 같은 물음이 던져지는 대상은 아즈마 히로키 하나 뿐이다. 이는 다음의 목표, 아즈마를 일본 현대 사상 운동의 귀결로 내세우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이는데, 저 질문이 아즈마 히로키에게만 던져 짐으로써 아즈마 히로키의 철학과 그 실천을 '생존의 필요성'이라는 것을 통해 정당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즈마 히로키가 00 년대에 처한 상황은 앞선 세대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라타니 고진이나 아사다 아키라와는 천양지차이며, 그런 의미에서 아즈마 히로키의 실천이 시장 논리를 적극 수용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존의 문제'는 적절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아즈마를 비판하느냐 긍정하느냐가 아니라 사상을 퍼포먼스로 기술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상가들에게도 그러한 설명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7-80년대의 대학 구조와 독서 인구,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아사다 아키라나 가라타니 고진이 어떻게 자신의 사상의 실천 형태를 고심했는지도 자세하게 고찰되었더라면, 마찬가지로 90년대를 거치면서 독서 인구가 점감하는 과정을 추적하고, 오늘날 일본에서 오타쿠 문화의 일종으로 편입되고 있는 인문학의 수용양태를 고찰했더라면 훨씬 더 흥미로운 책이 되었을 것이다. 

요컨대 퍼포먼스로서 사상을 이해하겠다는 과감한 포부는 달성되지 못하고 사상 소개도 썩 좋지 못해 이도저도 아니라는 느낌이다. 게다가 사실 나는 이러한 이도저도 아님이 아즈마 히로키를 긍정하려는 무리한 노력으로 인해 발생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아즈마 히로키의 시장 논리 수용을, 사상은 하나의 퍼포먼스로서 시대에 대해 행해지는 것이라는 논리로 정당화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을 무리하게 밀고 나갈 생각은 없다. 다만 사상을 퍼포먼스로 보고자 할 때 생기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을 해 보고 싶다.  

여기서 소개되는 아즈마 히로키의 사상 실천-프로젝트 런웨이 같은 비평가 양성 서바이벌 프로그램 기획 등-은 일종의 흥행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흥행업은 단지 하나의 작품-사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프로모션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상사가 이 프로모션들 중 하나에 속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기존에 사상사를 쓴다고 함은 시간에 의해 사상과 거리를 두고 사상 그 자체와는 다른 층위에서, 즉, 메타적으로 사상에 대해 논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상이 흥행상품이 되는 순간 사상사는 프로모션이 되고 흥행업이라는 같은 맥락 안에 위치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실 비평이라는 것은 불가능해져 버린다. 아즈마 히로키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아즈마 히로키에 대한 홍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책이 판촉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리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에도 문학이나 비평, 사상의 전통적 가치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비평을 가장한 판촉을 하는 위선을 늘 있는 일이다. 오히려 그렇게 되는 조건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훨씬 덜 위선적이며 생산적인 태도라고 본다. 다만  생산성은 조건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그것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모색해야만 가능하다. 수용에서는 어떤 비평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보여 주는 것이 285쪽에서 80년, 90년, 00년의 사상의 특징을 요약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의 사상은 비판적이었고, 90년대의 사상은 관여적이었으며, 00년대의 사상은 수용적이라고 논한 뒤 저자는 다시 이를 세계를 변혁하려는 것, 설명하려는 것, 감수하려는 것이라고 바꿔 말한다. 세계를 조형하고자 하는 지의 체계를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면, 세계를 설명하는 것은 과학이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를 감수하는 것은 대체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우리는 세계를 감수하는 지적 행위를 명명할 수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정보 하나. 이 책의 저자인 사사키 아쓰시는 책의 뒷 부분에 무려 다섯권의 저작을 소개하며 우정을 과시한 스즈키 켄스케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의 게스트이다. 일본에서 이 책(원제:일본의 사상)이 출판된 것을 기념해 그 라디오 방송에서 특집 대담이 2009년 9월에 있었고 그에 앞서 2009년 5월에는 아즈마 히로키를 초빙해 현대사상에 대한 긴 대담을 가진 바 있다. 특히 후자의 논의는 이 책에서 한 이야기를 포함해 아즈마 히로키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므로 들어 볼 만 하다. 테마 아카이브의 링크를 걸어 둔다. (www.tbsradio.jp/life/2009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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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슴츠레 2011-02-06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저로서는 퍼포먼스로서 사상사를 본다는 것 자체가 많이 신기한 책이었는데요, "문제는 아즈마를 비판하느냐 긍정하느냐가 아니라 사상을 퍼포먼스로 기술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상가들에게도 그러한 설명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이다"라는 지적에 사사키가 충분하지 못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되었군요.
 
