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인간 - 인생을 단단하게 살아내는 25가지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강민지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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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고 보니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책을 만나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필연이었나보다.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사랑하는 스페인의 17세기(1601년생) 철학자의 책이라는 소개 정도로도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데

되짚어 보니 올해 여동생의 생일선물로 내가 구입해서 보내 준 책 역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아주 세속적인 지혜> 였다.

첫 만남은 내가 미처 어떤 인물이었는지도 모른 채 무심코 나를 스쳐 갔지만

결국은 이렇게 내 손안에 발타자르 그라시인의 교양 철학책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나보다.

뭔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던 것처럼 나혼자 의미부여하면서

신비로움을 지닌 채 책을 펼쳐보았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25세에 사제 서품을 받고 이미 28세부터 인문학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3년 간의 수도원 수련기를 마치고

'인간의 근본' 에 관한 삶의 지혜를 설파해온 철학자이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에게 영향을 준 인물인 만큼

고난과 시련이 불가피한 우리의 삶에서

의연하고 단단하게 살아낼 수 있는 인간 덕목 25가지를

<완전한 인간> 이라는 주제 아래 소개하고 있다.

낯선 책과 친해지고자 접근할 때 나의 습관들 중 하나는

제목을 두고두고 읽어보며 저자의 의도를 여러 방면으로 짐작해 보는 것이다.

물론 저자가 모든 책에 자신의 의도나 메시지를 심어놓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 나름 진지하고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며 읽었는데

막상 저자에게 확인해보면 '별 생각없이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맞아떨어졌다~'

뭐 이런 경우가 적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었기에.

그간 국내 작가들과의 북토크 경험상 그랬다.^^

그런데 이런 번역본은 저자의 의도를 짐작해 보기에 앞서 원제부터 체크하고 본다.

"El Discreto"

스페인어 "El Discreto"'신중한', "입이 무거운, '빈틈없는' 이라는 뜻을 지닌다.

책 제목에서부터 다소 의역의 향기가 묻어나는 <완전한 인간> 같은 번역본은 그래서

그 원제를 확인하고 나서 읽어 보니

'완전한' 이라는 의미를 선뜻 떠올렸을 때의

'complete', 'perfect', 'flawless' 와는 결이 좀 다르게 수용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이 교양 철학책을 열고 닫을 때 하나의 문장을 내세웠다.

"어디서든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각자 자신만의 기질과 기량을 갖고 태어나며

자신만의 능력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다면

이 세상의 고난들에 쉽게 좌절하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을 갉아 먹는 것은 변덕이라 칭했고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한 번에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박수를 받는데 급급한 허풍쟁이를 또한 경계하였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안다는 것은

사려깊은 단어를 사용하고 절제할 줄 알며 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완전한 인간을 신중한 인간이라고 그 의미를 전환시켜 볼 때

개인적으로 신중한 인간과 맥을 같이 하는 지혜로운 자는

저자가 소개하는 25가지 인간 덕목 중에서 '끝을 생각하는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유한한 인간의 본성을 더 어리석게 만드는 치명적인 요소를 욕망이라고 볼 때

인간은 스스로 최고치라 생각하는 그 순간이 영원할 거라 착각하며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고 질주한다.

그 행동이 추후에 자신에게 독이 되어 오는 것도 모른 채.

인간의 바램이 현실로써 영원할거라고 믿는 이 어리석음과

인간끼리 서로를 해치는 역사가 반복되는 한

인간의 타락은 불가피한 걸까 씁쓸하게 자문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제안하는 인생의 지혜를 찬찬히 짚어나가다 보면

그러한 인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위대함, 숭고함, 그리고 탁월한 면면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는다.

그렇기에 인간을 향한 기대와 희망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완전한 인간은 자신의 판단력이 옳고 자신의 취향이 성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항상 주의깊게 말하며 천천히 행동합니다.

위대한 사람은 진실과 보여지는 것을 구분합니다.

훌륭한 사람은 위선적인 것들도 모두 꿰뚫고, 눈치채고, 깨닫고, 이해하며,

자신만의 기준으로 상황을 정의합니다.

위대한 인간은 함부로 감탄하거나 함부로 깔보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평가를 이야기할 뿐입니다.

<완전한 인간> 중에서



인상깊게 여긴 덕목들 몇 가지를 풀어놓긴 했지만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말하는 '신중한 인간' 이 되는 인생의 지혜 25가지는

결국 하나로 수렴되는 듯 하다.

