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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벤슨 메이츠의 "기초 논리학"을 발견하고 뽑아서 좀 훑어 보았다. 논리학에 조예가 없으니 논리학의 개념들에 대한 이 책의 설명이 얼마나 적절한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과 그 내용들을 구성하는 방식이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지만 독학자에게 이 책이 논리학 교과서로서는 결코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1. 연습문제는 양이 너무 적고, 연습문제에 대한 해답도 없으며, 연습문제의 난이도는 너무 높다.

 

2. 중요한 개념들에 대한 설명이 너무 간략하다. 예컨대 프레게의 뜻과 지시체의 구분, 불투명한 맥락과 투명한 맥락의 구분 등이 초반에 3-4 페이지에 걸쳐 간략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런 개념들을 기본적인 기술적 도구들도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배워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논리학의 형식 언어의 표현력과 유용함을 체감해 보기도 전에 이런 개념들에 대해 소개 받는다고 해서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보기에 좋은 교과서의 필수 조건은 연습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학 공부는 언어 공부와 마찬가지로 연습을 많이 해 보는 것이 중요한데 연습문제의 양도 적도, 해답도 제공되지 않으면, 학생으로서는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교수의 강의와 과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니 교수 입장에선 학생들 장악하기 좋긴 하겠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교수자의 편의성만 생각하고 독자의 편의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만들어진 책으로, 안 좋은 의미에서 전형적인 대학 교재 같은 책이다. 


내 생각에 좋은 논리학 교과서란, 1) 연습문제를 많이 제공하고 2) 연습문제에 대한 해답도 제공해야 하며, 3) 설명은 쉽고 단순해야 하고(어빙 코피의 책은 그래서 별로다), 4) 분량이 짧아야 한다. 


다른 주제라면 설명의 간략함이 자칫 큰 오해를 낳을 위험이 있지만 논리학에 한해서는 그 위험이 덜하다. 언어를 공부할 때 쉽고 단순한 교과서부터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는 것이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아래는 내가 보기에 위의 조건들을 충족하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되는 논리학 교과서들이다. 벤슨 메이츠 책은 그만 절판시키고, 더 나은 이런 책들이 소개됐으면 좋겠지만, 핵심 수요층이 대학생인 이런 책들이 번역될 가능성은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줄어들지 커지진 않을 것 같다. 


1. A Moder Formal Logic Primer (Paul Teller 지음). 1부, 문장 논리 2부, 술어 논리로 나뉘어져 있고, 모든 연습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설명은 이보다 더 짧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그렇다고 조잡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공짜다. 여기서 저자가 직접 올려 놓은 PDF 파일을 구할 수 있다. (https://tellerprimer.ucdavis.edu/)


2. Introduction to Logic (Henry Gensler 지음) 첫 번째 책이 문장 논리와 술어 논리만을 다룬다면 겐슬러의 책은 삼단논법이나 귀납논증 같은 고전적인 주제와 양상 논리나 의무 논리 등 최근에 발전된 논리학들도 다루고 있다. 400 쪽 남짓한 책이니 각각의 주제들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진 않지만, 충분한 연습문제를 제공하고 있고 연습문제에 대한 해답도 제공하고 있어 독학하기에 나쁘지 않다. 겐슬러는 본인이 직접 만든 논리학 연습 컴퓨터 프로그램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http://www.harryhiker.com/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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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입문 - 제14판
IRVING M.COPI 지음 / 경문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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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쉽고 친절하지만 그만큼 쓸데없이 분량이 많으며, 다루는 내용이 매우 초보적이라 추가적인 공부를 위한 적절한 기초를 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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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논리학
벤슨 메이츠 지음, 선우환.김영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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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는 달리 논리학에 입문하는 사람이 혼자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다. 연습 문제는 양이 너무 적고 처음부터 너무 어려우며(술어 논리 번역의 연습문제들을 보라), 명제 논리를 먼저 소개하고 술어 논리로 나아가는 쉬운 구성 대신 양화사부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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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사란 무엇인가? - 역사가가 텍스트를 읽는 방법
리처드 왓모어 지음, 이우창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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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소개된 역사학자들의 작업을 '역사적 텍스트에 대한 화용론'이란 말로 요약할 있을 것이다.

