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클래식 수업 8 - 차이콥스키, 겨울날의 찬란한 감성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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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101-24-02 :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차이코프스키 , 민은기 저, 2023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서협찬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1. 들어가며...


 

빌리 부친 : "...사내 자식이  계집애처럼 무슨 발레냐? 먹고 살기도 힘든 이 마당에...하라는 복싱은 안하고 이게 무슨 짓이야?"

빌리 : (보란듯이 춤을 추며) "아빠!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춤을 춰야되요! 보시라구요!"

(이어서 바로 빌리의 뺩을 때린다. 그러나 빌리는 지지않고 계속 춤을 춘다.)

당신은 혹시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를 기억하는가? 국내에서도 꽤나 언급이 되었고,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상당한 인기를 얻었떤 작품이다. 못보신 분들을 위해 대략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배경은 80년대 '대처리즘'으로 상징되는 최악의 불경기로 신음하던 영국의 한 탄광이 나온다. 대규모 해고와 파업으로 혼란한 시기이고, 남성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환경에서 비교적 연약한 주인공인 빌리는 뜻하지 않게 자신이 '춤'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사내다운 운동인 복싱을 배우러 간 체육관 한 켠에서 발레를 연습중이던 여학생들을 보고 말이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고뇌하지만, 춤을 추는 순간의 기쁨과 자신의 운명의 이끌림으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가족들 몰래 계속 춤을 연습한다. 급기야 더이상 배울게 없을 정도로 성장한 빌리는 왕립 발레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가게 되지만, 아버지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 위 장면이 바로 그 대목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 우여곡절 끝에 고향을 떠나고 발레리노로서 승승장구한 빌리는 훗날 "백조의 호수"에서 당당히 주연 발레리노가 된다. 이때까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아들의 공연을 처음 초대되어 보러오게 된다. 발레리노로서 성장한 아들이 찬란하게 허공을 향해 비상하는 장면에서 '아..."하는 깊은 찬사와 탄식을 보내며 영화는 끝난다. (사진참조)

나는 이 책 "난처한 클래식 수업 - 차이코프스키"를 읽으면서 줄곧 이 영화가 떠올랐다. 땀냄새와 매케한 연기가 가득한 그 마초적인 탄광촌에서 한줄기 꽃처럼 빌리가 피어났고, 얼마나 자신과 맞지 않는 환경에서 고민했을까 말이다. 게다가 극중에서 성적 소수자임을 짐작케하는 장면도 나오니 말이다. 또한 그런 아이를 둔 아비의 심정과 결국 아이의 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비의 모습 - 파업을 하는 동료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 도 함께 말이다.

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맨 마지막 장면이다. 아무리 삶이 시궁창스럽고 너무 견디기 힘들다 하더라도, 창공을 향해 완벽한 한 마리의 백조가 되어 날아오르는 빌리의 모습을 보고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이 나오는 그 장면...!

우리에게 예술이란 그런 것이리라. 현실의 유무와 상관없이, 어떤 예술적 경이를 보면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그 경외감이야말로 예술의 본질 아닐까? 한 순간이라도 이 더러운 세상에 한 줄기 성스러운 "아우라"가 느껴지니 말이다. 우리 인류가 지적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자기 표현의 수단이자 사회적 활동의 산물인 예술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거라 나는 생각한다. 이는 인간 감성의 가장 밑바닥에 내재한 욕망을 위로하고, 그것을 현재의 세상으로 끌어내는 본능에 가까운 행위양식이니 말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아쉬움도 존재한다. '고전음악' 이라는 거창한 단어에 짓눌린 저 본능의 욕구...일종의 '권위'로 말미암은 본질의 왜곡은 가끔 내게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클래식 음악이건 대중음악이건 관계없이 이 양식들은 우리의 내면을 위로하고, 감정을 표현하게 해주며 때로는 삶의 빛을 안겨주는 그 고유의 성격을 느끼지 못하는 안타까움말이다. - 아무리 문외한이어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의 도입부만 들어도 그 장중한 전율을 느끼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 따라서 이 책과 같이 간간히 나오는 대중 클래식 서적에 대해 반가움을 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2. 저자의 의도...

이 책의 저자인 민은기 교수는 한국의 1세대 음악가에 해당하는 학자이다. 기존의 클래식 저변에 자리잡은 선입견을 타파하고, 대중 저변에 좀더 친숙한 클래식의 이미지를 설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이력이 있다. 다수의 저서와 다양한 매체의 기고를 통해 대중입문격인 클래식의 소개부터 작품의 해설까지 방대한 작업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도 출연하여 그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진행을 해온 바 있는 교수이다.

이 채 "난처한 클래식 수업" 시리즈는 그러한 민은기 교수의 노력의 결실물이라 보인다. 그동안 수없이 난립한 대중 클래식 소개서와 달리, 현재 대중들에게 보다 더 적합하고 와닿을 수 있는 면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역작이다. 매 권마다 소개하는 작곡가 - 내지는 음악사조 - 에 대해 꼼꼼하고도 지루하지 않게 대화체로 진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매 장마다 소개한 내용을 정리하여 핵심적인 부분을 기억하기 쉽게 해준다. 또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의 음악작품을 유투브나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잘 소개를 해놓고 있어 따라가기 쉽게 해놓았다. 