카이사르도 진실은 완전함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인생을 단단하게 살아내기 위해 나아가는 완전한 인간은 곧 진실한 인간이라고.

이 교양 철학책에서 소개하는 그 25가지 덕목을 다 갖춘 사람을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리도 만무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이 덕목들을 다 갖췄다고 해서 완전한 인간이 될 수도 없다.

그런 사람은 단언컨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본 위대한 인간이란

동시에 이 모든 덕목을 발휘할 수 있지도 않으며

여러 완벽함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다고 그는 '정의'한다.

탁월한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제안하는 25가지 지혜 중에서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덕목 하나 정해서 노력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운좋게 25가지 인간의 덕목 중에

내 안에서도 하나쯤은 발견할 수도 있고.^^

더불어 '나'라는 우주가 변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

변화하고 진화하는 것은 하나의 방향도 아니고 그 방향이 정해져 있지도 않는 것.

(요즘 다윈주의에 빠져있는 관계로...^^;)

그저 성장하든 퇴보하든 항상 변화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이 되는 나아감을 추구함으로써 성숙해지는 일.

이것으로부터 완전한 인간의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성숙한 인간과 진실한 인간의 상이 내 안에서 겹쳐지는 듯 하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완전한 인간> 은 이렇게 내 안에 이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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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상인가 - 평균에 대한 집착이 낳은 오류와 차별들
사라 채니 지음, 이혜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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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각 집단마다 추구하는 이익과 가치관이 있다.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이 자동 승격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대한 사회를 상대로 한낱 개인이 저항해야 하는 순간에

공동체의 연대를 발휘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의 본질 중에 본질인 존엄함은 계급이나 인종, 성별과 관계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간 인간의 역사에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인 범주에 의해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측정하고 표준화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정상인지 아닌지 정의할 수 있는가!

'적절하다, 평균이다, 정상이다, 표준이다' 라는 개념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왔으며 누가 설계했는가?

자신의 성장과정 속에서 정상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을 가져왔던 사라 채니가 <나는 정상인가> 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의학과 감정의 역사에 관한 연구를 통해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정상인지 아닌지 걱정하고

내가 정상인의 범주에 속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다.

도대체 정상이라는 관념이 뭐길래???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태초에 정해져 내려오는 것도 아닌

'정상성' 개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사라 채니는 정상성이란 기준은 통계학의 급속한 발전을 계기로

다양한 학문들이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과학적 관행 속에서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 역사는 겨우 200년 밖에 되지 않음에도

오늘날 우리의 법률, 사회구조, 건강과 정상성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즉, 정상성 관념은 자연 법칙이 아니라 지난 수 세기 동안

인간 세상에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설계된 것이며

서구의 기준에서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개인의 방식에 반한다면

모든 공동체를 서슴없이 타자화한다고 경고한다.

표준, 평균, 기준, 정상의 개념이 생겨나게 된 배경부터

인간의 몸과 마음, 성생활, 감정, 자녀, 사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에 교묘히 파고든 정상성의 민낯을 파헤친다.

저자가 개인적으로 겪었던 인생 경험들 속에서

평균에 집착해온 인간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비단 저자에게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 속했을 때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평균과 달라 보이고 싶은 욕망 또한 내재되어 있다.

또는 평균이나 기준에 속하지 않으면 마치 내가 비정상인 것 같아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해 보이는 쪽에 줄을 서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자기중심적인 못된 심리가 작용하면

다른 집단들을 주변화하는 경향까지 보인다.

인간의 지난 역사 중에서 미국 연방정부가 기숙학교 제도를 도입해 부족 문화를 뿌리 뽑아

원주민을 적응시키고 동화시키는 정책을 펼쳤던 것만 봐도 그러하다.

미의 보편적 기준은 이것이다~ 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런 기준을 정하라고 어느 누가 자격을 부여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당연히 정상에 대한 보편적 기준도 있을 수가 없다.

결국 인간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 지배하고 지배되는 형국에서

결정권은 바로 서구의 남성 연구자들이 부유한 서구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삼았고

모든 기준이 이를 바탕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들춰 냈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적 사다리 맨 꼭대기에 자신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믿었고 그 시스템을 강화시켜온 과정들이

평균에 대한 집착을 낳았고 연쇄반응이 일어나 약자를 차별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계급, 인종, 젠더, 종교적 신념이라는 기준과 함께 작동해온 정상성은

1801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에 의해 궤도의 평균치를 산출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정상성 개념이 대두되었던 초창기에 '평균' 이라는 의미는

현대인들의 인식과 다르게 '완벽' 을 의미했었다.

