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문화 지형도 - 동시대 문화의 이해를 위한, 개정판 코디 최의 대중을 위한 문화 강의 1
코디 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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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문화 지형도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책을 20세기 문화 전반에 대한 개설서로 보기는 어렵다. 특정한 지역(미국)의 특정한 이론적 관점에 입각해 20세기의 문화 현상들과 현재 미국의 학계와 문화계를 주도하는 담론들을 소개하고 있는 책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책의 성격을 이와 같이 재규정하고 이 책의 가치를 살펴 보자. 

이 책의 장점은 정치, 경제, 사회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 현상과 다양한 문화, 사회 이론들(소쉬르, 바르트, 데리다 등등), 그리고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합적으로 개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던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 어떻게 모더니스트의 예술적, 지적 실천들을 규정했는지 반대로 포스트 구조주의의 이론들이 어떻게 포스트모던 시대의 예술가들의 작업에 영감을 불어 넣었는지 등이 서술되고 있다. 이러한 서술 과정에서 저자는 지식은 잘 선별된 '정보'라는 자신의 입장대로 해석과 평가는 유보하고 최대한 많은 항목들을 다루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을 20세기의 문화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해도로 본다면, 많은 다양한 기항지들이 소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개가 저자가 잘 알고 있을 미국이라는 문화 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특정한 문화 공간 내에서 특정한 정신적 배경을 공유하며 이루어지는 문화 실천들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이처럼 문화와 이론, 그리고 예술 활동을 한 번에 접할 수 있다는 것과 미국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책이기도 하다. 일단 저자가 '미국'에서 수십년을 공부한 탓에 한글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다. 문장이 엉망이며 단어 사용도 엉망이고, 논리 전개 역시 매끄럽지 않다. 덕분에 글이 잘 읽히질 않으며, 내용이 명료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몇 구절만 예를 들어 보자. "이러한 배후 속에서 레이건과 대처는"(201), "캠페인과 미디어를 통해 인기를 선점하려는"(202), "미국의 영향권 아래 물들어 가는 정부"(203), "국민들은 대통령을 전복시키고"(204) 등등. 예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거의 매 쪽마다 어색한 한국어 문장들이 있다. 단순한 내용이라 문장이 이상해도 의미 파악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이런 잘못들이 복잡한 내용을 서술할 때도 발견돼 내용 이해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른 문제는 저자의 공언과는 달리 여기서 소개되는 다양한 항목들이 제대로 '흐름'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모더니티와 모더니즘을 구분하며 모더니즘을 모더니티를 가능하게 한 정신적 기반이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모더니즘이 어떻게 모더니티로 실현되는지는 전혀 소개하지 않고 있으며, 저자의 말처럼 일방적인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지 않으며 서로 구별되면서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 모더니즘과 모더니티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는지도 서술하지 않고 있다. 또한 건축, 정치, 문학, 회화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모더니스트 실천들을 소개하면서도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모더니즘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일 수 있는지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제공하고 있지 않다. 루즈벨트의 우익 포퓰리즘은 어떤 의미에서 모더니즘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는 개별 서술에서 등장하는 우연적인 결함이 아니다. 20세기 문화에 대한 통사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역사관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 이와 같은 문제를 낳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모더니티란 이름 아래 이해하는 현상이 출현한 역사적 조건과 그 조건에 의해 모더니즘의 문화 실천들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또 반대로 모더니즘이 모더니티를 규정한 것이라면 모더니즘의 정신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나가는지를 서술하는 하나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엄연한 통사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난삽한 항목들이 마치 백과사전의 항목처럼만 나열되어 있는 수준의 서술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쓰고 있듯이 질적으로 검증된 정보를 전달하고 싶었던 듯 하나, 20세기를 주제로 삼은 시점에서 저자는 역사를 썼어야만 했던 것이며, 역사를 쓰기 위해 관점을 설정했어야만 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실패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개별 항목들에 있어서는 질적으로 검증된 정보를 전달해 주고 있는가? 각 항목 당 A4 한 장 남짓한 분량이 할애되고 있는 책에 내용의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은 어렵다. 