 

역사맥락주의자들의 방법론을 소개한 2장은 오스틴[Austin] 발화행위 이론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외에도 텍스트에 대한 역사적 독해에서 중요한 작업은 저자가 해당 텍스트를 작성하고 발표함으로써 하고자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의도를 밝혀내는 것임을 강조하는 데서 그라이스[Grice]와 스트로슨[Strawson] 영향력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발화행위를 이해하는 데 있어 발화자의 의도를 강조하는 것이 발화행위 이론 내의 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오스틴과 설[Searle]은 의도보다는 관습에 더 무게를 두었다.) 

 

물론, 영국의 지성사가들의 작업이 옥스포드의 일상언어학파나 폴 그라이스의 작업에서 실제로 영감을 얻은 뒤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작업의 방법론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작업을 참조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반대로 철학자들이 역사학자들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또한 발화행위이론이나 그라이스의 화용론의 혁신성은, 기존의 언어철학과의 관계 속에서, 이 이론들이 자신들의 착상을 어떻게 체계화시키는 데 성공했는지를 고려함으로써 부각되는 것이지 사람들이 언어를 활용해 다양한 행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에 기반해 역사적 텍스트를 해석하기 위해 언어철학을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쩄건 이 작업들이 제출된 시기가 겹치며, 케임브리지 지성사가들의 방법론을 철학적으로 정교화하고자 했던 스키너[Skinner]가 스트로슨과 그라이스의 작업을 참조해 철학 논문을 쓰기도 하였으니("Conventions and the understanding of speech acts", 1970), 이 두 학파의 역사적 연관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스틴과 그라이스의 작업과 역사맥락주의자들의 방법의 유사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화용론의 전형적인 예를 살펴 보자.

 

어떤 사람이 동료 철학자에게, 철학자 A 훌륭한 철학자인지 아닌지 묻는다고 생각해 보자. 질문에 동료 철학자가 'A 글씨를 아주 '라고 대답한다면, (그리고 그가 질문을 제대로 들었고, 협력적인 대화자라면, 그리고 해당 사회에서 남에 대해 직접적으로 좋은 말을 하는 것이 터부시된다면, 등등) 대답을 A 철학자로서 별로라는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상황을 우리는 오스틴과 그라이스의 이론을 사용해 각각 다음과 같이 이해할 있다. 1) 동료 철학자는 'A 글씨를 아주 '라는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A 삼류 철학자라고 주장하는 발화행위를 했다. 2) 동료 철학자는 'A 글씨를 아주 '라는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A 삼류 철학자라는 정보를 전달하고자 의도했다=동료 철학자의 'A 글씨를 아주 '라는 발화의 화자-의미(Speaker's-meaning) A 삼류 철학자라는 것이다.

 

의미론이 'A 글씨를 아주 '라는 문장이 어떻게 A 글씨를 아주 쓴다는 명제를 축자적 의미로 갖게 되는지를 연구한다면, 화용론은 동료 철학자가 'A 글씨를 아주 '라는 문장을 발화함으로써 어떻게 A 삼류 철학자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연구한다.

 

책을 읽은 독자라면 여기서 역사맥락주의자의 작업과 화용론의 유사성을 있을 것이다. 역사맥락주의자들은 텍스트의 개별 문장들의 축자적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은, 위의 예의 'A 글씨를 아주 '라는 발화에서 오직 A 글씨를 쓴다는 정보만을 읽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작업이라고 본다. 동료 철학자의 발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갖 맥락들을 알고 해당 발화에 접근해야 하는 것처럼 역사적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텍스트가 생산, 발표된 온갖 맥락들을 알고 해당 텍스트에 접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옥스포드 일상언어학파의 철학자들은 의미의 기초 단위가 문장이 아니라 실제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 해당 문장들의 개별 발화들이라고 보았다(때문에 의미는 사용이다라는 유명한 슬로건이 있는 것이다). 개별 발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발화가 대화 속에서 하는 역할을 이해해야 하는 것처럼, 역사맥락주의에 따르면 개별 역사적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텍스트가 쓰여진 맥락-그 텍스트가 어떤 지적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화용론과 역사맥락주의자들의 작업의 유사성에는 뚜렷한 차이도 있다. 역사적 텍스트와 해석자 사이에는 시간 간격이 있는 반면, 동료 철학자의 발화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자를 향해 이루어졌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언어 표현의 의미가 바뀌므로, 역사적 텍스트를 맥락을 무시하고 읽을 경우, 우리는 텍스트의 축자적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어떤 표현이 200년전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용법으로 사용됐을 수도 있고, 개별 저자가 어떤 표현을 당대의 의미 용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텍스트를 읽는 작업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 내는 작업보다도, 텍스트의 문장들의 축자적 의미를 이해하는 작업보다도 복잡할 것이다. 먼저, 축자적 의미를 가정하고 맥락을 재구성하여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것이고, 그렇게 파악한 의도가 되물림하여 애초에 가정된 축자적 의미를 재설정하게 것이고, 이는 다시금 저자의 의도를 다르게 파악하게 것이다.