상식적으로 평균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표준이 필요하다.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평균을 추구하기에 몰두했고

그 기준은 단연 부유한 서구의 백인 남성 엘리트를 기초로 과학적 표준을 만들어 왔다.

저자의 표현을 정확히 빌리자면 그 표준은 바로...

 

 

 

백인 남성이자 건강​한 신체를 지닌 중간계급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이성애자인 것이다.

 

 

 

이러한 기준은 질병에 있어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1990년까지는 약물 실험 대상이 남성인 경우가 흔했다.

질병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피부색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을 간과하였다.

호르몬 수치 변동이 적은 남성이 비용도 적게 들고 여러모로 편한 실험 대상이기 때문에

의약품과 치료법들을 남성에 맞추다 보니

여성들에게는 늘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모집단 설정을 잘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렇게 표준을 정하고 보니 이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부적합자가 되는 것이고

부적합자는 바로 노동계급이나 유색인 등 자신과는 다른 집단으로 규정하며

곧바로 배제하는 수순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표준화 과정이 결코 소수의 일탈적 주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서구 과학계와 의학계에서는

우생학이 이미 주류를 형성하던 시기였고

세계 곳곳에서 타자라 여겨진 이들을 파괴했던 교묘하고도 섬뜩한 역사가 있다.

우생학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늘 호기심이 있었기에

관련된 내용들을 읽는 동안에 나의 집중력은 탑이었다는 것.^^

찰스 다윈과 띠동갑 정도 차이 나는 사촌 동생 프랜시스 골턴이

아이러니하게도 '우생학' 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는 건 워낙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자신이나 그의 부유한 친구들 같은 적합자에게는 더 많은 자녀를 낳도록 독려하고,

반대로 부적합자에게는 자녀를 덜 낳게 하거나 심지어 상황에 따라서는

특정인에게 아예 출산을 금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국가 자원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는 명분으로 우생학을 공고히 했던 과학자였다.

더 놀라운 것은 우생학을 지지했던 명단에 헬렌 켈러와

카네기, 록펠러 등 자산가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노동자들이 인종 과학에 있어서 적합자이길 바라는 그 마음은

뭐 이해하기 어렵진 않지만 절대로 공감할 수는 없는 일!

골턴이 살았던 시대에는 과학이 정상화의 핵심수단으로 작용했고

당시 위계적이고 규범적인 관념이 백인이자 남성을 정상이라고 규정한 것이

오늘날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우생학적 선동에 영감을 받았던 또 다른 인물은 바로 나치의 히틀러.

그래서 그가 통치할 당시 독일 식민지 전역에서 서로 다른 인종의 결혼을 금지시키기도 했었다.

이는 반유대주의를 강화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기도 했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정상이라고 판정하고 그 존엄함을 멋대로 제한하는 이 어이없는 오류를 보면서

우생학이 부여한 정상성 개념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얼마나 위험한 권력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생학 연구의 가장 악의적인 대목은 적합자의 범주로

백인 남성이자 엘리트로 정한 후에 인간이 만든 이상에 맞추기 위해

인류를 고의적으로 변형시킬 수도 있다는 섬뜩함에 있다.

이것이 현재의 인종차별주의, 장애인 차별주의, 호모포비아, 트랜스포비아로

흘러들어와 세상의 차별들을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이다.

우생학에서 만든 인간의 이상을 현재로 가져와보면 대략 이런 것이 아닐까.

'정상체중' 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저 평범한 것보다는

어떤 이상적인 것을 떠올리는 게 더 쉬워지는 메커니즘에 이미 길들여져 버렸다.

자본주의 원리가 팽배해지면서 정상 여부나 기준을 판단하는 중심에는

개인의 안녕이나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성과로 귀결된다.

어느 것 하나 인간 중심적이거나 인간친화적인 것이 없다.

이럴 거면서 왜 인간은 그리도 표준이나 평균을 정하려고 하는 것인가.

 

 

이미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정신과 의사들은

정상성이 사회적 관습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 경계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전문가의 횡포를 가동하여

관습을 따르라고만 권고했을 뿐이다.

