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 편 : 역사 / 경제 / 정치 / 사회 / 윤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1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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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사장 인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로서 두 번의 북토크를 통해 채사장 작가도 만나보고


사인도 받았던 지대넓얕 시리즈가 한빛비즈에서 웨일북으로 판권이 넘어가면서 개정판이 나왔어요.

한빛비즈 책에 사인을 받아둔터라 웨일북 버전까지 둘 다 소장해야 하는 의무가 ㅋㅋ


안그랬음 한빛비즈는 다른 분들에게 적극 권장의 의미로 나눔을 했을텐데


채사장 작가의 사인본은 넘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 책 제가 넘나 좋아하는거라!!


? 웨일북의 책 디자인 느낌을 알기에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지대넓얕 1권을 직접 만나보니


제가 보기에는 웨일북 디자인과 폰트가 깔끔해서 더 맘에 들어요.


이미 지대넓얕 시리즈는 제로가 가장 늦게 출간되었지만 


읽기로는 가장 먼저 만나게 되었고 지대넓얕 1권이 두 번째 만남입니다.


혹시 저처럼 지대넓얕 시리즈 정독을 시작하고자 하신다면 제로부터 시작해 보시길 추천드려요.


고대 이전의 시간부터 시간 개념, 우주라는 공간 개념을 포함해서 ?

 

일원론에서 현재의 이원론으로 이동하기까지의 과정을

 

지대넓얕 제로에서 제대로 만나볼 수 있거든요.


이런 어렵고 낯선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찾기, 아마도 어려울 것 같아요.

 

?개정판을 내는 소감에도 있듯이 지대넓얕 시리즈를 읽다 보면

 

채사장 작가가 틈틈히 말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질문을 던지죠.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윤리적 측면으로 볼 때 세상이 이러한데

 

 신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수동적으로 수용하기만 할 수도 있는 독서가 채사장 작가의 질문으로 인해


능동적인 독자로 거듭나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나는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의무론자인가, 목적론자인가...... ,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을만큼의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작가가 말하는 교양과 인문학이 정말 생깁니다.^^

 

개정판에 있는 그림들은 기존의 그것들보다 좀 더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있고


글자만 두고 해석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법한데 삽화가 어느 정도 이해를 도와주는 효과도 있어요.


개정판이라고 해서 가격이 오른 것도 아니고 폰트와 디자인은

 

더 세련되어져서 선물해도 좋은 지대넓얕 개정판.^^


이번에 지대넓얕 1권을 읽고 나서 제 세계관이 또 한층 넓어진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제로 만났을 때도 그랬는데 ㅎㅎㅎ


채사장 작가의 책이랑 저랑 잘 맞나봐요!


그래서 할 얘기가 엄청 많은지 두서 없이 주절주절 한 것 같은데


다같이 잘 모르는 사람이다 생각하고 쉬엄쉬엄 따라오세요.ㅋㅋ


그런데 듣고 보면 이런 내용도 있었어? 하고 읽고 싶어질걸요.


채사장 인문학 지대넓얕 시리즈는 나와 타인간에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교양, 또는 인문학이라고 부르는 인류의 공통분모를 다룹니다.

 

사람은 원래 주어진 환경과 개인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을 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경험, 누구나 공감가는 부분이죠.


이는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인데 관계유지에 있어서 

 

최소한의 지식으로도 재미있는 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전문적인 좁고 깊은 지식보다는 바로 넓고 얕은 지식,

 

인문학과 교양이라고 채사장 작가는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대넓얕 시리즈를 읽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나아가 나에 대한 이해까지


현실과 현실 너머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모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가는 과정이 될 거예요.


그리고 세번째로 나온 지대넓얕 시리즈의 완결판이자 시간적으로는 시작점이 되었던 제로에서는

 

세계의 경계 너머로 나아가는 초월의 과정을 만나게 될 것이구요.

 

 1권에서는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이렇게 5가지의 여정을 현실세계 라고 묶어서 다룹니다. ?


참고로 2권에서는 현실너머의 세계 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 를 다루게 되구요.

 

곧이어 읽게 될 2권도 기대됩니다.

 

지대넓얕 시리즈는 지식의 카탈로그 책은 결코 아니예요.


하나로 연결된 거대 골격을 제시하고 있고


가지치고 있는 개별 분야 중에는 피상적인 내용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움직이게 하는 핵심 개념들을 선별해서 하나의 분야를

 

단순화하고자 했던 채사장 작가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이번에 읽은 웨일북 개정판 지대넓얕 1권 참 재밌었어요.


또한 너무나 유익했습니다!!!


지대넓얕 1권을 읽고 재미있다 느낄 수 있는건 아마도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었기 때문인 것도 같은데요.

 

분명 평소에 어렵게 여겨졌던 용어인데 개념 설명을 듣고 나면 쉽게 느껴지거든요. 

 

역시 채사장 작가는 하고픈 이야기를 결말까지 끌고가는 

 

스토리텔링 능력이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습니다.

 

저처럼 앎의 욕구가 있는 독자들이라면 지대넓얕 시리즈를 읽고 나서

 

 분명히 독서의 가치를 더 찐하게 느끼실 것 같구요.


책 제목에 넓고 얕은 지식이라고는 하지만 채사장 작가가 건드려주는 이 지식들이


얕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독자가 어렵게 느끼지 않으면서 

 

필요한 지식들에 대해 깊이 조절을 잘 한것 같습니다. 


정치, 경제, 역사, 사회, 윤리라는 영역들을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피지배자로 세계를 양분해서 바라보고

 

이들의 계급갈등이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차근차근 짚어가는 여정 이 참으로 흥미롭지요.

 

보통 책을 읽다 보면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 있고

 

한장 한장 넘기는 일이 기대가 되는 책이 있는데

 

채사장 작가의 지대넓얕 시리즈는 바로 후자. ㅎㅎㅎ

뉴스에서 얘기하는 정치, 경제 관련 용어들과

 

제가 바라본 세상의 모습들이 매칭이 된다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지대넓얕 1권에서 무수히 많은 지식들이 넓고 얕게 퍼져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가 궁금했던 것들이나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흥미로웠던 것 위주로

 

정리하면서 저도 복습하고 또 공유하는 통로로 생각하며 책리뷰를 남겨볼까 합니다.

 

산업화→자본주의→제국주의 시대→제1차 세계대전→경제대공황→제

 

2차 세계대전→냉전시대→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의 역사 속에서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급변하는 흐름을

 

이 용어들로 표현하고 있어도 정작 의미와 순서 조차 희미하게 인지했을 뿐이었는데

 

이 책 덕분에 정말 큰 도움 받습니다.^^

 

막연했던 것이 선명해지는 이런 경험은 역시나 기분 좋은 일이예요.

 

교과서에서나 봤던 개념들이 수두룩한데 적절한 예를 들어주고 있고

 

게다가 그 예들마다 연결고리를 갖고 정치와 경제, 역사, 사회, 윤리를 넘나들다 보니

 

너무나 쉽고 이해가 쏙쏙이예요 ㅋㅋㅋ


중요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필사노트에 적은 것이 몇 페이지인지 셀 수도 없네요.^^


단언컨대 현재 돌아가는 세상의 정치와 경제, 역사, 사회, 윤리적 측면으로


다양한 현상들을 해독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성인들의 교과서? 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좀 더 확실히 이해하고 싶은 부분은 이독, 삼독도 좋아요.

 

? 지대넓얕 제로에서 다뤘던 것은 곧 이전의 시대부터 일원론의 시대라면,


지대넓얕 1권과 2권에서는 고대 이후 이원론의 시대를 다룹니다.


지대넓얕 1권 초반에 건드렸던 내용에 마르크스의 "하부 구조 결정론" 이 있었는데요.


경제인 하부구조가 바뀌면 상부구조인 역사, 정치, 사회, 윤리도 바뀐다는 기조가 책 전체를 관통합니다.


역사부터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역사가 사회를 변화시킨다기 보다


어떤 경제구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역사가 형성되어 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정말 경제가 이다지도 중요했던 거였더라구요.^^;;


역사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변화시킨다는 제 생각을 뒤집는 것이어서

 

한편 놀라우면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제가 알고 있던 지식의 단편들이


이 책을 빌어 역사발전 단계의 변화에도 유기적 관계가 있음을 연결지어 파악할 수 있었어요.


역사의 5단계인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 자본주의, 그리고 미완의 현대


순차적으로 설명해주면서 단계별 핵심 개념들이 등장합니다.


마르크스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적 모순이 오면서 다시 공산주의 사회가 올 거라고 예견했지만


냉전 시대 이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

 

지금까지 맹위를 떨치고 있지요.