3. 인상적인 부분...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쉬운 해설서"라는 점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문체가 딱딱하지 않고, 대화체로 구성이 되어 있어 마치 옆에서 친근하게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듯한 인상을 받도록 배려해놓았다. 클래식이라는 권위와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 본질인 음악에 다가가기 위해 외피를 좀더 친숙하게 한 배려는 좋은 시도로 보인다. 또한 그러면서도 다소 난잡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의식하여 매 장마다 해당 챕터에서 강조하는 주요 포인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페이지만 보아도 대략 이 장에서 작가가 의도한 내용을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쳐온 부분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키는 장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가장 큰 부분인 음악에 대해서도 매우 세심한 배려가 되어 있다. 해당 음악이 언급되는 절 옆에 주석이나 기존의 장식보다는 QR코드를 이용하여 찾아보기 쉽고, 빠르게 해당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해놓아, 현대의 독자들에게 보다더 편리하게 저자의 소개를 따라올 수 있도록 친절함까지 엿보이고 있다. 아마도 근래들어 본 대중 클래식 소개서 중에 이토록 철저히 독자들을 배려한 입문서가 과연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잘 짜여진 구성이 돋보이는 저서이다.

또한 차이코프스키라는 작곡가에 대해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좋은 시도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들 우리가 전기로 접하는 상당수의 작곡가들은 어릴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는다던지, 혹은 정규교육에 준하는 훈련을 거쳐 음악가로서 성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는 전혀 다른 인생의 행적을 초창기에 보인다. 가계로부터가 음악과는 거리가 다소 있었고, 실제 법학도로서 학업을 지속했었다. 차이코프스키카 살던 당시 제정 러시아의 후반에 해당하며 법률가로써의 삶을 시작한 다소 이색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운명에 이끌린 차이코프스키는 결국 자신의 새업을 그만두고, 늦깍이 학생으로써 처음 음악적 삶을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 혹은 전설이 시작된다. - 늦게 시작한 음악공부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놀랍도록 무섭게 성장하여 그 어렵다던 '교향곡'을 2년만에 작곡하며 천재성을 단숨에 드러내게 된다. 이를 일찍이 감지한 루빈시테인과의 만남과 이후 이어지는 음악적 행보는 전설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향곡이나 발레곡의 초연이 실패한 경우도 많았지만, 꾸준하게 작품들을 내놓으며 자신을 뛰어넘는 곡들을 생산해내게 되고 이후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인생의 2막에서 자신이 하고자하는 모든 것을 이룬 상태였지만, 비극이 찾아오게 된다.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차이코프스키는 '성소수자'였던 것이었다! 그로 인한 것인지는 알기 힘들지만 결혼 생활의 파경, 그리고 연이은 남자 제자들과의 염문으로 말미암아 인생에 있어 큰 굴곡을 남기게 된다. 지금도 남성중심적인 사회분위기로 유명한 러시아인데, 그 당시 제정시대의 러시아란 그야말로 성소수자였던 차이코프스키에게는 창살없는 감옥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 실제로 당시 법적으로도 금지되었다. - 연이은 대중적 성공과 드높아가는 명성과는 달리 자신의 사생활은 비참함에 가까우리라는 것은 짐작코도 남는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어 공식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시점이 기록에 존재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급작스러운 죽음... - 공식적으로는 "콜레라"로 기록되어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찬란한 음악적 유산과 대비되어 상대적으로 묻힌 감이 없잖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은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적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점을 여과없이 잘 제공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잘 다뤄지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지만, 인간 차이코프스키를 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그로 인한 음악적 세계의 특징적인 부분들을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라고 평소 공감하던바이기에 이 대목은 매우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사실 당대의 러시아 민중들에게 주류로 간주되던 소위 "러시아 5인조"의 언급도 좋은 시도였다고 본다. 실제로 차이코프스키는 러시아적인 면이 없잖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 악파하고도 거리가 상당히 있다. 오히려 당시의 평가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너무 서구적'이란 비판을 자주 받았고, 러시아 국민악파와의 관계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따라서 현재의 인식과 다르게 차이코프스키는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으며, 초반기 대중적 인지도도 러시아 국내보다는 바깥에서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 지금 러시아 발레의 정수이며 위대한 작곡가로 칭송받는 평가와는 상당히 다르지 않은가. - 이러한 맥락에서 당시의 평가나 음악적 사조 측면에서 러시아 5인조와의 비교도 분명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과감히 끌어들여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함으로써 보다 더 입체적으로 차이코프스키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마도 학자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언급했을수도 있고, 아니면 차이코프스키의 모든 면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측면에서의 시도로 보이며, 이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바이다.