당시 취약계층이나 미혼여성, 흑인, 노인, 성소수자 등등 사회의 주변인들은

저항할 힘조차 없기 때문에 가장자리에서 근근히 살아가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에게 '정상' 을 부여한 이들은 '비정상' 들에게

폭력을 일삼고, 차별하며 그들끼리 혐오하게 만든 역사가 씁쓸하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들을 돌아보게 해준 <나는 정상인가> 덕분에

사회의 불평등이 유래한 또 다른 갈래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평균'이 정상이라는 것은 오해일 뿐임을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인류에게 주어진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동력이 절실해지는 시점이다.

차별을 정당화하는데 정상성을 사용했던 집단의 교묘한 술수를

이제라도 직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그들의 술수가 교묘하다는 건 달리 말하면 정상성이 허구적인 관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근대 서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허구적인 신념체계였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인간 문명에 침투해 있으니

왜곡된 기대치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문제의식부터 심고 보자.

기어코 평균에 속하려는 나를 진단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정상인가..."

이 질문이 과연 물어볼만한 가치는 있는 것인지 반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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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덕질 - 일상을 틈틈이 행복하게 하는 나만의 취향
이윤리 외 지음 / 북폴리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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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에서는 수상작품집을 출간함으로써 해당 출판사의 브랜드 마케팅과 더불어

신진작가들을 발굴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활동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는 추세이다.

미래엔도 이 흐름에 발맞춰 '전국 덕질 자랑' 을 주제로 하여

작년부터 "미래엔 단편 에세이 공모전" 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단편 에세이들을 선보이고 있다.

올해 제2회 수상작품집은 그래서 <오늘의 덕질> 되시겠다.

https://blog.naver.com/hyuna5071/222782581256

 

작년에 출간된 제1회 수상작품집은 바로 <이웃덕후 1호> 였다.

덕후의 삶은 참으로 스펙트럼이 넓다.^^

 

자랑하고 싶은 나만의 취향 중에서 2023년에 꼽힌 주제와 분야는

SF, 책, 여성 아이돌, 발레, 식충식물, 로맨스판타지, 인형까지

모두 일곱 덕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일상과 취향에 진심인 이들이 용기 내어 자랑하는 것을

이제는 수용하고 나아가 응원도 해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쪽 구석에서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폄하하는 경우도 없진 않다.

그럼에도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진실로 덕후를 권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하게 되어 있다.

지금의 나를 기분좋게 만드는 것에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내가 상상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저 나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할 뿐이지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의 덕후다."

덕질은 생산성이 없으니 당연히 의미없는 활동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에게

이 일곱 덕후는 비로소 덕질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더 사랑하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제가 다양해서 독자마다 이해와 공감의 폭과 깊이가 각각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독서모임 하기에 즐겁고 흥미로운 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독서모임의 쓸모를 높이 보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에서 수많은 전환점들을 만났고,

또 때로는 미처 알아보지 못해 조용히 통과했을수도 있다.

덕후를 권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공감이 없더라도 묵묵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역시 1회보다는 2회가 나은가보다.

이번에 나온 제2회 미래엔 단편 에세이 수상작품집 <오늘의 덕질>은

재밌어서 2독을 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여성 아이돌, 발레, 식충식물, 로맨스판타지, 인형을 향한 덕질은

나의 취향과 겹치는 지점은 없었지만

저들의 세계는 또 저런 기쁨이 있구나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글의 맛이 있는 에세이들이다.

이동하면서 가볍게 한 꼭지씩 읽기에도 좋은 구성이다.

어쩌다 보니 이번 수상작품집의 순위와 나의 취향이 딱 겹친다.

"'덕후' 라는 종족은 꼭 스스로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내가 경험한 즐거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라고 식충식물 덕후가 말하기도 했는데 나에게 무언가의 덕후라고 붙일만한

후보들을 꼽자면 책, 여행, 등산, 조깅, 소설... 정도.

이렇다 보니 나 역시도 SF와 책 덕후의 이야기에 마음이 향할 수밖에 없다.

​책 덕후가 사랑하는 장소에 도서관이 빠질리가 없다.

그 곳에서 만났는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라는 노랫말이 떠오를 이야기들로

피식 웃음도 나고 괜히 나 혼자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욕망의 정수가 도서관에 다 모여 있다니...ㅋㅋㅋ

역시 도서관에는 세상의 모든 지혜가 있다.