생산수단으로 인해 왕과 노예라는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의 계급의 분리를 야기했고


좀 더 계급이 세분화되는 중세 봉건제 사회에는 천년 정도의 안정된 시간동안에


국왕, 성직자, 영주, 귀족, 기사, 농노, 노예 라는 계급 피라미드를 공고히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세 봉건시대의 징후로 보여준 내용 중에 유럽, 중국, 일본에 성이 있다는 것은


영주끼리의 충돌에서 자신의 장원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축조한 것이고


한반도와 비교해 볼 때 한반도는 지방분권이 아닌 국왕중심 국가였기 때문에 성이 없는 것이라고


지금 내가 사는 국가의 특징까지 연결지어 설명해 줘서 중세 봉건제가 훨씬 쉽게 각인이 되더라구요.


현재까지 유럽과 서양문화권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종교에 관심없는 저로서는


또한 좋은 공부가 되었고 이 천년의 굳건한 중세 봉건제 사회가 흔들렸던 이유로


지중해 중심 무역으로 상업이 발달하며 공장이 탄생하고 분업이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 계급의 출현이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이해가 연결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여러 계급으로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중세 봉건제 사회와 달리


본격적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계급

 

무산 계급이라고도 부르는 노동자 계급간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 시대가 두드러지게 되는 시작이기도 해요.


현대 사회의 갈등의 본질은 바로 이러한 계급갈등에 있는 것이었어요!!


?이것은 정치와 경제에 가서도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근대 초기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채사장 작가의 설명을 보면서


시대를 관통하는 넓고 얕은 지식이 이렇게 습득되고 있다는 것에 저 혼자 소름이기도....ㅋㅋㅋ

원시부터 근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으로 생산수단이 있다면,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움직이는 핵심 개념은 자본주의의 특성.


핵심 개념만 보더라도 이렇듯 역사를 움직여온 핵심은 경제였던 거예요.


개념 설명을 정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이 변화시키는 구조들이 보이기도 해요.^^

 
뉴스를 보다 보면 왜 저 나라 사람들은 저렇게 행동하고


 왜 저렇게 사회가 움직이며 국가가 저런 선택을 할까? 라는 막연한 의문들이 있었는데


채사장 인문학 지대넓얕 1권을 읽고 나니까 차례차례 이해가 되는 거예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가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생산수단이 있으면 생산물이 생기고


그것이 곧 권력이 되며 지배와 피지배 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요.


이어 계급간의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데


소름끼치는 것은 이 구조가 현대까지도 유효하다는 사실!!!


사회와 경제가 돌아가는 모습에 따라 국가별 역사가

 

저렇게 흘러갔던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구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적 특성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간성을 파고들어 지배하고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강력함을 확인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은


자본주의 시대를 현대인들이 힘겹게 헤쳐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당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

 

각자 어떤 집단을 옹호하고 있는건지도 보이더라구요.


더불어 나는 어떤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지 나에 대한 이해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모든 측면에서 경험하게 될 거예요!!


책이 전하는 가치는 책이 보여주는 세계와 나의 연결고리를 찾고

 

나를 알아가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내가 사는 이 세계를 이해함은 물론이고 나에 대한 이해로 연결될 때


채사장 인문학이 지향하는 의미와 가치는 빛을 발하게 된다고 믿어요.


아마도 채사장 작가 역시 넓고 얕은 지식을 공유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 지식과 독자간의 거리를 좁혀가는 이 지점을 기대하고 책을 썼으리라 생각됩니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 시장은 자유라는 슬로건 하에

 

 자유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능력이 있다고 말했던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한 이해를 할 수 있어서 정독했던 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주장 또한 이후 폐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할 것인지 정부의 시장 개입을 확대할 것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되어 버린 참으로 난해한 시기도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경제대공황,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과정에


경제가 미치는 영향이 얼마만큼이었고 어떤 이유가 작용했는지 알아가는 것이

 

 

최소한 제게는 최고의 읽을거리 중 하나였어요.

 

1784년 영국에서는 증기기관과 기계화로 인해 산업화를 통한 자본주의가 시작되었고

 

근대 유럽 국가들은 각자 공급과잉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개척가격인하 라는 두 가지 방법을 강구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바로 유럽의 식민지 확보를 위한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고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시장개척은 독일에게도 필요한 일이었던 거죠.

 

하지만 독일의 경우 봉건 체제가 오래 지속되고 내전도

 

오래 가면서 산업화를 추진할 힘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식민지 경쟁도 늦어져서 차지할 식민지가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결국 독일은 시장개척을 하는 방법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빵~ 터트리게 되는 이 흐름.


채사장 작가의 설명을 보다 보면 공급과잉이 결국 전쟁을 일으켰던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유를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계 청년에게 암살당한 사건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독일이 시장개척을 위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좋은 빌미가 되었던 거죠.

 

독일과 러시아의 대립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자신의 식민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러시아에 협력, 연합을 하게 되고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이탈리아와 동맹국이 되어

 

제1차 세계대전이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진행됩니다.

 

 경제가 역사를 이렇게 바꾸고 있고 여전히 진행형이예요.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1919년 베르사유 협약을 통해 

 

독일은 전쟁배상금, 10% 이상 영토를 연합국에 반납, 군대 보유 제한 등 책임을 지게 됩니다.

 

전쟁이 이렇게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데

 

이로 인해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것은 부르주아와 일부 국가들이었고 고통은 모두 민간인들의 몫이었죠.

 

이 지점이 참 슬픈 현실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을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의 논리, 더 나아가서는 결국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

 

?다음으로 이어지는 경제대공황은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쟁을 통해 쓰였던

 

시장 개척 외에 가격인하 였는데요.

 

가격 인하로 인한 경쟁은 실업자가 많아지고 공장도 문을 닫으면서 증시도 폭락,

 

결국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이어졌고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국 (정부가 도로, 항만, 철도, 댐 건설과 같은 공공사업을 추진하며 시장에 개입하는 루즈벨트의 뉴딜정책),

 

 러시아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공산주의로),

 

독일(제2차 세계대전 발발, 히틀러, 전체주의)의 선택을 비교해서 보여주니 더 선명하게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등장한 말이 미국의 수정자본주의 였고 나중에는

 

 

 

 

 

 

 

 

초기 자본주의와 비교하기 위해 후기 자본주의라는 명칭으로 바뀌기도 한다는 것.

 

어쨌거나 미국은 자본주의를 수정했고 러시아는 자본주의를 폐기했으며

 

독일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방안을 각자 선택했던 역사의 흐름을 봐도

 

결국은 경제가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던 모습.

 

?여기서 잠시 미국의 뉴딜정책이 어느 정도 성공을 했다고 보지만


이것을 그대로 한국에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분석하는 이유가 또 명확하더군요.


경제대공황 당시 미국의 산업구조는 제조업 중심이었지만


현재 한국은 서비스업 중심이기 때문에 노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나라들이 선택한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경제 위기를 벗어나고자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선택한 것은 바로 전체주의화.

 

이탈리아도 독일도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강력하고 배타적인 국가 중심으로 끌고 갔고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자연스럽게 히틀러가 등장하는 시기로 이어집니다.

 

?어떤 국가든지 위기의 순간에 영웅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나타난 히틀러에게 독일 국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내죠.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리더일지라도 검증을 해봐야 하는건데

 

전체 속에서만 개인이 비로소 의미를 갖는 전체주의자,

 

대중 선동과 정권의 이념을 시각화하는 데 탁월했던 히틀러라는 국민 영웅을

 

오히려 독일의 민중이 요구하고 리더로 만든 결과는 유대인 인종청소로 이어져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히틀러가 왜 콕 집어 유대인을 선택했나 했더니 서구 유럽사회의 문화가 되는 그리스도교의 초기

 

종교적 기반을 닦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죽였다는 이유가 있는데 이건 명분같아 보이구요.

 

독일 민족이 부흥하기 위해서 독일에 살면서 무역과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을 타켓으로 삼아

 

그들이 이 성스러운 땅을 오염시켰다고 하면서 죄악이 있는 민족으로 낙인찍고

 

600만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대학살하게 되었던 거예요.

 

책에 없는 또 다른 이유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암튼 이 사람은 어찌 보면

 

독일 국민들의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인해 날개를 달고 자신의 철학적 정당화를 고수해갔고

 

독일의 민족성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행위까지 서슴치 않았던 ...ㅠㅠ

 

 

 독일 대중의 비합리성이 이 모든 역사의 슬픔을 일으켰고

 

그에 따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독일 국민들은 지금도 통렬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독일의 젊은이들은 좀 온도차가 다르다고는 합니다만....