짧은 분량 안에 좋은 내용을 전달하려면 그 주제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야 하는데, 가벼운 개설서를 의도한 저자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질적으로 검증된 정보라도 제공해 주어야 할 것인데, 과연 이 글을 읽은 후 독자가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 무언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인지, 모던과 포스트모던이 무엇인지 등 극히 미묘한 차이들을 가지는 개념들을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다. 이 개념들은 아무런 정의 없이 사용되어도 좋을 만큼 분명한 개념이 결코 아니고, 이 책이 개론서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이 개념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소개되었으며, 이 개념들의 특성은 학자에 따라 이러저러한 식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까지 소개했어야 했다. 이처럼 개념 정의 작업을 건너 뛰니까 아래와 같은 황당한 내용이 나오게 된다. 저자는 남미의 반미 민족주의 노선을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소개하고, 레이건을 추종하는 중남미의 보수적 정치 노선을 우파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연 이러한 남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저자가 앞서 사용해 왔던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인지, 회의적인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던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 규정을 전혀 내리지 않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나마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의 심화와 대중소비사회의 출현과 더불어 모더니즘의 이상적 기획이 좌절된 후 나타난 문화현상이라는 것인데, 주로 유럽 사회에서 실천된 모더니스트 기획의 실패에 대한 반응인 포스트모더니즘이 남미와 무슨 관계란 말인가? 사실 따져 묻고 싶은 건 이것 뿐만이 아니다. 근대 회화의 원시주의에 레비 스트로스의 작업이 영향을 미쳤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가? 레비 스트로스가 지적 명성을 얻는 것은 5-60 년대에 걸쳐서인데 원시주의 회화와는 상당한 시차가 있지 않은가? 70년대 영국의 강성 노조가 정치에까지 참여해 경제가 악화되었다고 쓰고 있는데 원래 영국은 노조와 정당의 관계가 극히 밀접한 국가가 아닌가? 이런 문제가 지엽적인 것이라면, 다음의 물음들은 어떤가? 포스트 구조주의는 맑시즘을 뿌리에 둔 사상인가? 만약 그렇다면 저자는 왜 포스트 구조주의의 이론들을 소개할 때는 그런 주장은 한 번도 하지 않았는가?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책으로 포스트구조주의가 종말을 고했는가? 그 책에 대한 데리다의 반발인 "맑스의 유령들"이 미국 학계에서는 데리다 역시 맑스주의자에 불과했다는 평가를 받은 게 전부인 게 아닌가? 포스트구조주의의 몰락은 미국 학계에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제 그 문화이론으로서의 적실함이 사라졌다는 것인가? 이런 식의 부정확함과 의미전달조차 안 되는 애매한 서술 등은 개별항목들이 과연 질적으로 검증되긴 한 내용인지조차 의심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개설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도서 목록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요즘 나오는 어지간한 개설서들은 이 정도는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데, 저자와 출판사의 안이함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 책은 난삽한 한글로 인해 가독성이 나쁜 점, 다양한 내용을 연결 짓는 흐름이 없다는 점, 각각의 항목들에 대한 소개도 엉망이라는 점, 그리고 앞으로 더 공부하기 위한 가이드 역시 전혀 없다는 점에서 개론서로서 완전히 실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지적처럼 한국에서 20세기의 문화이론들은 주로 전공자들을 중심으로 해서 소개되었으며, 이론과 역사를 연결지어 개관하는 저술은 찾아 보기 힘들다. 이는 물론 전적으로 연구자들을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정리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아직 끝났다고도 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전개되고 있는 다양한 이론적 입장들이 자신의 이론적 실천의 일환으로 자신의 과거를 정리한 결과물일 뿐이다. 코디 최의 글은 20세기 문화에 대한 이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특정한 학술 담론이 20세기 문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려 줄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작업들의 모자이크를 통해서야 비로소 20세기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가능해 질 것이다. 코디 최의 저술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한국에는 현대의 다양한 이론들과 문화를 미국이라는 특수한 지역을 중심으로 서술한 작업이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잘 서술되었다면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이 글은 20세기 문화에 대한 개설을 원하는 사람에게도, 20세기 문화를 현대 미국 학계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도 만족을 줄 수 없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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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keeeeeeeekeeee 2017-05-2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황한 리뷰 잘봤어요..
명심보감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