 

 


 

 

SF 덕후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옥타비아 버틀러를 자기 소개에 언급하며

이러한 이야기들에 빚지며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

정작 에세이 속에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가 등장한다.

쥘 베른의 <달나라 탐험>으로 고전적인 SF소설도 만나긴 했지만

현재까지 내가 만나본 SF 중에서 원픽으로 꼽는 작품이 바로 테드 창의 이 소설집이다!

https://blog.naver.com/hyuna5071/222857154612


8개의 단편 중에서 표제작과도 같은 "네 인생의 이야기" 는

영화 <컨택트> 로도 만나볼 수 있는데 영화나 원작이나 제각각 다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미 미래의 결과를 알고 그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인 외계인 헵타포드가

어느 날 지구를 방문했고 지성을 가진 인간 집단들은 그들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고자 한다.

언어학자 루이즈가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점차 자신도 헵타포드와 같이 사고하게 되고 고유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미래에 자신의 딸이 젊은 나이에 죽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결정을 하는 언어학자 루이즈.

루이즈의 결정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알면서도 불행한 미래를 감당할 사람이 있을까"

"불행한 미래를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제외하고 운명만이 남는다면 인간이 살아갈 의미가 있을까"

작가 자신의 인생 경험과 SF 작품들을 연결지어 소개하면서

SF 덕후가 된 자신의 선택에 그럴만한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설파한다.

SF 덕후 뿐만이 아니다.

그 대상이 다를 뿐, <오늘의 덕질> 에세이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세상을 보여준 그 대상을 향해 온전히 애정을 보낸다.

그로부터 받은 것이 감사하고 자신을 좀 더 성숙하게 해주기에

나 혼자 좋아하는 걸로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깨달음이 독자들에게도 기분좋게 전염되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진다.

각자가 꾸려가고 있는 인생의 행간에 귀를 기울이는 친절함을 발휘하는 건 어떨지.

 

누군가에겐 하찮은 것이겠지만

바로 그것이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가 된다.

일곱 덕후가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낸 이 에세이 책 공간에서

얼마나 재밌어 했고 마음의 치유를 받았을지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작지만 소소한 행복, 나에게 소확행이란 내 일상의 기억들을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

지금 이 순간, 이 기록의 행위에 있다.

내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유와 겹치기도 하니

이제는 덕후 대열에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기록하는 행위에 몰입할 때의 순수한 기쁨이 있으니 '기록 덕후' 도 추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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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불안하다면 - 불안감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 지음, 양소하 옮김 / 와이즈베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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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과 불안감에 대해 연구해온 신경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저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며 살아가는 감정인 불안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떤 태도로 대처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심리학책 <불안이 불안하다면> 에서 불안은 결코 질병이 아니며

과거 그렇게 접근했던 인류의 역사에 오류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경험과 과학적 연구 결과를 버무려서 "불안의 쓸모" 를 역설함으로써

불안감을 추진력으로 바꾸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을

3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하여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 삶의 불청객이라 생각하기 쉬운 불안이 사실은

인간에게 친구가 되자고 속삭이는 것이라며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를 소환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친구보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중요한 말을 해 주는 친구가 진짜 좋은 친구이듯이

그간 도망가고 싶게 만들었던 불안이라는 감정이

사실은 인간에게 제법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불안, 걱정, 우울, 초조함은 그저 불완전한 감정일 뿐이며

누군가에게 태도로 강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불안을 공포나 질병의 관점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특징을 밝혀줄 하나의 감정으로 접근하여

기존의 오해를 깨부수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불안의 정의, 불안이 존재하는 이유,

중세 암흑기의 현대 의학에서부터 시작된 질병으로서의 불안의 역사,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해 올바른 방법으로 불안해하는 법 등을 만나게 될 것이다.

불안은 우리 신경계를 활성화해 긴장감을 높이고

심박수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생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를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게 만든다.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로 '목을 조르다',

'고통스럽게 조이다', '불편하다' 를 뜻하는 말에서 파생된

이단어는 불쾌함과 더불어 두려움으로 마비된 몸과

우유부단함에 사로잡힌 마음,

다시 말해 신체적 및 정신적 질식의 결합을 뜻한다.

<불안이 불안하다면> P.20

불안함을 느끼게 되면 인간의 시야는 숲 대신 나무를 보는 수준에 머무르게 되고

부정적인 가능성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인간을 바짝 긴장하게 하는 경계심이 작동하게 되면서

불확실성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이는 불안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불안에 대처해왔던 우리의 자세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불안이 보낸 경고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무시하고 덮어버림으로써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니까.