 

이 지점은 사실 일본의 젊은이들도 역사적 부채감에 있어서 독일이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전 세대에 비해서는 무겁게 느끼는 것 같지는 않지만

 

 국가의 리더와 사회적 리더들의 생각에서는 독일과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는 건 확실하죠.

 

여전히 감추고 있고 왜곡하고 있고 책임지지 않으려 하고 있어요.

 

이 지점에서 한국 국민들에게 일부 보수 성향이 나타나는 원인으로

 

역사적 경험이나 편향된 교육에서 대중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꼽았던 채사장 작가의 인식에

 

상당 부분 저도 동의합니다.

 

?급속도로 성장, 발전하면서 군부 독재 체제를 거쳐 역사, 인성교육이 잘 다듬어지지 않은 채

 

경쟁 구도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빠르게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와 다르면 해로운 타자로 몰아부치면서 심각한 양극화를 유도해왔고

 

나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 은폐, 호도해왔고

 

타자를 모함하며 책임 부재의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 정치 이념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지나온 역사를 보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을 되돌아 보는 내용들이 곳곳에 있어서

 

지대넓얕 1권을 읽으면서 수시로 깨닫게 되고 몰랐던 것이 보이는 경험을 하게 해줍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비교해 볼 때 모두가 필연적으로

 

평등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공산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그 속에서 다른 사람과 차이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인간도 있고

 

계급과 서열을 중시하는 인간도 있기 때문에

 

평등함을 추구하는 것이 선이라고 여겨질 수는 있지만 인간의 본성이 다양한지라

 

한 가지 방향으로만 수렴될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할 수가 있는데요.

 

이런 오류가 있을 때는 꼭 인간이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갈 수도 있다는 걸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무조건 낙관적으로만 볼 때 전제부터가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정치의 측면에서 볼 때 독재/엘리트주의와 반대되는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면


아무래도 독재와 비교되는 민주주의니까 무조건 선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 또한 위험한 생각임을 바로잡아 줍니다.

민주주의와 독재/엘리트주의 사이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의 수가 다르다는 것과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차이에 대해서도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가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을 때 근거로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어리석은 다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수의 독재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지혜를 사랑하는 덕이 있는 자에 의한 철인정치를 제시하는데요.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본 제자 플라톤은 중우정치가

 

얼마나 파행적이 될 수 있는지를 경험했던 사람이었죠.

 

여기서 또 한번 국민들이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한 무게를 절감하게 됩니다.

교양과 인문학을 말하는 넓고 얕은 지식의 정치 측면에서 역시

 빠질 수 없는 이분법적인 개념 두 가지는 바로 진보와 보수.

 누구나 보수와 진보 중 하나의 성향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고

이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며 개인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선택지가 되기도 합니다.

정치란 경제 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써

시장의 자유를 옹호한다면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고

정부의 개입을 확대하는 것에 찬성한다면 진보 성향.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의 자유가 확대되기를 원하는 부르주아 계급과 결을 같이 하는데요.

이들은 정부가 세금을 줄이고 규제도 완화해 주기를 바라는 보수 성향인 것입니다.


반대로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해서 그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진보 성향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세금을 올리면서 복지는 늘리고

 빈부격차를 완화시켜 사회갈등이 억제되길 바라죠.

어떤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여 대변하느냐와 세금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구분에 본질을 두는 것입니다.

군대나 종교는 사회가 안정되고 유지되길 바라는 집단이기 때문에

보수화 되는 경향이 짙은 공통분모를 갖게 되지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구분짓는 개념으로 안정과 변화추구 만을 얘기하는 건

너무 막연하고 주관적일 수 있다고 채사장 작가가 지적하는데요.

저도 사실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이해가 쉬웠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어느 쪽의 이익을 대변하느냐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지대넓얕 1권을 만나 확실히 배웁니다.

이 시점에서 제발 맹목적인 극우집단들은 모쪼록 깨우침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장의 자유는 높이고 세금과 규제는 낮추기만을 바람으로써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방식을 진정 옹호하는 것인지.

 

그저 타자가 맘에 안 드니까 반대편에 붙어서 근거 없는 비난만 퍼붓는

 정치이념적 선택은 제발 재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 분들에게 세상의 진실과 자신의 삶의 방식을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알려줄 사람이 분명 필요한데 그것을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해줘야 한다며 정치를 마무리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인 한국에서 시민은 주인으로서

 

선거를 통해 보수와 진보를 선택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모든 책임은 시민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시민의 자격은 아무에게나 부여되지 않아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좀 더 살만한 사회가 되는 것이니까요.

 

마르크스가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 중심의 세상에 대해서도 새로운 지식을 얻었습니다.


모든 노동자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라는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혁명)는


사실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강력한 자본주의를 보면서 우리 모두는 분명히 느끼고 있죠.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자는 이념입니다.


생산수단을 한 개인이 독점하면 권력도 독점하게 되고 타인을 지배하니 착취로 이어져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 불평등한 관계가 영원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죠.


사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 같지만 노동자 중심이 아니라 군 중심의 세습 독재체제,


 파시즘 체제라는 걸 이번 기회에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어요.


공산독재체제를 추구했던 나라들로는 소련, 중국, 북한이 있었지만


소련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1945년부터 소련이

 

개혁과 개방을 외치다가 해체된 1991년까지의


냉전시대를 미국과 팽팽하게 긴장된 균형을 맞추다가 결국 소련은 붕괴되어


냉전이 종식되면서 긴장이 완화하는 데탕트 시기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제는 북한과 중국만 남았지요.


한국의 격동의 현대사를 말할 때 등장하는 60년대부터 80년대는


자본주의가 포함되어 있지만 동시에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 사회이기도 했던 독재정권 이었어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공산주의와 독재체제를 혼동했던 오류들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습니다.


정말 여러모로 채사장 인문학 지대넓얕 1권 덕분에 지적 대화가 가능해진 것 같아요.^^

정반합으로 말하는 헤겔의 변증법은


세상에 정상적인 것(정)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그에 모순되는 것(반)이 발생하게 되고


두 가지를 모두 극복한 종합(합)이 새로 등장함으로써


정반합의 과정으로 끊임없이 반복,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배웁니다.


더불어 마르크스의 변증법으로 확대될 때 근대에 와서 새로운 정상적인 것으로


부르주아가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모순 관계를 갖는 프롤레타리아가 등장하고


최종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모든 계급 갈등을 청산할 마지막 계급으로 등장할 거라 예언했는데


그의 믿음은 실패로 돌아갔죠...;;


마르크스의 생각은 생산수단을 특정 계급이 소유하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공동으로 소유할 때 권력관계도 지배관계도 모두 사라지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채사장 작가는 꾸준히 표로 반복해서 정리해주면서


독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길로 이끌어줍니다.^^


게다가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의 쟁점이 되었던 것으로 FTA나 무상급식, 민영화를 예로 들면서


 이 쟁점에 대해서 어떤 집단이 환영을 하고 또는 반대할지

 

실제 사안을 통해 본질을 이해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테스트 하듯이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하고 읽어가다보니


채사장 선생님이 남겨둔 정답과 일치하더라구요.


문제 맞췄을 때 느낄 수 있는 그런 기쁨을 맛봤습니다....ㅋㅋㅋ


반복학습이 이루어지니까 훨씬 이해가 잘 되요 역시나.


정치 경제에 관한 어려운 개념들을 이해하다보니 어떤 유기적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이제는 그 관계가 슬슬 보인다고나 할까요.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지식의 내공이 깊은 분들에게는 아쉬울 소지도 있겠으나


저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가치있고 매력적인 책이 될거예요.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한국, 미국, 일본.


수정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국가별 세율을 봐도 각각 25%, 40%, 50-60% 로 세금에 의해


정권의 색채부터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시민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민이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가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복지 지출과 세금 부담이 높은 사회 민주주의 국가도 접해 봤습니다.


왜 저 나라들은 행복지수가 높은걸까 궁금했었는데


높은 세금을 내는 만큼 복지에 대한 지출도 높아서 국민들이 복지 혜택을 누림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연결고리가 보이게 되는 기분 좋은 앎의 경험이었습니다.^^

사회 영역에서는 개인과 사회,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이것이 극단화되면 나타나는 이기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넓고 얕은 지식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되었는데요.


개인의 권리와 전체의 이익이 충돌하는 순간이 때때로 나타날 텐데


그때 독자들에게 누구의 편을 들어주는 게 정당할지 채사장 작가님 또 질문을 던집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던졌던 질문과 유사한 사례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던져지죠.


A는 국가의 수도가 되는 도시이고, B는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시골마을입니다.