 

이는 역사적 텍스트를 읽는 데에서만 고유한 것은 아니라 기호를 사용한 인간의 의사소통의 본질적 특성이다. 그러나 텍스트가 생산된 시간과 독해가 이루어지는 시간 사이에 광대한 차이가 존재하는 역사학의 작업에서 특성은 더욱 날카롭게 표현된다. 어려움이 우리가 훌륭한 역사가들의 작업에 존경심을 표하는 이유 하나일 것이다.

 




흥미로운 내용을 담은 책이지만 책의 구성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있다. 책은 역사학의 학파의 작업 방법론을 장점과 한계를 포함하여 조망할 있게 도와주는 책이 아니다. 반대로 책은 학파의 구성원에 의한 선언문에 가깝다. 저자는 끊임없이 '우리는 이렇게 훌륭해요'란 태도로 일관한다. 게다가 다른 입장들, 다른 사상들에 대해 소개할 일부러 부정적인 단어들을 선택하는데 이런 태도는 학술서로서 부적절할 아니라, 이렇게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내는 태도는 저자의 공언과는 달리 학파의 승리가 그다지 탄탄한 지반 위에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들게 한다.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질문은 역사적 텍스트가 생산되는 맥락을 구체화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이다. 맥락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한히 다양하며, 이 요소 중 무엇을 텍스트 이해에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키고 배제시키느냐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맥락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맥락이 텍스트 해석에 영향을 미치므로 무한히 다양한, 그러나 각각의 맥락에 비추어서는 타당한 텍스트 해석들의 존재 또한 가능하다. 맥락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해석의 타당성을 평가할 기준 또한 없게 될 것이다. 맥락이 텍스트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이론적 주장을 할 때는 이런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없지만 실재하는 역사적 텍스트의 의미는 무엇이다라는 경험적 주장을 할 때는 이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실제로 맥락을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이 재구성된 맥락이 다른 사람들이 재구성한 맥락보다 낫다는 것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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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형이상학 입문
투마스 타코 지음, 박준호 옮김 / 서광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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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질이 많이 안 좋다. 책을 읽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어 원문을 찾아 보면 오역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번역비평'이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번역자의 부담을 크게 만들어 번역 작업을 위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형이상학은 어렵다', '철학은 어렵다', '분석철학은 어렵다' 등의 생각을 하는 독자들이 있을까봐 굳이 지적을 한다. 책을 읽다가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 되거나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원문을 찾아 보면 된다. 분석철학자들은 대체로 매우 평이한 문장을 구사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 책과 같은 입문서의 문장들은 더욱 평이하므로 그리 수고로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한 편, 책을 읽는 목적이 극히 최근의 분석철학계의 논쟁 지형을 한국어로 빠르게 훑는 것이라면 이 책은 그 목적 달성에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훨씬 더 질이 나쁜 철학 번역들도 많은데 이 정도면 어떻게든 읽어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차피 대강의 흐름만을 소개하는 책이므로 원문으로 읽더라도 이 책에서 소개하는 어떠한 논증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이해를 얻기는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사실 오역으로 인해 다소 이해도가 떨어지더라도 크게 문제는 안 될지도 모르겠다.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본래 평이하게 읽혀야 할 글이 그렇게 읽히지 않음으로써 형이상학에 관심을 막 가진 독자들을 도망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고 삼아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심각한 오역을 몇 가지 밝혀 본다. 생각이 미치면 앞으로도 틈틈히 업데이트할 생각이다. 최소한 한 쪽에 하나씩 오역이 있다.