하지만 외면하는 것은 결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보이지 않으면 해결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일 뿐.

본인이 느끼는 현재의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자신의 감정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 때부터 불안은 본격적으로 우리에게 쓸모를 경험하게 해줄 것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과 지혜를 발견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올바르게 불안해하는 법의 시작이다.

불안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불안을 내가 쥐락펴락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불안이라는 감정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불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민하게 되고

내가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서 실험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안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과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의 경험론과 과학적 관찰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있을 때

화학적 약물을 통해 고통을 가라앉히는 것이 산업이 되었고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불안이 질병인 것처럼 여겨져

빠른 시간내에 고통을 잠재우는 것의 효용성을 찬양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지금도 전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여전히 약물의 힘에 의존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목격하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면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인간의 조건을 거역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본의 아니게 인류는 지혜를 얻었던 경험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바로 그것이다.

남녀노소, 빈자와 부자 상관없이 인류는 안전과 생명에 대한 최고 수준의 불안을 경험했다.

전염에 의한 예측 불가능성은 인간을 조급하고 이기적이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식, 시민의식을 결집시키며 존엄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인생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그 때의 불안이 오히려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주의력과 추진력을 끌어모으게 했다.

주변의 상황과 환경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서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계획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위기의 순간에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하게 했고

함께 하는 것의 힘을 일깨워 주었다.

전염병의 대유행이 위기였음은 자명했으나

생존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취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폐기하지 않았고 창의성으로 연결시켜

삶의 진보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본다.

물론 인류 앞에 예고없이 찾아온 뉴노멀 시대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인간의 삶을 무조건 행복하게 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늘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만이 인간을 만족시키는 삶 또한 아닐 것이다.

변화가 없는 삶은 인간에게 곧 존재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보기 때문에.

전 인류가 경험했던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으로 하여금 불안을 마주하게 했고

적응할 수 있게 했으며 나에게 이로운 환경으로 만들게 하는 힘을 심어주었다.

심리학책 <불안이 불안하다면> 을 읽으면서

불안이라는 감정이 인류에게 지혜와 통찰력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서 나는 불안의 쓸모를 이렇게 찾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어디 가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불안과 친해지는 3가지 원칙' 방출~~!!!

1. 불안은 미래에 관한 정보다. 불안에 귀를 기울여라.

2. 불안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그냥 내버려두어라.

3. 만약 불안이 유용하다면

그 불안으로 목적성 있는 무언가를 하라.

<불안이 불안하다면> P.216

 

 

이 책에서 저자 트레이시 데니스 티와리는

불안을 '극복' 하는 게 목표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두고 있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한 뒤에

삶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하면 될 것이다.

앞으로는 "불안" 이라는 감정에 허우적대며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매몰되기 보다는

영감과 에너지를 얻는 기회로써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처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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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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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베리에서 믿고 보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이 개정판으로 나왔다.

초판은 1996년에 <민주주의의 불만>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고

거의 4반세기 만에 전체 분량의 1/4을 새로 써서 나온 개정판의 제목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는 한국 사회에 그야말로 '정의' 열풍을 몰고 왔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에서는 시장지상주의를 비판했으며,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능력주의가 마치

절대선인양 사회 질서를 교란시켰다고 본 그의 문제의식이

이번에는 "민주주의" 로 향한다.

감수로 참여한 숭실대 철학과 김선욱 교수

마이클 샌델의 국내 번역서 대부분의 번역과 감수를 맡고 있을 정도로

인지도만큼은 확실하다.

이번 책의 해제 역시 문장이 명료하고 깔끔한 정리 굿~~!

 

마이클 샌델의 글은 전후 논리가 촘촘하면서도 친절해서 자동으로 집중 모드가 된다.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목차를 통해 보이는 키워드들이 이번에 마이클 샌델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들이 맞다!

정치경제학, 시민적 덕목, 임금노동, 자유노동, 자유주의, 케인스혁명, 절차적 공화주의....

현재 우리 모두가 느끼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떤 시대적 흐름에 의해서

변화해 왔는지 민주주의의 서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불만에 대한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도.