홍수가 났는데 댐을 폭파하면 B시골은 홍수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있을 테지만 

 

A라는 큰 도시를 구할 수 있고,


댐을 폭파하지 않으면 B시골은 안전하지만 A도시가 피해를 입으면서 더 많은 인명 피해가 생깁니다.


이럴 때 댐을 폭파할까요, 하면 안 될까요?


선택에 따라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이익, 어느 편을 드는지 나에 대한 이해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많건 적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저라면 무조건 A도시를 구하는 쪽을 선택하진 않을 건데요.


참 어려운 선택이긴 합니다.^^;;


힘들게 하는 이런 질문들이 때때로 나오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은 어떤 생각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게


의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책이 진정 좋은 책이라고 믿습니다!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누구나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개인과 대립되는 전체의 속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내가 소속된 집단이 위기에 처해 있고, 이를 해결해줄 인물이 등장하게 되면


개인은 이럴 경우 쉽게 동조하고 책임으로부터 개인은 자유로워지기 대문에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 전체주의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런 설명에 딱 들어맞는 예로 독일 국민 개개인과 히틀러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집단주의가 극단적으로 향할 때 전체주의화가 되면 개인을 구하는 방법으로


자연권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국가가 법과 공권력으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때 개인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막을 방법이 없는데 그럴 때 하늘이 부여해 준 권리, 자연권을 행사할 수 있는거죠.


물론 국가가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지가 없다면

 

법적 강제성은 없기에 현실적으로 유지되기 어렵습니다만....


흥미로운 예를 하나 들면서 역시 독자의 선택에 대해 질문을 던진 내용이 있었는데요.


부유층의 누진과세가 다수의 가난한 자들에 의한 전체주의적 폭력이라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의 이익을 항상 우선하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볼 때


A와 B가 치열하게 논쟁을 펼치는 대화를 들면서


다수가 소수 자본가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도 있음을 어필하기도 하거든요.


소수의 부유층에게도 똑같이 생명, 재산, 자유에 대한 보장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정당하게 일해서 부를 축적했건만 유독 높은 세금을 부과시키는 것이 과연 공평한 건가 주장하는 것.

 

노동자, 소비자와 같이 사회 구성원들로 인해 부를 축적했으니


사회 환원의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 제게는 가장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사회 영역에서 마지막으로 짧고 굵게 짚어본 것은 바로 미디어의 보수화.


기업의 광고로 미디어가 유지되는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디어 역시

 

보수 성향과 결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윤리 영역에서는 도덕과 윤리의 구분, 의무론과 목적론을 대조적으로 다루면서

 

공리주의까지 건드리는데

이때 의무론의 대표적 철학자로 칸트에 대해 짚어주고 있고

목적론에서는 양적 공리주의 벤담과 질적 공리주의 밀을 언급합니다.


칸트는 따로 책을 통해 알고 싶은 철학자여서 사실 지대넓얕에서 짚어준 내용으로는

 

호기심을 충족하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그의 핵심적인 사상과 정언명법의 존재,

칸트가 남긴 비판 시리즈에서의 '비판'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임을

배운 것만으로도 다음 단계를 기대하게끔 해줍니다.^^


칸트의 정언명법을 기준으로 도덕과 부도덕을 걸러낼 수 있다는 보편적 도덕 법칙은


저 역시 살아가면서 잣대로 삼을까 해요.



 

"네가 개인적으로 하려는 일이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해도 괜찮은 일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라."


칸트는 그래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함께 해서 외롭지 않을 겁니다.^^


칸트의 의무론과 대조적인 관계를 갖는 목적론은 

다수의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를 윤리로 보는데요.

어떤 행위가 나와 집단의 미래에 이익과 행복을 창출할 것인가를 고려하는 사람들이

목적론자들이고 현대의 경쟁적 신자유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개인의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윤리관이고


윤리관에는 옳고 그름은 없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윤리관을 취하고 있는지 나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게 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경제가 역사, 정치, 사회, 윤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이분화된 세계의 구조를 여러 측면으로 보다 보니

복잡한 현실세계 속에 살고 있지만 채사장 작가가 제시한 이분법적 단순한 접근이

내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분법에 갇혀 모든 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숱한 오류를 낳을 수 있다는 것도 염두해 둬야겠죠.

신자유주의 체제를 사는 한국의 국민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양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들여다 보니

시민의 역할에 대해 우리는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주주의의 공평함은 바로 부자도 빈자도, 자본가도 노동자도, 남

 

녀노소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할 수 있음에 있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한국 사회의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는 인식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투표의 의미와 가치를 한번 더 생각하면서 한달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에서

개개인의 의사가 정책 결정에 반영되는 그 무게감을

 

이 책의 독자이자 유권자들이 느껴봤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내가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는 것은 그 정치인 한 명의 이미지를 보고 결정할 일도 아니고

 

단순히 나의 대리자를 뽑는 것을 넘어서서 나라는 사람이 보수 정당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곧

신자유주의, 시장의 자유 확대, 세금 인하, 복지 축소,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 국가 경제의 성장, 치열한 경쟁 을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겠습니다.

진보 정당을 선택한다면 진보 정치인 한 명에 대한 지지를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후기 자본주의, 정부의 개입 확대, 세금 인상, 복지 확대, 노동자와 서민의 이익,


빈부격차 해소, 경쟁 지양 및 협력적 분위기 형성을 선택한 것과 같을 것이구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썩었냐고, 왜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을 만들었냐고 정치인들만 탓하기 보다는

현재의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자각하고

통렬히 반성하는 것 또한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유권자들이 뽑은 대표자들에 의해 이 나라의 중요한 정책과 법들이 결정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에필로그에서 최종적으로 정리한 이 표는 완독한 독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번으로 안되면 두번, 세번 읽어야겠죠.^^


우리가 사는 이 복잡한 현실세계는 핵심 개념들을 선별하고 단순화시킴으로써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교양서로 어디서나 환영받을 책이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지대넓얕 2권에서 현실 너머의 세계를 단순화해둔 여정이 기다리고 있네요. ㅋㅋ


지대넓얕 1권에서 다룬 역사, 정치, 경제, 사회, 윤리 영역이 독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처럼


철학, 과학, 예술, 종교, 그리고 신비에 대한 영역 역시 그러하겠죠.


지대넓얕 2권도 이어갑니다. 머리 조금만 식히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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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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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가 보여준 인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이 실로 무섭습니다.


"글로벌 전염병이 핵폭탄이나 기후변화보다 훨씬 더 위험한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올 것을 확신한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 때로는 과학 혁명이라 부를 정도로

 

 인류의 능력은 끝이 없어 보이지만 지금 지구촌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가 공식명칭으로 발표한 COVID 19 로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인류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지요.ㅠㅠ

 

2003년 사스, 2012년 메르스의 원인이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변이를 일으켜


covid 19로 인류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지금,


이런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낳은 미생물이 있는데


그것을 이 책에서는 슈퍼버그 라고 부릅니다.


예전에 있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다시 인류 앞에 나타난 covid 19 처럼

 

슈퍼버그 역시 인류의 과학기술로 인해 항생제를 개발해 낸다고 해도

 

그에 맞서서 슈퍼버그는 항생제를 분해하고 파괴할 만한 수천 가지 효소를 만들어내며

 

21세기를 사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어요.

 

유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슈퍼버그들은 감지하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에

 

인류는 이미 슈퍼버그에 감염되어 퍼진 이후에나 알아차리게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무섭기도 합니다.


흐름출판에서 나온 자연과학서 <슈퍼버그> 는 2050년이면

 

3초에 1명의 인류가 슈퍼버그로 사망할 수 있다는 예측을 만들어낼 정도로

 

인류 보존에 있어서 위협적인 존재인

 

슈퍼버그와 그에 맞서 인류가 개발해온 항생제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요.

 

 

 

 

 

 

?<슈퍼버그> 의 저자 맷 매카시는 의학박사이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합니다.


현대의학의 역사 속에 있는 항생제와 항생제 내성 감염의 치료법에 대해서


연구해온 한 의사의 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흐름출판에서 출간되었던 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와 비슷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인류에게 닥친 이 보이지 않는 적, 슈퍼버그를 잡고자 개발한 달바


임상시험을 통과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참여했던 임상시험 환자들의 이야기도 사실적이었어요.

 

화학요법을 쓰는 일이 자칫 항생제 내성 감염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환자들에게

 

안전하거나 성공적일거라는 장담도 없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결정하기까지 의사인 저자도, 환자에게도 안타까운 상황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끝없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현장에서 치열하게 슈퍼버그와 싸워온 이들은

 

 연구와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지만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더군요.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한다고 해도

 

엄청난 자금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것을 지원할 기업들이 경제적으로 이롭다는 판단을 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법 개발부터 난항을 겪게 되는 것이죠.

