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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
마이클 샌델 지음, 이경식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23년 3월
평점 :

와이즈베리에서 믿고 보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이 개정판으로 나왔다.
초판은 1996년에 <민주주의의 불만>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고
거의 4반세기 만에 전체 분량의 1/4을 새로 써서 나온 개정판의 제목은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
<정의란 무엇인가> 에서는 한국 사회에 그야말로 '정의' 열풍을 몰고 왔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에서는 시장지상주의를 비판했으며,
<공정하다는 착각> 에서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능력주의가 마치
절대선인양 사회 질서를 교란시켰다고 본 그의 문제의식이
이번에는 "민주주의" 로 향한다.
감수로 참여한 숭실대 철학과 김선욱 교수는
마이클 샌델의 국내 번역서 대부분의 번역과 감수를 맡고 있을 정도로
인지도만큼은 확실하다.
이번 책의 해제 역시 문장이 명료하고 깔끔한 정리 굿~~!
마이클 샌델의 글은 전후 논리가 촘촘하면서도 친절해서 자동으로 집중 모드가 된다.
총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목차를 통해 보이는 키워드들이 이번에 마이클 샌델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들이 맞다!
정치경제학, 시민적 덕목, 임금노동, 자유노동, 자유주의, 케인스혁명, 절차적 공화주의....
현재 우리 모두가 느끼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어떤 시대적 흐름에 의해서
변화해 왔는지 민주주의의 서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불만에 대한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도.
아하~~
표제관련정보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였구나.^^
민주주의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들의 염원과 달리
언제부턴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존하기 시작하더니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불편함과 온갖 해악들은
오롯이 제도를 만든 인간이 짊어지고 있는 격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이후 3년 만에 마이클 샌델이 꺼낸 불편한 화두는
"불만을 너머 파탄이 난 민주주의" 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지만
현실도 정말 그럴까?
이 질문에 어느 누구도 시원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이 책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읽혀져야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90년 독일의 통일을 보았던 시기까지
우리는 냉전시대를 지켜봤고 냉전의 종식과 함께 공산주의가 붕괴되며
미국판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살아남아 민주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인간에게 이로운 민주주의로 진화한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현재로선 불행히도 그래 보이진 않는다.
공동선을 향해 바로잡아야 하는 길이 아득히 멀어 보이기만 하다.
미국 건국 초기 도덕적 덕목과 자치의 역량을 갖춘 시민을 양성하여
국가가 부패한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의 공화주의와 다르게
인간의 욕망대로 자유롭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자유지상주의가 점점 팽배해지면서 시민적 덕목은 고사하고
사회적 결속력마저 붕괴되어 가는 현실 속에 무기력하게 놓여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자본주의까지 활개를 치며 인간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든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아직도 실험중이다.
미 공화국 초기의 정치인들에게서 마치 사상가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국의 강제적인 과세법에 저항하며 독립을 이뤄냄으로써
유럽발 부패를 끊어내고 공화주의적 이상을 신대륙에
제대로 뿌리내리려는 열망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들이 바라는 공화주의는 시민적 덕목과 소박함을 갖춘 시민으로 국가를 구성하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민주적 시민의 권리보다 소비자 마인드가 부상하게 되고
시장에 대한 믿음과 금융의 역할이 커지면서
경제 논쟁에서 시민적 노선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지적한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문제는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 자유지상주의의 파급력은 한국에서도 역시 상당하기 때문에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인가에 대한 의심이 있다면 이 책이 적절하다.
정치경제를 주무르는 엘리트들은 사익을 추구하며
죄책감없이 시민들에게 금융 자본주의적 폭력을 행사하지만
부채로 허우적대는 소시민들은 온갖 폐해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시장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만 죽어나고
설상가상 공동체의 도덕적 결속력마저 느슨해지는 것이 우려스럽다.
미 공화국 초기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발전을 꿈꿨지만
구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방식은 너무나 달랐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현재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인지 묻고 싶어진다.
인간이 만든 제도지만 일부에게만 이로울 뿐,
평범한 시민들은 소비자로 전락시키고 수단으로 삼으며
비인간적인 산업과 상업의 방대한 구조 속에서 교묘하게 존재 가치를 착취하고 있다.
건국 초기 공화주의자들의 주도 하에 형성해 갔던 시민의식의 정치경제학은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이 자기 목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
자발주의적 자유관이 지배하는 세상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써 미국적 이상, 공화주의적 이상은 점점 소멸되어 가고
번영과 성장에만 몰두하면서 이제는 인간의 욕망이 민주적 지배를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좋음(the good) 과 옳음(the right), 무엇이 선일까?
사생활의 권리를 지나치게 보호해주는 자유주의.
개인만 있고 공동선, 공적인 삶은 황폐해져 가는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과연 건강해 보이는지,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시민의 바람직한 덕목을 형성하게 한다는 것도 특정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라 보았던 존 롤스는 정면으로 공화주의적 발상을 거부한다.
그는 옳음이 좋음보다 우선하며 개인권이 공적인 삶보다 중요하다는
자발주의적 자유관의 입장을 취한다.
여기에 마이클 샌델은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가지는 소중한 가치들이
인간과 삶에 깨달음을 준다는 믿음으로 대응하고 있다.
시장 논리의 효율성이 모든 사회 문제를 덮어버리고 번영을 제공할 거라는
자본주의, 자유 지상주의의 교묘한 술수에 맞서
"시민적 공화주의" 라는 공공철학으로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가 민주적 통제에 순응하지 않음으로 해서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공동선을 포기하지 않는 자유적 공동체주의자의 문제의식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 경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시민이 시민으로 적절한 자치를 행사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미국 국가 건설 당시부터 품었던 시민다움.
마이클 샌델은 현재의 민주주의를 위기라고 진단하며
미국 공화주의의 기초 정신을 끌어올려 다함께 공적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사실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이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 한편 무섭기도 하다.
시장의 지배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적 덕목을 갖춘 국민들이
자본의 힘에 대항할 수 있도록 모두가 바람직한 삶, 공동선을 만들어서
인간 친화적인 민주주의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돈이나 권력, 사치나 허영 같은 부패한 힘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경제권력을 지배할 수 있도록
인간적인 덕목, 공공의 정신이 이 사회에서 주류의 공공철학이 되길 희망한다.
현재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자치의 역량, 시민성에 대한 인식, 공적인 삶의 회복.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불편한 공존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민주주의를 다시 형성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공화주의, 공동체주의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기까지
마이클 샌델식의 철학적 해석과 통찰이 담긴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는
이번에도 역시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설득력 충만한 인문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