아하~~

표제관련정보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였구나.^^

민주주의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과 달리

언제부턴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기 시작하더니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불편함과 온갖 해악들은

오롯이 제도를 만든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격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이후 3년 만에 마이클 샌델이 꺼낸 불편한 화두는

"불만을 너머 파탄이 난 민주주의" 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지만

현실도 정말 그럴까?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시원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 독일의 통일을 보았던 시기까지

우리는 냉전시대를 지켜봤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공산주의가 붕괴되며

미국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살아남아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간에게 이로운 민주주의로 진화한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현재로선 불행히도 그래 보이진 않는다.

공동선을 향해 바로잡아야 하는 길이 아득히 멀어 보이기만 하다.

미국 건국 초기 도덕적 덕목과 자치의 역량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여

국가가 부패한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공화주의와 다르게

인간의 욕망대로 자유롭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유지상주의가 점점 팽배해지면서 시민적 덕목은 고사하고

사회적 결속력마저 붕괴되어 가는 현실 속에 무기력하게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까지 활개를 치며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실험중이다.

미 공화국 초기의 정치인들에게서 마치 사상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국의 강제적인 과세법에 저항하며 독립을 이뤄냄으로써

유럽발 부패를 끊어내고 공화주의적 이상을 신대륙에

제대로 뿌리내리려는 열망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공화주의는 시민적 덕목과 소박함을 갖춘 시민으로 국가를 구성하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민주적 시민의 권리보다 소비자 마인드가 부상하게 되고

시장에 대한 믿음과 금융의 역할이 커지면서

경제 논쟁에서 시민적 노선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문제는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자유지상주의의 파급력은 한국에서도 역시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인가에 대한 의심이 있다면 이 책이 적절하다.

정치경제를 주무르는 엘리트들은 사익을 추구하며

죄책감없이 시민들에게 금융 자본주의적 폭력을 행사하지만

부채로 허우적대는 소시민들은 온갖 폐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시장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만 죽어나고

설상가상 공동체의 도덕적 결속력마저 느슨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

미 공화국 초기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발전을 꿈꿨지만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인지 묻고 싶어진다.

인간이 만든 제도지만 일부에게만 이로울 뿐,

평범한 시민들은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수단으로 삼으며

비인간적인 산업과 상업의 방대한 구조 속에서 교묘하게 존재 가치를 착취하고 있다.

건국 초기 공화주의자들의 주도 하에 형성해 갔던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 목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

자발주의적 자유관이 지배하는 세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미국적 이상, 공화주의적 이상은 점점 소멸되어 가고

번영과 성장에만 몰두하면서 이제는 인간의 욕망이 민주적 지배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좋음(the good) 과 옳음(the right), 무엇이 선일까?

사생활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호해주는 자유주의.

개인만 있고 공동선, 공적인 삶은 황폐해져 가는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과연 건강해 보이는지,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민의 바람직한 덕목을 형성하게 한다는 것도 특정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라 보았던 존 롤스는 정면으로 공화주의적 발상을 거부한다.

그는 옳음이 좋음보다 우선하며 개인권이 공적인 삶보다 중요하다는

자발주의적 자유관의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들이

인간과 삶에 깨달음을 준다는 믿음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장 논리의 효율성이 모든 사회 문제를 덮어버리고 번영을 제공할 거라는

자본주의, 자유 지상주의의 교묘한 술수에 맞서

"시민적 공화주의" 라는 공공철학으로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가 민주적 통제에 순응하지 않음으로 해서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동선을 포기하지 않는 자유적 공동체주의자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시민이 시민으로 적절한 자치를 행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미국 국가 건설 당시부터 품었던 시민다움.

마이클 샌델은 현재의 민주주의를 위기라고 진단하며

미국 공화주의의 기초 정신을 끌어올려 다함께 공적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사실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편 무섭기도 하다.

시장의 지배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적 덕목을 갖춘 국민들이

자본의 힘에 대항할 수 있도록 모두가 바람직한 삶, 공동선을 만들어서

인간 친화적인 민주주의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돈이나 권력, 사치나 허영 같은 부패한 힘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경제권력을 지배할 수 있도록

인간적인 덕목, 공공의 정신이 이 사회에서 주류의 공공철학이 되길 희망한다.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자치의 역량, 시민성에 대한 인식, 공적인 삶의 회복.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민주주의를 다시 형성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공화주의, 공동체주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기까지

마이클 샌델식의 철학적 해석과 통찰이 담긴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이번에도 역시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설득력 충만한 인문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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