 

현재 covid 19도 그렇고 슈퍼버그들 역시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백신을 개발한다해도 실효성이 적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변이를 일으키며 인류에게 보란듯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슈퍼버그.

 

?마치 살아있는 그 무엇이 인류에게 경고를 보내는 듯해서 한편 무섭기도 하네요.

 

종이 다른 동물들의 생태계가 엄연히 있는데 인류가 선을 넘어선 것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지.....

 

인류가 개발한 살충제나 항생제들을 동물에게도 쓰면서

 

그 안에 슈퍼버그들이 적응하고 대항할 힘을 주었기 때문에

 

이 같이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영국의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의 '우연한 관찰' 덕분에

 

 20세기 의학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페니실린"을 발견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때 유대인을 말살하는 과정에서

 

인권은 온데 간데 없고 잔혹한 항생제 실험을 했다는 흔적들을

 

전 세계에 고발했던 뉘른베르크 재판 이야기도 다룹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건 권위와 권력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의 특징을 알렸던 밀그램의 실험처럼

 

나치 의사들 역시 전쟁 중  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한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야만적인 실험을 했던 것.

 

이 일을 통해 임상시험에 대한 원칙과 규칙들도 정립하게 되었고

 

이후 슈퍼버그에 맞설 항생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 과정과

 

그 과정에 참여하게 된 다양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전합니다. 

 

​저자 맷 매카시의 멘토 월시가 항생제 내성 감염의 치료법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하고 있구요.

​약물에 내성을 가지며 무섭게 진화하는 이 미생물과의 전투 속에

​현실적으로 항생제 개발의 어려움도 담겨 있어서

인류에게 닥친 이 어려움을 다함께 헤쳐나가기 위한 연대도 절실해 보입니다.

 

치열한 현장에서 슈퍼버그와 맞서는 한 의사의 생생한 기록, <슈퍼버그>.


핵폭탄이 아니라 질병과 감염이 인류의 적이라는 사실부터

모두가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합니다.

 현재 무섭게 인류에게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국민들 곁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는 의료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삶이 무너지고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분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때예요.

 

 

 

​p. 172

동물에게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쓰는 관행은 퍼버그 출현의 주요인 중 하나였다.


동물 안에 사는 박테리아들이 우리가 가진 최고의 약물들에 노출되면서


그것들을 피할 방법을 학습하는 까닭이다.


최근 18개 주에서 100명 이상에게 발병한 감염의 최종 원인은 예기치 않게도


강아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된 개들 거의 전부가 애완동물 가게에서 팔린 것들이었고,


최소 한 차례 항생제를 투여 받은 이 개들 속에 살던 치명적인 슈퍼버그가


새 주인에게 옮겨간 것이었다.


​​

 시의적절한 책일거라는 기대감으로 <슈퍼버그> 를 만났고


변이하며 스스로 진화해가는, 마치 살아 움직이며 인류를 위협하는 '그들' 의 존재감에


막연한 두려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책 속에 소개하는 전문 지식들은 자연과학 관련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없는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바로 바로 제 머리 속에 들어오진 않았어요.;;


책 내용에 몰입하기가 쉽진 않았지만 일부 내용들을 골라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고,


임상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스토리가 비교적 항생제 내성 감염의 어려움과


그 치료법 개발에 대한 방향들을 읽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례로 든 인물들이 꽤 많아서 다 기억하기는 어려웠지만요.^^


눈에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전염병의 위험, 슈퍼버그의 존재를


이제는 결코 등한시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류 모두가 그 중요성을 인식해야 할 시기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하며


예스24 오늘의책 이기도 한 <슈퍼버그> 는 인류가 전염병에 맞서 미래를 대비하는 자세,


공감대와 연대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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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 작은 가게를 기획합니다
김란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20년 1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북바이퍼블리는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 이라는 퍼블리에 올려진 양질의 콘텐츠를


종이책으로 출간하기 때문에 활자를 통해 종이책 접하기를 즐기는 저로서는


이 경로가 아니었더라면 퍼블리에 있는 콘텐츠들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몇 권의 북바이퍼블리 출간책들을 만나봤는데


그 중에서 이 책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가 가장 개인적으로 흥미로웠어요.


그건 아무래도 제 관심분야나 취향과 겹치는 지점이 많았기 때문일겁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의 저자 김란 디자이너는


건축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일하는 공간을 만드는 공간 창업 코디네이터예요.


북바이퍼블리에서 종이책이 출간되기 전에 그녀의 콘텐츠는


"직장인도 서점 차릴 수 있나요 : 공간 기반 창업 가이드" 라는 제목으로 퍼블리에


디지털 콘텐츠를 게재했었고 내용을 추가해서 이렇게 종이책으로 나온 것입니다.


공간 창업 코디네이터가 하는 일이 뭔지 몰랐던 저도 궁금하더라구요.


한 마디로 새롭게 나만의 작은 공간, 작은 가게를 기획해 주는 사람!


사업계획서 쓰기부터 시작해서 공간 기획, 공사 과정,

 

 

비즈니스 모델 개발 전 과정을 가이드 해주는 직업입니다.


나만의 공간, 내가 일하기 편한 공간의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요즘 많은 것 같아요.


이 책은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업 계획부터 꼼꼼하게 하는 일이 추후에 공사비도 줄이고


 지속가능한 운영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팁을 전하고 있어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를 읽으면서 제가 살아가는 삶의 관심사와


닿아있는 공간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습니다.


제주도여행을 좋아하고 책방투어를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육지와 섬, 모든 곳에 있는 주인의 취향이 돋보이는 책방들이 바로 그것이었죠.


이 사진도 지난 주 제주도여행 중에 다녀왔던 제주 서부에 있는 책방소리소문에서


책 한권 구입하고 나서 평소에 들고 다니는 책에도 도장을 찍어오곤 하는데


마침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를 챙겨갔던터라

 

 

추억을 남기고 싶어 찍어온 것입니다.^^


육지에도 물론 책방주인만의 취향과 세계관이 보이는 공간을 만나볼 수 있지만


제주도 특유의 로컬 분위기와 함께 각자의 독립된 서점이라는 공간이 참 볼거리거든요.


물론 저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놀이터가 되는 곳이구요.


맘에 드는 책방을 만나는 날에는 한 시간 머무르는 건 일도 아니니까요. ㅎㅎㅎ


이번 2020년 겨울에는 책방소리소문 말고도 무명서점, 미래책방, 책자국,


소심한책방, 제주풀무질, 밤수지맨드라미, 언제라도북스, 만춘서점까지 찍고 왔습니다.^^


장 그르니에의 "섬" 과 "일상적인 삶"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앙주의 "공부하는 삶"


코린 펠뤼숑의 "동물주의 선언"


장영희 문학 에세이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우화의 서사학"


출판사 다른에서 나온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이 책들과 새롭게 인연이 닿아 제 손안에 들어왔죠.


그런 제가 바로 이 책에서 얘기하는 "공간을 경험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였더라구요.


가끔은 서점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거든요.


그곳이야말로 공간을 경험하는 비용을 받으며 공간을 운영해가고 있는 것이었어요.


이 책을 보니 현실에 있는 공간들의 운영방식이 또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서점이 오랫동안 유지되기를 바라는 응원의 마음으로 책 한권 꼭 사들고 나오게 되는데


그런 저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 느껴지는 문구도 보여서


결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저자에 대해 친근감이 들기도 했어요. ㅎㅎㅎ


이번에는 동선이 맞지 않아 가보진 못했지만

 

 

표선에 있는 북살롱이마고는 이제 다음에 제주도여행 하게 되면 영순위로 탐방할 서점이예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책을 통해서 몰랐던 걸 발견했습니다.


이미 제주책방올레 리플릿을 갖고 있는데도 이걸 왜 못 봤나 모르겠어요 ㅠㅠ


혼자서 제주도여행 할 때는 주로 동부를 돌아다녔고 표선도 하루 다녀왔었는데.....


이제서야 뒷북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 역시 나만의 서점을 갖고 싶다는 소망은 가슴 한 켠에 늘 자리잡고 있는데


그걸 실현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하지만 때가 되면 움직여 보려고 합니다.^^


저처럼 서점이라는 공간이든, 자신만의 작은 가게를 열고 싶은 사람들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은 하면 안되는지 꼼꼼하게,

 

 

하지만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책이예요.


공간만 열면 사람들이 올 거라는,

 

 

세상은 나의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애초에 버려야 하구요.


자기만의 콘텐츠를 갖는 것은 이젠 기본이 되어버렸고 나아가서


개인 SNS에 자기만의 콘텐츠를 구축해 나가며 반응을 살피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은 새겨들을만한 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텀블벅을 활용하는 분들도 요즘 많이 보여요.

