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지음, 문미선 옮김 / 북산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FATMAN의 북 리뷰 시리즈 01-44 :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저, 2022(1903)


*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이 글은 서평단으로서 개인의 의견임을 밝힙니다... 

#도서협찬

1. 들어가며...

고전 미술에서 "라파엘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그 위상에 조금도 누가 되지 않는다. 인상주의를 위시한 근현대 미술사가 아무리 대중들에게 인기가 높아도, 그 절대적 권위는 사리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영원불멸의 역사가 되었고, 급기야 신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수많은 화가들이나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예술의 신으로 추앙하고, 권위로써 그를 세워놓았다. (실제로 그를 천사의 재림으로 그리는 화가까지 존재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인격적인 인간의 모습 내지는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의 전설로 자리잡게 되고, 오래도록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전해진다. 마치 태평양 전쟁 시대에 희대의 명장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자, 즉각 군신의 반열에 올라 추앙을 받게된 케이스와 유사하다. 그리고 그를 위해 이소로쿠의 인간적 면모를 지우고자, 그동안 알려진 연인들에게서 교환된 서신을 압수하고, 자결을 강요하기에 이르는 과정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전통"이나 "전설"을 의외로 만들어내기 좋아한다. 특히나 예술의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실 현대미술이나 음악의 세계에서도 종종 유사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이는 반대로 대중들에게 예술은 마치 사람의 것이 아닌듯한 착각을 불러오며, 그 권위에 거구로 복종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이것이 보들리야르가 지적한 "이미지의 전복"에 해당하는 사회현상이 아닐까 싶다. 이는 대중들 사이에 끝없이 재생산되어 끝내 예술에 대한 선입견을 "고착화"시키는 결말로 이르게 된다.

2. 저자의 의도...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유명한 토마스 만의 자서전 격인 소설로 1898년에 작가로서 등단한 이후 초창기에 쓴 그의 소설이다. 만은 몰락한 부르주아의 자식으로 태어나 지식인으로서, 작가로서 유명세를 타, 이후 망명생활을 한 이력이 있다. 따라서 초창기의 그의 생에에서 일반 시민으로써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심하게 갈등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다행히도 작가로서의 역량을 일찍 인정받아 명성을 누렸다. 이런 그의 이력으로 짐작해보건데, 당대의 예술인에 대한 귄위와 편견에 상당히 고민을 한 흔적이 보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19세기에서 20세기의 전환기에 대세를 이루던 예술관은 "데카당스"의 예술이었다. 한낱 미천한 인간의 삶과 정반대 지점에 예술은 거창하게 존재하며,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면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였다. 그런데 토마스 만의 일련의 작품들을 관찰해보면. ‘좋은 작품은 다만 어려운 생활의 압박 하에서 생긴다는 것, 산 사람은 창작을 하지 못하며, 창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즉, 성실하고 건강하며 얌전한 인간은 결코 글을 쓰거나 연출하거나 작곡 같은 것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의 만은 착실한 은행가였고, 이와 같은 사람이 소설을 쓰는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글재주는 상당히 인정받는 갓 서른을 넘긴 시점에서 외톨이로 살아가는 자신에게 문학은 천직이 아닌 저주였던 것이다. 이 불안한 초창기의 모습을 이 책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

3. 인상적인 부분...


이 소설은 어찌보면 지극히 사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크뢰거의 입을 빌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예술관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아니면 성공하지 못한 작가로서 불투명한 미래를 일기장의 형식처럼 독백의 기록으로 남길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조류에 반하는 사실성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 이후의 많은 소설들이 좀더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으며, 혹자는 현대 소설의 시작이라고 보는 이도 존재한다. 결국 예술을 이해하고 향유하는 것은 인간이며, 항상 신의 영역 어딘가에서 아련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격렬하고, 불안하며, 우울한 감정들이 얼마든지 미학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 낸 작품이다.

또한 이 책의 역자도 밝히듯이, 독일 문한 특유의 서술 방식이 눈에 띈다. 얼핏 보면 딱딱하고 두서없이 쓴 것이라 생각이 들 여지도 존재하지만, 실제로 매우 정서된 작품이다. 감정의 흐름, 독자들의 이입 여지에 대해 고민하고, 쓴 구성이다. 사실 오늘날 정말 다양한 시도와 문체를 보아온 독자들에게는 단촐하고, 초라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시대를 감안한다면 그 당시에 상당히 획기적인 구성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책의 해설편에 보면 역자가 최대한 공을 들여 이 부분을 살릴려고 노력을 하였으며, 흔히들 고전에 따라붙는 각종 "주석"들 마져 없애서 최대한 그 당시의 느낌을 살릴려는데 주력한 흔적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내용 자체에 있어서, 고뇌하는 주인공이 결국은 "인간"으로 돌아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스토리는 인상적이다. 지금이야 흔한 모습으로 간주할수도 있지만, 마치 하늘의 고고한 새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앉아 우리를 그윽히 바라보는 그 느낌이라고 할까...예술은 저 멀리 천상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 삶의 진지한 모습과 희로애락을 담고 우리 곁에 같이할 때 가장 빛난다는 주제 의식하고도 연결되는 지점이어서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수없이 많은 철학과 사상들이 난무하던 시대였고, 지금도 시대를 관통하려는 많은 담론들이 존재하지만 결국 인간계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영원한 숙제를 안고 사는 숙명을 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4. 아쉬운 부분...

이 작품은 이미 고전으로서 그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새롭게 접하는 현대 독자들이 보기에는 다소 심심한 작품이 될 수 있다. 누군가 그러듯이 "아는만큼 보인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작품인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외피로 가지고 있으므로, 자극적인 요소도 전무하고, 그 이야기 구조마져 심심하므로 누군가의 해설이나 사전 배경 지식없이는 당대의 사람들이 느꼈을 감흥을 재현하기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주변의 독서모임이나 고전을 다루시는 분들의 조언을 받으면 좀더 풍성하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하다. 허나 한가지 기억할 사실은 위에 언급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며 그 고유의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의 초창기 모습을 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두 세번 읽어보면 젋은 시절의 고뇌를 엿볼 수 잇는 좋은 초기작이라 말하고 싶다.

5. 나오며...

문득 이 책을 읽다가 빔 벤더스 감독의 "베를린 천사의 시(1987)" 영화가 연상된다. 이 영화에서 천상의 두 천사가 지상(베를린)으로 내려와 이리저리 방황한다. 때로는 인간을 관찰하기도 하고, 도움을 원하는 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천상의 속성이므로 인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더욱이은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아이들의 눈에만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러던 중 한 천사가 여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모든 걸 포기하며 완전히 인간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결말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만이 그 유일한 케이스가 아니라 상당수의 천사들이 자기와 같은 선택을 함을 알게 되며, 여인의 남자로 남겨지게 된다. 예술은 이 영화에서의 천사와도 같다. 외피는 어떠하다 하더라도 그 속성은 이 세상 본질의 것이 아닌것처럼 찬란히 느껴진다. 그러나 그 예술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애초에 예술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에서 천사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중요한 감정인 "사랑"을 위해 그 존재의미를 부여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예술은 당연히 지상의 인간 곁에서 머물 수 밖에 없고, 영화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늘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본주의적 예술관의 서막을 알린 토마스 만의 작품세계는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부덴부르크 가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평생을 예술에 헌신하게된 계기를 마련해준 이 작품은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간직될 산 증인이다. 이처럼 좋은 책을 다시 한 번 소개하는 출판사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아울러 최대한 작품의 느낌을 살릴려는 역자분께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만 #북산 #고전 #예술 #북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