하위문화 : 스타일의 의미 - 문화교양 9
딕 헵디지 지음 / 현실문화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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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떠한 책인지 사전정보 전혀 없이 우연히 발견해 읽게 되었지만, 역자에 따르면 하위문화연구에서는 고전에 속할 만한 명저라고 한다(찾아 보니 딕 헵디지는 CCCS의 설립자 중 하나다). 50년대에 출현해 글이 쓰인 시점에서 가장 최신이자 뜨거웠던 펑크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하위문화들을 바르트의 기호학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이용해 풀어내고 있다. 하위문화의 다양한 스타일들은 기호로서 분석되고, 의미의 생성은 궁극적으로는 계급모순에 의해 결정되는 다양한 사회의 층위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된다. 장 쥬네와 쥬네에 대한 사르트르의 연구를 통해 하위문화주체의 미묘한 심리를 쫓기도 한다. 관점이 분명하고 수 많은 하위문화들의 복잡한 계보들을 잘 풀어내고 있어 읽다 보면 당대 영국 하위문화에 대한 뚜렷한 상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과연 명저라고 불릴 수 있겠다 싶다. 6-70년대의 영국 하위문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거나, 당시의 문화 현상이 좌파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이고자 하였는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발번역을 참을 인내가 있다면) 읽어 볼 만 하다.

그러나 시대상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를 읽어내는 방식을 배우는 데는 이 책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로, 우선 분석의 틀이 되는 이론이 바르트와 알튀세르라 계급문제를 분석의 기본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과 오늘날 비주류문화의 위상이 70년대와는 완연히 달라 비주류문화를 주류 문화와 저항과 포섭의 갈등 관계를 갖는 하위문화로 그려내는 것이 많이 어렵다는 점이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하위문화의 출현이 청년의 세대문화라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되고 특수한 역사적 국면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문화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계급운동과 계급문화가 쇠퇴하던 시대에 탄생한 이론도, 그 이론을 통해 분석된 그 시대의 사회현상인 하위문화도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은 것이다. 게다가 노동계급 문화와 운동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 및 동아시아 사회에 이 책의 접근 방법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하위문화를 에스니시티와 계급성과의 관련하에서 기술하고 있는 한 이 책은 오늘날 세계의 다양한 비주류문화들을 분석하는데, 더 중요하게는 한국의 문화들을 분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최신 문화연구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아직도 문화연구가 예전의 활기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나 이 책의 내용은 최신의 연구 성과에 의해 정리되고 극복된 형태로 소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난 꽤 즐겁게 이 책을 읽었다.  

촌스런 폰트와 촌스런 표지, 그리고 촌스런 내용과 번역(!)까지도 모두 한국에서 운동권 문화와는 구분되는 청년문화라는 것이 태동하던, 또는 운동권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며 청년문화를 태동시키려 하던 시기의 서툴기에 뜨거웠던 열정을 그려 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90년대를 브라운관 앞에 앉은 꼬맹이로 보냈으므로 이건 회고가 아니라 환상일 뿐이고, 당시의 기획들이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오늘날 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면 당시의 서투름, 무엇보다 학적인 게으름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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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트랜스 소시올로지 5
슬라보예 지젝 지음, 박정수 옮김 / 그린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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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700쪽은 너무 많다. 이제 지젝의 수다스런 스타일이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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