 

공간 창업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저자도 한 때는

 

공간 창업을 도와주는 입장에서 실제로 운영하는 입장도 되어 보았다는 얘기도 전합니다.


평당 30만원을 들여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했던 과거 공간 창업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공간 창업의 외부자와 내부자로서의 경험치를 자세하게 풀어놓기도 하죠.​ 


공간 창업에서 가장 어려운 홍보와 공간 운영을 위해 무엇을 염두해 둬야 할지,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공간 창업 체크리스트까지도 자세하게 담아 두었습니다.


책 제목 그대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하는 책이예요!


이 책은 창업을 부추기는 책이 아니라 오히려 말리는 책이라고 하지만


저자 본인의 공간 창업 코디네이터로서의 자세한 사례들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놓아서


제가 보기에는 공간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아주 든든한 책이 될 것 같아요.^^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에서 소개하는 나만의 공간,

 

 

 작은 가게는 물론 서점만 있는 건 아니구요.


공간 창업 선배들의 노하우를 들려줌으로써


어떤 아이템이 좋을지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미술관, 사진관, 서핑과 요가, 여행 루트를 제공하는 공간 등등.


저자가 소개한 공간들도 뒷 부분에 나와 있으니 직접 찾아가 보는 걸 추천합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의 실질적인 팁은 계속됩니다.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분들이 보면 좋을 뉴스레터인 토란 뉴스도 소개하고 있고


책 속에서 서점 공간을 열고자 하는 직장인 A의 서점에 대한 기대감도 남겨두었더라구요.^^


저도 이 책을 본 이상 직장인 A의 서점이 오픈하게 되면 가보고 싶어요!!


근데 스탬프 찍으면 그걸로 끝인가요? ㅋㅋㅋ


저자 김란 디자이너는 이런 팁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내가 창업하고 싶은 곳과 비슷한 공간을 직접 찾아보고 체크해서


공간 주인의 꿈과 취향이 그대로 보이는 좋은 공간을 만들어 보라고.


공간 창업이 녹록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을 소유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행복 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죠.


제주도의 곳곳에 이렇듯 나만의 작은 공간, 작은 가게를 창업하고


운영하는 곳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공간을 경험하는 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로서


제주도를 향한 저의 여정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북바이퍼블리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를 통해 공간을 가꾸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하구요.


나만의 작은 공간을 가꾸고 운영하는 것이지만 그분들이 펼쳐놓은 세상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보고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된다면


그또한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장 개인적인 일이 가장 창의적인 일이라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을 빌어


수상 소감을 남겼던 봉준호 감독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이제는 누군가의 말과 방식을 쫓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콘텐츠를 구축해 가는 것이


 주목받는 세상임은 분명한듯 싶습니다.^^


생각지 못한 분야의 책에서도 이렇듯 신선한 영감을 얻을 수 있어서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창업 가이드> 저로서는 아주 알찬 독서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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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양장) - 개정판 새움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그리고 그의 이름을 지금까지 불리게 하는 그의 대표 작품인 소설 <이방인> 을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민음사 버전이 아닌 새움 출판사 이정서 번역으로 처음 만납니다!!!


이건 저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전개였어요.


사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을 참 좋아하고 아주 가끔 민음사의 번역이 문제가 있는 소설의 경우에만


다른 출판사의 번역을 찾곤 했었는데 그렇게 유명한 소설 <이방인>의 민음사 버전의 번역이


이슈의 중심에 있는 소설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이 제게는 꽤나 충격이었어요.


번역 하나하나 어떻게 다 꼼꼼히 따져가면서 책을 골라 보겠냐는 생각부터


피로감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역시 나름 번역을 챙겨가면서 책을 골랐었는데


<이방인> 은 그냥 무조건 민음사 버전이지라는 인식으로 의심도 없이 골라서 구입했었고


새움 출판사의 <이방인> 으로 먼저 만나지 않았더라면


번역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이 책을 만나기 전처럼


가볍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건 새움 <이방인> 을 번역한 이정서 번역가의 "직역이 아니면 안 된다"는 주장에


저도 기분좋게 설득당했고 두 번역의 차이점이 무엇일지에 대한 호기심과 약간의 의심으로


소장하고 있던 민음사 버전과 새움 버전의 <이방인> 첫 페이지를 비교하면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1장이 끝날 때까지 두 버전의 번역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봤죠.


불어로 쓰인 <이방인> 은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1942년에 처음 출간되었고


가장 정확한 번역으로 권위를 자랑하는 책으로는 미국의 번역서가 있다고 하는데


이 마저도 직역론자 이정서가 얘기하는 원문 그대로의 순서를 따르는 번역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시중에 나와있는 <이방인> 번역서 중에 가장 인지도 있는 민음사 버전을 포함하여


시공사, 열린책들의 번역들을 동시에 보면서


같은 문장인데도 미묘하게, 때로는 의미의 차이를 크게 보이는 번역들을 비교하는 부분은 흥미로웠습니다.


한편 놀라웠던 지점은 같은 문장을 이렇게 다르게 번역하게 되는 이유가


번역자들의 외국어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번역자들의 직업적 경험이나 재량(?) 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


그래서 그동안 우리가 읽은 <이방인> 은 알베르 카뮈의 것이 아니었다는,


다소 도발적인 번역에 대한 문제점을 6년전에 제기했던 이정서 번역가가


새움 출판사에서 6년만에 새롭게 개정판으로 내놓은 <이방인> 이라는 것.


번역자의 재량으로 의역을 했던 기존의 <이방인> 을 읽은 분들이라면


오랜만에 다시 알베르 카뮈의 걸작 <이방인> 을 원문 그대로 쉼표를 살리고 어순도 변함없이


원문을 직역 그대로 만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민음사 버전과 새움의 번역을 비교해서 본 바로는 개인적으로 저는


새움의 번역이 매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번역된 것이라 그럴까요....민음사 버전의 번역은 쓰인 단어 자체가 어렵고


현 시대의 언어와 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어느 것 하나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두 개를 비교해보니 그렇더라구요.


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참 애정하는 독자입니다.^^


하지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도 번역이 좋지 않은 작품이

 

 

분명히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계기는 되었어요!!


오랜 시간동안 읽혀져 온 인지도 있는 번역에 대해

 

 

의심없이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맞는가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워낙 세계문학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원작자의 메시지 그대로 읽고 싶은 순수한 독자의 마음으로 번역에 대한 중요성을 새기면서


서론이 무지 길었습니다. ㅋㅋㅋ


그만큼 새움 버전의 <이방인> 은 번역에 대한 의미도

 

 

굉장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절반으로 구분할 때 왼편이 <이방인> 소설 내용 분량이고


오른편이 역자노트와 이방인 깊이 읽기, 역자후기까지 담긴 부록이거든요.


2014년 이정서 번역가의 책이 6년만에 양장본으로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국내 번역에 대한 인식으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기존 <이방인> 의 오역을 지적했던 바,


번역이 얼마나 달랐고 번역으로 소설을 이해하는데 난관이 있었다면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지


알베르 카뮈와 소설 <이방인> 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번 기회에 한번 더 ㅎㅎㅎ


이 소설 저도 이번에 처음 읽었지만 "이해가 안 되고 어려워서 또 읽어야겠다"가 아니라


묘하게 끌리는 알베르 카뮈의 문체 때문에 "또 읽어보고싶다" 는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었어요.


전세계 101개 국가에서 번역된 우리 시대 최고의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정말이지 괜히 붙은 건 아닌듯!!!


그리고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이며 각 개인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 소설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독서모임의 필요성을 더더욱 느꼈던 소설입니다.


소설 <이방인> 의 유명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돌아가셨다".


의역으로 인한 소설 <이방인> 의 오역을 안타까워했던 번역자 때문인지


저 역시도 번역의 차이에 따라 부분이 모여 

 

 

소설의 전체를 파악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첫 문장에서부터 하게 됩니다.


주체, 주체의 행위, 시기. 어느 것에 힘주어 말했느냐라고 한다면

 

 

 알베르 카뮈는 "오늘" 이었더라구요.


하지만 다른 번역들은 다 조금씩 어감이 달랐고 힘주는 부분도 달랐거든요.


