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문화 : 스타일의 의미 - 문화교양 9
딕 헵디지 지음 / 현실문화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떠한 책인지 사전정보 전혀 없이 우연히 발견해 읽게 되었지만, 역자에 따르면 하위문화연구에서는 고전에 속할 만한 명저라고 한다(찾아 보니 딕 헵디지는 CCCS의 설립자 중 하나다). 50년대에 출현해 글이 쓰인 시점에서 가장 최신이자 뜨거웠던 펑크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하위문화들을 바르트의 기호학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이용해 풀어내고 있다. 하위문화의 다양한 스타일들은 기호로서 분석되고, 의미의 생성은 궁극적으로는 계급모순에 의해 결정되는 다양한 사회의 층위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이해된다. 장 쥬네와 쥬네에 대한 사르트르의 연구를 통해 하위문화주체의 미묘한 심리를 쫓기도 한다. 관점이 분명하고 수 많은 하위문화들의 복잡한 계보들을 잘 풀어내고 있어 읽다 보면 당대 영국 하위문화에 대한 뚜렷한 상을 가질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는 과연 명저라고 불릴 수 있겠다 싶다. 6-70년대의 영국 하위문화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하거나, 당시의 문화 현상이 좌파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이고자 하였는지 알고 싶다면, (그리고 발번역을 참을 인내가 있다면) 읽어 볼 만 하다.

그러나 시대상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를 읽어내는 방식을 배우는 데는 이 책은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유는 두 가지로, 우선 분석의 틀이 되는 이론이 바르트와 알튀세르라 계급문제를 분석의 기본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과 오늘날 비주류문화의 위상이 70년대와는 완연히 달라 비주류문화를 주류 문화와 저항과 포섭의 갈등 관계를 갖는 하위문화로 그려내는 것이 많이 어렵다는 점이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하위문화의 출현이 청년의 세대문화라는 일반적인 현상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되고 특수한 역사적 국면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문화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계급운동과 계급문화가 쇠퇴하던 시대에 탄생한 이론도, 그 이론을 통해 분석된 그 시대의 사회현상인 하위문화도 그다지 유용하지는 않은 것이다. 게다가 노동계급 문화와 운동이라는 것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 및 동아시아 사회에 이 책의 접근 방법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하위문화를 에스니시티와 계급성과의 관련하에서 기술하고 있는 한 이 책은 오늘날 세계의 다양한 비주류문화들을 분석하는데, 더 중요하게는 한국의 문화들을 분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최신 문화연구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지, 아직도 문화연구가 예전의 활기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나 이 책의 내용은 최신의 연구 성과에 의해 정리되고 극복된 형태로 소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난 꽤 즐겁게 이 책을 읽었다.  

촌스런 폰트와 촌스런 표지, 그리고 촌스런 내용과 번역(!)까지도 모두 한국에서 운동권 문화와는 구분되는 청년문화라는 것이 태동하던, 또는 운동권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며 청년문화를 태동시키려 하던 시기의 서툴기에 뜨거웠던 열정을 그려 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90년대를 브라운관 앞에 앉은 꼬맹이로 보냈으므로 이건 회고가 아니라 환상일 뿐이고, 당시의 기획들이 별다른 성과를 남기지 못한 오늘날 냉정하게 평가를 하자면 당시의 서투름, 무엇보다 학적인 게으름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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