4. 아쉬운 부분...

앞서 설명했던 이 책의 미덕인 "대중입문서"라는 점은 분명 강점이지만, 반대로 이 책의 한계이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워낙 잘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들에게 선호되는 작품들도 많기 마련이라 사전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독자라면 본 책의 내용이 그리 새로운 것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음악적으로, 기교적으로 깊게 들어간 부분은 거의 없으며 이는 식상함으로 다가올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한다. 따라서 더 깊은 논의를 원하는 독자들은 이 책이 심심하게도 느껴질수도 있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대중입문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인생에서 중반기를 차지하는 일화의 조명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음악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일화 중 하나인 "폰 메크 부인"과의 후원관계가 그것이다. 현재도 많은 연구가 나오고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꽤 알려진 이 기묘한 관계를 - 평생 플라토닉한 후원 - 둘러싼 무수한 가설이 존재하고, 이는 차이코프스키 음악생애에 중요한 지점에 해당하는 사건이므로 마땅히 중요하게 다뤄야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단순한 치정극으로 보기에 이 에피소드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존재하고, 정규 학자로서 추측만이 난무하는 이 대목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적절치 못했으리라. 따라서 현 작품에서의 비중 정도로 끝내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차이코프스키의 정수를 전달함에 있어,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지 않는가하는 지적을 하고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단연코 "우아함"이다. 교향곡이나 협주곡, 그리고 잘 알려진 "1812년 서곡"조차도 그 음악적 형식미에서 어쩔 수 없이 광대한 멜로디와 악기 구성을 보기 쉽지만, 실제로 그의 선율은 매우 서정적이며 결코 선을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남성적인 면으로 느껴지기에는 좀 다른 측면이 감지된다. - 베토벤이나 리햐르트 슈트라우스와 비교해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 웅장한 대목에서도 결코 우아함을 잃지 않으며, 완전히 폭주하는 부분은 차이코프스키 작품 전반에 걸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발레곡이나 왈츠를 차용한 멜로디 부분에서 유독 차이코프스키의 강점은 독보적이다. 여성적인 우아함을 남성임에도 가장 잘 구사하며, 심미적인 면을 너무도 잘 포착하는 것은 대표적인 그의 특징이다. - 혹자는 이런 부분에서 그의 성소수자적 성향과도 관련짓기도 한다. - 실제로도 매우 연약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기록에 나오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 숨김없이 드러난다고 본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성격이 당대의 시대적 배경에서 얼마나 인간적으로 고뇌한 부분이 존재했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 존재하지만 이 책에서 그 비중만큼 다루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대목이긴 하지만 그의 인생사 전반을 다루고 다양한 측면을 할애해야하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수긍은 가는 대목이다. 

5. 나오며...

다시 돌아와 글의 초반부에 언급한 "빌리 엘리어트"로 돌아가보자. 결말부에 해당하는 "백조의 호수"는 매튜 본 경이 재해석한 작품이 등장한다. 이 작품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어찌보면 차이코프스키의 특징과 연결된 부분이 존재하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소수자인 매튜 본 경 스스로가 기존의 이 작품을 남성 발레로 완전히 재해석한 부분이다!

흔히들 머릿속에 떠올리는 여성 발레리나의 여리여리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아한 남성들의 육체의 향연으로 바꾼 것이다. - 빌리가 바로 이 무대의 주인공인 이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 전혀 어울리지 않을거라는 편견을 보란듯이 비틀어서 남성의 육체도 얼마든지 고혹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그 무대는 당시에 파격에 가까웠다. 마치 그 고지식한 빌리의 아버지가 마지막에 비상하는 아들의 유려한 몸동작에 깊은 탄식을 지를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그 장면이 우리의 반응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이 매튜 본 경의 백조의 호수는 매우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흔히들 예술은 그 당대의 생각을 반영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니체도 언급했듯이 "예술은 언제가 대중들에게 경계를 묻는 존재여야 한다"는 견해가 존재한다. 즉 당대의 편견과 소수의 혁신적인 시도로 인해 큰 변화를 줄 수도 있고, 그럼으로써 또다른 장의 표현을 가능케한 전례는 늘 존재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보아온 예술의 행보이다. 즉, 그 표현의 한계를 누군가가 임의로 설정할 수도 없으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현실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예술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대의 예술의 가능성은 전례없이 그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고도 있다. 만일 차이코프스키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그의 정체성과 예술적 감각을 승화시킬 기회는 좀더 다양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도 해본다. 그러나 역사에 가정은 없는 법...당대의 분위기에서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를 해서 우리에게 영원히 남을 작품들을 남겨주었다. 이것만으로도 고생한 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제는 편히 안식을 취할 것이라고 나는 위로를 건네고자 한다. 우리 인류 역사에 그만큼 위대한 작품을 남긴 그에게 그 정도의 존경의 표현은 과하지 않다고 보변서 말이다. 이토록 위대한 작곡가를 쉽게 설명해준 저자에게도 심심한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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