물론 부분을 가지고 전체 맥락을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가늠은 해볼 수 있겠다라고 한다면,


 소설 <이방인> 에 대해서 여러 방면으로 얘기하게 될 때,


인간의 죽음이 불가피한 것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줄 알게 될진데


카뮈에게는 어머니의 죽음을 어찌 보면 순리로 받아들이며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오늘은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오늘의 일이


앞으로 뫼르소의 인생에 어떤 부조리한 시간들을 경험하게 하는지 멀찌감치 내다볼 때


중요한 시점이며 사건이 되기에 이 첫 문장이 오랫동안 유명하게 얘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의 장례식을 대하는 뫼르소의 행동이


이 사회에서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여겨지는 이 세상에서의 부조리함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는 모습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없는 아들은


우연히 태양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결국은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는 이 연결고리를 과연 소설적인 허구라고만 볼 수 있을지.....


 뫼르소와 그의 어머니 사이에는 평범한 모자지간의 정이 표현되고 있지 않기에


장례식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하는 아들 뫼르소의 모습은 그리 어색하지만도 않은 듯 한데요.


문제는 이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아들이라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의례 슬퍼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그 당연할지도 모르는 생각으로부터 뫼르소는 분명히 벗어나 있기에 


'이방인' 이라고 말하자면 틀린 것 같진 않습니다.


대부분은 도덕적 지탄을 받지 않으려 타자를 의식해서 세상의 '유희' 에 편승하지만,


뫼르소는 그런 유희, 게임에 반응하지 않거든요.


이정서 번역자는 유희라는 기존의 번역을 '게임'이라고 표현하고 있기도 하는데요.


그 게임에 부응하지 않았기에 결국은 뫼르소가 사형 선고를 받는 과정이 


이 세상의 부조리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도 간단히,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 뫼르소는


말이 많아지다 보면 거짓말을 하게 확률도 높아지는

 

 

인간의 본성마저 꿰뚫고 뫼르소를 설정했나 싶기도 해요.


뫼르소는 말을 많이 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말을 하는 인물인 것입니다.


카뮈는 말이 아니라 듣거나 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응시하는 것, 바라 보는 것에 힘이 실리고 있구나 미루어 짐작하게 합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도 뫼르소에 대한 신뢰를 가지며

 

 

법정에서 그를 변호하는 말들을 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대부분의 인간 관계가 그러하듯 각자의 이유와 이해관계로 다 그러하진 않습니다만.....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은 뫼르소의 태도를 보면서 그를 재단하게 됩니다.


사회 안에서의 유희, 게임 속에서 놀아나지 않으려는, 자신의 본 모습을 유지하는 뫼르소가 이방인인건지


아니면 타자를 의식해서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가면 쓴 모습을 보이는 세상 사람들이 이방인인건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제가 오히려 착각하게 되고 헷갈리는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무엇이 본질이고 진심인 걸까요...... 뫼르소가 이방인으로 비춰지는 이 현실 사회의 본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고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 아들이


친구와 함께 해변가에 놀러갔다가 친구 대신에 어찌하다 권총을 건네 받게 되고,


친구를 괴롭혔던 아랍인을 우연히 대면하게 되면서 뫼르소 입장에서는


뫼르소를 위협하고 칼로 눈을 찌른 아랍인을 향해 정당 방위로 권총을 꺼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죠.


아랍인과 뫼르소는 서로를 응시하며 긴장감이 드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 유명한 일명 "태양 살인" 이 일어나는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저 역시 읽으면서 한 줄 한 줄


뫼르소에 이입되어 떨리고 긴박한 순간이 전해지는 듯 했어요.




"내가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햇볕으로 이글거리는 해변 전체가 뒤에서 나를 압박했다.


나는 샘을 향해 몇 걸음 내디뎠다.


아랍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아직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


나는 기다렸다. 타는 듯한 태양이 내 뺨에 엄습했고 나는 눈썹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


그 뜨거움 때문에 나는 서 있을 수가 없었고,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알았다. 그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한 걸음을 더 옮겨 봤자 햇볕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한 걸음을, 다만 한 걸음을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이번엔,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아랍인이 칼을 뽑아서 햇볕 안에 있는 내게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되며 번쩍이는 길쭉한 칼날처럼 내 이마에 닿았다.


그 순간,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내 눈은 눈물과 소금의 장막 뒤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그 불타는 칼은 내 속눈썹을 물어뜯고 내 눈을 고통스럽게 파고들었다.


모든 것이 흔들린 것은 그때였다.


.......


내 존재 전체가 긴장했고 나는 손으로 권총을 꽉 움켜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였던 매정한 자식의 모습,


어머니 장례식이 있던 다음 날 수영하러 갔던 해변에서 옛날에 알던 여인 마리를 만나고


그녀와 잠자리를 했던 일들이 세상 사람들이 보이게는 부도덕한 편견으로 덧입혀지고


 이 살인이 뫼르소를 정당 방위한 것이 아니라 잔혹한 살인자로 몰아가는 법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와 기자들, 뫼르소의 재판을 지켜보는 법정의 객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를 이방인으로 몰아가는 이 부조리한 상황에 읽는 저도 점점 힘이 빠지더라구요.


살인이 일어나고 1부가 끝, 2부 부터는 체포 되고 심문도 받으며 법정에서 재판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판사는 자신의 종교적 가치를 뫼르소에게 강요하면서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뫼르소에게 주기도 하는데요.


이는 법정 내에 있는 뫼르소를 위해 증언하러 온 친구들을 제외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확장됩니다.


친구들이 뫼르소를 위해 강하게 변호를 하는데도 오히려 법정 관계자들이 가로막거나


더 말하려는 이들을 끌어서 증인석을 벗어나게 하는 등......


법정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게 된 심리적 동기나


그의 인간성, 그의 행동을 미루어 그의 살인 행위에 대해 잔혹하게 몰아가요.


법원으로 뫼르소를 데리고 가는 호송차 내에 있는 경관들과의 대화에서도


짧지만 뫼르소라는 인물의 본 모습을 느낄 수 있던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긴장되냐는 경관의 질문에 뫼르소는 아니라고,


어떤 점에서는 소송을 보게 되어 흥미롭고, 살면서 이런 기회가 한 번도 없었다 고 대답합니다.


저 상황에서 이런 대답을 한다는 것이 평범하진 않은 상황이긴 하죠....^^;;


뫼르소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거예요.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하고 딱 할 말만...


자신의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이 세상의 유희, 게임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


뫼르소의 이 같은 대답은 한 개인에게 어쩌면 위협을 가하고 있는 법정을 향해 끄떡없는 모습이


반대로 법정의 재판을 주도하는 행위자들에게는 권위에 위협을 가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대목이었어요.


"뫼르소" 라는 한 개인이 재판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는


굉장히 큰 사람처럼 다가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밖에도 내가 줄곧 숙고했던 두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새벽과 나 자신의 항소였다.


나는 하지만 따져보았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


나는 여전히 내 생각의 방향을 돌리려고 애썼다. 나는 심장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 소리가 그렇게 긴 시간 나와 함께 동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실제로 결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럼에도 이 심장박동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어떤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 보려 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일이었다.


새벽 또는 내 항소는 거기 있었다.


나는 마침내 가장 이성적인 것은 나를 강제하지 않는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어머니의 장례식, 살인, 재판과정 중에도 뫼르소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평정을 잃지 않았지만


역시 뫼르소도 인간인지라 죽음에 직면해 있음을 느끼는 시간에는


여러 생각들로 내면이 흔들리고 있음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그래, 난 그러면 죽는 거지. 다른 사람보다 더 일찍, 그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삶이 괴로워하며 살아갈 가치가 잇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본질적으로, 서른 살이나 예순 살이나 죽는다는 것에는 별 차이가 없었으므로.


......


지금이든 혹은 20년 후든, 죽을 것은 언제나 나였다.


......


우리가 죽는 이상, 어떻게건 언제이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건 명백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 항소의 거부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대화나 뫼르소가 묘사하는 재판과정 속 인물들의 모습들도 지루함 없이 읽혀지지만

무엇보다도 결말로 다다를수록 죽음에 직면한 진실한 인간 뫼르소의 내면의 목소리는

이 소설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내 미래의 깊은 곳으로부터, 내가 이끌어 온 이 부조리한 삶 내내,

모호한 바람이 아직 오지 않은 수년의 시간을 건너 내게 불어왔고,

그 바람은 자신의 행로 위에서, 내가 살아 있을 때보다 현실적이랄 게 없는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이 내게 강요한 모든 것들을 평탄하게 만들었다.

......

우리가 선택한 삶, 우리가 고른 운명, 단지 하나의 운명은 내 스스로 고르는 것이기에,

......

다른 사람들 역시, 어느 날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선고를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고 그의 어머니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을 당한다 한들 뭐가 문제란 말일까?

​......

그가 떠나고, 나는 냉정을 되찾았다."

부조리한 이 세상에 진실이라는 무기로 저항했던 뫼르소의 내면을 따라


소설의 막바지로 가는 과정에서 소설이 주는 재미와 깊은 인상을


<이방인> 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찐~하게 느낀 것 같습니다.