(64쪽) 


"크레인의 견해에 따르면 속성의 실존-함축성은 사물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사물에 대한 서술이 옳으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이 이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비실존대상은 이런 속성, 예를 들어, 황금임을 가질 수 없다. 실존하는 것이야말로 황금으로 이루어진 사물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들은 한 단락의 제일 앞에 등장하는 문장들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한국어로도 잘못된 문장이다. '이런 속성'에서 '이런'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On Crane’s view, it is the natures of things that determine which properties are existence-entailing, as these natures determine which conditions must hold for predications to be true of those things. In contrast, non-existent objects cannot have certain properties, such as being golden, because it is in the nature of golden things that they exist." 


'certain' 의 번역이 잘못되었다. 비실존대상은 '이런' 속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속성들을 가질 수 없다. '특정한'이 이상하다면 '비실존대상들이 가질 수 없는 종류의 속성들이 있다.'고 번역해도 좋았을 것이다. 


이번엔 더 큰 오류다. 


(66쪽)


"그래서 표준적 양화논리학과 달리 양화의 범위를 재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비실존자를 포함할 수 있도록 양화의 범위를 확장한다. 그러나 양화의 범위가 처음부터 비실존자를 포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크레인은 집합으로 간주되는 양화의 범위 개념에 토대를 두고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


문장의 전개가 엉망이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원문은 이렇다. 


"Instead, Crane offers a reinterpretation of domains of quantification, suggesting that they may include non-existents as well. But why think that domains of quantification could not include non-existents in the first place? Crane has a theory, based on the popular conception of domains of quantification regarded as sets:" 


"그러나 양화의 범위가 처음부터 비실존자를 포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는 완전한 오역이다. 크레인은 비실존자를 포함하도록 양화의 범위를 확장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표준적인 해석에 따르면 양화의 범위에는 비실존자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소리이다. 여기서 글쓴이가 묻고 있는 것은 대체 왜 표준적 해석은 양화의 범위에 비실존자를 포함시키지 않느냐는 거이다. 따라서 "그런데 왜 애초에 (사람들은) 양화의 범위에 비실존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정도로 옮겨야 자연스럽다. 이 다음 오역은 더욱 심각하다. "Crane has a theory"를 "크레인은 자신의 이론을 전개한다"로 옮겼다. 그러나 여기서 'theory'는 추측을 가리킨다. 즉, "크레인은 많은 철학자들이 양화의 범위를 집합이라 생각한다는 사실이 그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도로 옮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70쪽)


"상대주의자에 관한 둘째 이해에 의거하면"


"On a second, relativist , understanding"


=> "두번째 해석인 상대주의적 해석에 따르면" 정도로 번역해야 한다. 



(188쪽) 

"Q가 P 로 환원되면, P는 Q에 근거한다"

말이 안 된다. 원문은 이렇다. 

"If p reduces to q,then p grounds q." 

"...환원되면, P가 Q를 근거짓는다"

반대로 번역해 놓았으니 말이 될리가 없다.




(320쪽)


"반 프란센의 지적에 따르면 형이상학이 제대로 반증가능성을 갖지 못한다면 자연주의를 전면적으로 전복시키려는 현대 형이상학자에게 큰 문젯거리이다."


313쪽에서 거의 모든 현대 형이상학자가 자연주의를 수용하고 있다고 쓰여 있으며, 자연주의를 전면적으로 전복시키려는 현대 형이상학의 기획은 소개된 바 없으므로, 이해 불가능한 문장이다. 


"Van Fraassen points out that the failure of metaphysics to be properly falsifiable is particularly problematic for those contemporary metaphysicians who strive to uphold some version of naturalism (which is most of them)."


오역이 발생한 이유는 'uphold'를 '전복시키다'로 옮겼기 때문이다. 'uphold' 는 '유지하다', '옹호하다'와 같은 뜻을 갖고 있다. 사전도 안 찾아 봤다는 얘기다..




이와 같이 논쟁의 여지 없이 틀린 번역이 거의 매 페이지마다 등장한다..






덧. 사실 원저 자체가 굳이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라 생각된다. 원저를 영어로 볼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Chalmers 가 편집한 "Metametaphysics: new essays on the foundations of ontology"에 수록된 논문들을 추려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투마스 타코도 이 선집에 실린 논문들에 엄청 기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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