<이방인> 의 미국판 서문을 깊이 읽기에서 언급하며 설명해 주는 내용들을 통해서도


알베르 카뮈가 소설 <이방인> 을 어떻게 생각하며 써내려갔는지 가늠해 볼 수 있었어요.


개인적이고, 외로워 보였던 뫼르소는 타자의 관점에서 보기에 이방인이기도 했으나


뫼르소 자신으로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 하거나 거짓말 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려 하거나 항소하고자 하지도 않았어요.


가식없는 완고함으로 진실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 인물로 지금까지 독자들에게 남아있는


인간 뫼르소와의 만남,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진한 여운이 있습니다.

 

부조리한 현실 속에 놓인 인간이 어떤 운명을 만들어 갈 것이며


인간의 근본적 탐구를 위해 노력하고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실존주의 문학의 흐름에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이 많이 거론되는데 왜 그런지 읽어보니 좀 알 것 같습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주인공의 내면 심리묘사가 재밌었고


독자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모든 인간이 사형수라면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욱더 진지하게 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어요!!!


어려울 거라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을 원문만으로는

 

 

이만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지금의 이해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아요.

 

 

더 읽어봐야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제게 영향을 미쳤던 그것 만큼은 잊지 않으려구요. 


클래식 클라우드의 카뮈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어요.


언젠가는 읽으려고 사두었던 카뮈의 에세이 <페스트> 도


기존의 삶의 가치에 대한 부정을 표현했던 <이방인> 과 반대로 긍정을 표현했다고 하니


때가 되면 읽게 되겠죠..... 이렇게 새움 출판사의 2020년 개정판 <이방인> 을 만난 것처럼요.


세상과 인간을 좀 더 넓게, 그리고 깊이 보는데 저를 변화시켜주는 좋은 소설들 중에서도


역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은 조용히 강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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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류승경 옮김 / 수오서재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저 역시 접하긴 했는데

 

 

이제서야 직접적인 연이 닿았습니다.


 '알고 싶다', '궁금하다' 는 생각을 늘 품고 지내다가


기회가 닿아 수오서재에서 나온 모지스 할머니 자전 에세이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를 만나게 되었어요.


이 책이 좀 더 특별한 건 일반 글자크기로 나온 책도 있고


모지스 할머니의 추억을 소환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담긴 엽서책도 있는데


제가 만난 책은 바로 큰글자책.


모지스 할머니의 삶이 완전히 새로워지게 한 것은 바로 그녀의 그림들.


큰글자책인만큼 판형도 큰 편이어서 그림을 좀 더 크게 볼 수 있다는 게 또 좋더라구요.

 

일반판에 수록된 그림 중 48점이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보너스가 또 있더라구요.


책에 실리지 않았던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70점이 새롭게 수록되어 있어서


수오서재에서 나온 모지스 할머니 자전 에세이는

 

 

그녀의 솔직 담백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린 그림까지 감상할 수 있는, 아주 귀한 큰글자책입니다.


아직은 큰글자책을 볼 일이 없지만 언젠가는 저도 큰글자책을 찾게 될 날이 올테죠.


왜냐하면 인생 마감하는 날까지 독서하는 것이 제 소원이라서요.^^


책을 읽지 못한다는 건 제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


그래서 평소에도 큰글자책이 궁금하긴 했는데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이 그런 경험을 주었습니다.


큰글자책을 만나고픈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먼저 읽고 부모님께 선물해 드리고 싶어서예요.


 

 

 

 

​저는 책의 가치를 깨닫게 되며 하루 하루 내 삶에

 

 

최선을 다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게 되었는데


부모님도 과연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실지 궁금했습니다.


혹시 그냥 살아 있다 보니 살고 있다는 허무하고도 의욕 없는 생각으로 살고 계시다면

 

​모지스 할머니의 끝이 없는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을 전해드리고 싶기도 했어요.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 에세이는 충분히 독자에게 뭉클함과

 

그녀의 삶 자체가 전하는 영향력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

 

모지스 할머니가 백년을 살아오시면서 삶 속에서 깨달으신 명언이 아닐런지요.^^

 

 

 

 

 

스코틀랜드 계 이민자의 자녀로 1860년생 모지스 할머니의 풀네임은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형제자매들도 많았지만 가정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12살부터 15년간 가정부 일을 하게 되요.


그러다가 같은 집안에서 일꾼으로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열 명의 자녀를 출산하게 되지만, 그 중 5명만 살게 되고

 

5명은 어릴 때 한 명이 죽고 나머지 4명은 태어나자마자 사산의 아픔을 겪습니다.

 

​농장생활을 하며 생활하던 여성이었고 여느 때처럼

 

 

나이가 들어서 자수를 놓으며 살다가


관절염으로 자수마저 못하게 되면서 바늘 대신 붓을 들게 된 모지스 할머니.

 

​그때 모지스 할머니의 연세가 76세.


5년만에 첫 개인 전시회를 열게 되고 이후로

 

 

미국인이 사랑하는 예술가 중 한 분으로 손꼽히죠.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어느 축제에서 과일 통조림이나 라즈베리 잼과 함께


그림들을 전시하게 되었는데 이런 그녀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알아본


어느 수집가에 의해 세상에 모지스 할머니와 그녀의 그림이 알려지게 되었고


방송에도 출연하게 되면서 입담 좋은 모지스 할머니의 인기는

 

 

더더욱 올라가게 되었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화가들의 그림은 보통 캔버스에 유채 작품들이 많은데


모지스 할머니 그림들을 보면 메이소나이트, 나무에 유채 작품들이 적지 않은거예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나무에 어떻게 그림을 그리나 싶은데


책 속에 이런 부분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준

 

 

모지스 할머니 덕분에 궁금증 해소되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액자를 사고 그 틀에 맞게


목판을 자르고 그 목판에 아마씨 기름을 바른 후


흰색 무광 페인트를 세 겹 칠해주면 칙칙한 나무색도 가릴 수 있고

 

 

물감을 많이 안 써도 된다네요.


튜브 물감이 제법 값이 나가서 아껴 쓰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고.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모지스 할머니의 추억 소환은 책 속에서 내내 접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결혼 후, 그리고 자녀들이 큰 후 시간순으로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 에세이가 이어지는데 책 속 내용에 따라


그림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서 모지스 할머니의 일상들을 독자들은 상상하게 되고

 

 그림으로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하게 되기도 하구요.^^

 

​시럽도 만들고 사과 버터도 만들었던 모지스 할머니의 삶을 그녀 자신도


글과 그림으로 회상하는 즐거움을 만끽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1860년생인 모지스 할머니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림을 제작한 연도를 볼 때마다 놀라게 되요.


작품 하나하나 다 놀라운데 마지막 작품 <호수> 만 해도


98세의 나이에 그리셨다는 거잖아요.


따뜻함 색감과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보여주는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스타일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도 풍경 그림들이 하나같이 다 멋집니다.


눈 내린 겨울 풍경도 좋아하셔서 작품으로 많이 남기기도 하셨죠.


 

만약 그림을 안 그렸다면 아마 닭을 키웠을 거라는 모지스 할머니.


절대로 가만히 앉아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겠거니

 

 

 

 

 

 

 

 

 

기다리고 있지 못한다는 모지스 할머니.


남에게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도시 한 귀퉁이에 방을 하나 구해서


팬케이크라도 구워 팔겠다는 모지스 할머니.


지금보다는 분명 불편했을 테고 느릿느릿한 삶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하고 좋은 시절이었다고 그리움을 표하는 모지스 할머니.


모지스 할머니의 자전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한 사람의 인생 전반적인 흐름이 보이게 되는데요.


좋은 일, 나쁜 일..... 살다 보면 다 겪어내야 하는 일들이 앞으로도 이어질텐데


내 삶은 앞으로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까 생각하게 하는 수오서재 에세이였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삶과 그림에 대중의 인기가 높아지던 때


미국 화단과 평단은 그녀를 외면했다지요.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가 뒤로 밀려났다는 불만도 한몫 했다고도 하구요.


그렇게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을 B급으로 분류하기도 했지만


정작 모지스 할머니는 큰 돈과 대중의 인기보다 그저


자기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그 바지런한 손으로 1600여 점의 그림을 그린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속 디테일들은


그녀가 전하고픈 이야기, 자연과 사람사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큰글자책을

 

 

부모님에게 선물로 드리게 될 것이 기대됩니다.


평생 책을 읽지 않던 분들이지만 이 큰글자책을 만나

 

 

삶의 색다른 경험으로 여기시면 좋겠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들만 모아 관람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게 된다면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당장 보러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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